수레는 안개보다 먼저 소리를 냈다.
수현은 문밖으로 반 걸음 나갔다. 오른손이 먼저 문틀을 잡으려 해서 왼손으로 바꿨다. 손바닥 상처는 젖은 천 안에서 아직 뜨거웠다. 달려가 확인하면 될 것 같은 거리는 늘 손이 감당할 거리보다 짧아 보였다.
진오는 골목 끝을 보고 있었다. 수레 바퀴 하나가 깊게 울리고 다른 하나는 짧게 긁혔다. 성밖으로 나가는 큰길은 저쪽이 아니었다. 나루의 묵은 수레길로 돌아오는 짐이었다.
“저 수레가 맞습니까?”
“상단 표시와 뒤쪽 흰 포장은 같소. 탄 사람은 아직 못 봤고.”
가게에 있던 관아 사람이 큰길 쪽 동료를 불렀다. 서린은 등불을 들고 나왔으나 수레 앞에 서지 않았다. 수현은 조일에게 문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소년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겁이 난다는 것을 숨길 밤은 아니었다.
수레가 골목 입구에서 멈췄다. 말은 지쳐 고개를 낮췄다. 마부 옆 남자가 먼저 내렸다. 그 뒤로 허름한 옷의 사람이 포장을 걷었다. 오른발을 땅에 대기 전에 주변을 살폈다.
진오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석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수현은 이름이 불렸다고 곧 본인이 맞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진오를 알아보고 다가오려는 순간, 마부 옆 남자가 팔을 붙들었다.
“인계받을 곳이 다릅니다.”
관아 사람이 소속을 밝히고 앞으로 갔다. 남자는 호위 업무 중이며 짐터 통행이 막혀 잠깐 돌아온 것뿐이라고 했다. 석문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잡힌 팔을 빼려 했다.
“내 식구는요?”
목소리는 진오를 향했다.
“마른 곳에 있소. 당신 확인 뒤에 알려 주기로 했고.”
남자가 석문의 팔을 더 당겼다. 서린은 떨어진 자리에서 본인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말하게 해 달라고 했다. 그 말 뒤에서 칼집이 바닥을 쳤다. 남자 허리에 있던 짧은 칼이었다.
수현은 허리춤의 빈 칼집을 느꼈다. 조일이 받침으로 쓰라고 준 물건이었다. 나무 속에 칼이 없는 무게가 이렇게 가벼울 수 있었다. 가벼워서 자기가 무엇을 못 하는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석문이 몸을 돌렸다. 붙든 손이 미끄러졌고 남자의 어깨가 수레 포장에 부딪쳤다. 그 안에서 두 번째 사람이 뛰어내렸다. 누가 먼저 칼을 뽑았는지는 수현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달빛 아래 금속 한 줄이 나타났다.
관아 사람이 물러서라고 외쳤다.
말이 놀라 앞발을 굴렀다. 수레가 비스듬히 밀렸다. 수현은 뛰어들어 석문을 잡으려다 멈췄다. 그 길로 가면 칼 든 사람과 말 사이에 서게 됐다. 자기 손으로 한 사람을 잡아 당길 수도 없었다.
진오가 석문을 벽 쪽으로 밀었다. 칼날이 진오의 빈 허리띠를 스쳤다. 그는 몸을 낮추고 수레 옆으로 비켰다. 관아 사람이 길을 가로막았고 다른 남자는 마부에게 빨리 나가라고 소리쳤다.
수레가 다시 움직였다.
석문은 반대편 골목으로 뛰었다. 그림자 하나가 뒤를 따랐다. 수현의 몸도 그쪽을 향했다. 하지만 첫 걸음에서 붕대 안이 당겼다. 팔을 흔드는 것조차 통증을 불렀다. 따라잡아도 붙들 손이 없었다.
그는 추격을 포기했다.
대신 골목이 어디로 나가는지 보았다. 가게 앞을 지나 물가로 내려가면 판자 짐터가 있었다. 밤배는 떠났고 빈 수레들이 모여 있었다. 막다른 담 대신 사람 있는 쪽으로 길을 남길 수 있었다.
“곽 책임자에게 알려 주십시오! 물가 말고 짐터 안으로!”
그는 가까운 순라꾼에게 외쳤다. 말이 닿는지 보며 방향을 다시 가리켰다. 자기가 달리는 대신 길을 아는 사람이 움직여야 했다. 순라꾼은 나루 종을 울렸다. 정해진 통행 중지 신호였다.
수현은 마당에 기대 둔 넓은 판자를 봤다. 손으로 들어 옮길 생각을 버렸다. 가게 안 조일에게 목수집 문을 두드리라고 했다. 누구도 칼 있는 골목으로 들어오게 하지는 않았다.
문이 열렸다. 잠옷 위에 겉옷을 걸친 목수가 욕부터 했다. 수현은 짧게 설명했다. 사람이 쫓겨 물가로 내려갔고, 빈 수레 사이 샛길을 막아 큰 짐터로 돌려야 했다.
목수는 판자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부러진 거야. 사람 기대면 같이 넘어가.”
수현은 입을 다물었다. 어둠 속에서 넓어 보인 물건이 쓸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목수는 자기 집의 빈 손수레를 끌고 나왔다. 조일과 둘이 골목 입구 바깥에 세웠다. 순라꾼이 통행을 멈춰 세우는 동안이었다.
수현은 빈 칼집을 수레 바퀴 밑에 넣으려다가 목수의 눈을 봤다. 또 혼자 도구를 쓸 참이었다. 그는 물건을 내밀었다. 목수가 상태를 보고 제 쐐기를 가져왔다. 칼집은 수현 손에 남았다.
골목 안에서 발소리가 다가왔다. 석문이 먼저 보였다.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선 그는 닫힌 길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현은 손수레를 가리키지 않고 열린 큰길을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물가로 내려가지 마십시오.”
남자는 수현을 몰랐다. 이름을 부르며 안심시키면 될 줄 알았는데 그 이름조차 낯선 사람에게는 무서운 소리일 수 있었다. 수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길을 비웠다.
그 뒤에서 관아 등불이 올라왔다. 그제야 석문이 방향을 틀었다. 그를 쫓던 사람은 골목 입구에서 멈췄다. 손에 든 짧은 칼이 등불을 받아 번쩍였다. 순라꾼이 두 번 칼을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수현은 그 사람 얼굴을 외우려 들지 않았다. 자기 발이 어디에 있는지 봤다. 문턱 밖, 손수레 뒤, 뒤로 물러날 자리. 혼자 싸워 이기는 길이 아니라 칼이 닿지 않게 버티는 자리였다.
남자는 옆으로 비키려 했다. 좁은 길에는 목수 수레가, 큰길에는 관아 사람이 있었다. 그가 다시 석문 쪽으로 몸을 돌리자 진오가 빈 포대 하나를 바닥에 던졌다. 뛰어들지 못하게 거리를 벌리는 동안 순라꾼 둘이 다가갔다.
싸움은 수현이 예상한 것보다 짧고 지저분했다. 칼날은 담을 긁었고 누구의 발이 포대에 걸렸다. 관아 사람이 남자의 팔을 붙들었다. 수현은 그 순간에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도우려다 손을 다치면 붙든 사람까지 놓칠 수 있었다.
칼이 바닥에 놓였다.
수현은 발로 차지 않았다.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를 가리켰다. 석문은 짐터 기둥에 기대 주저앉았다. 한쪽 신발이 벗겨져 있었다. 수현은 오늘 밤 두 번째 신발을 주울 뻔했다.
이번에는 묻지 않고 가까이 가지 않았다. 물을 원하느냐고 떨어진 자리에서 물었다. 석문이 고개를 끄덕였고 진오가 가져다줬다. 숨이 가라앉을 때까지 누가 무엇을 운반했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곽두가 나루에서 올라왔다. 통행 신호 때문에 멈춘 일꾼들이 뒤에 있었다. 그는 먼저 물가 쪽이 비었는지 확인했다. 누가 도망친 틈에 물로 떨어진 사람은 없었다.
“사람 셋을 세웠소. 새벽 짐은 늦겠네.”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서린이 답했다.
“누가 갚을지도 정해 주시오. 좋은 일 했다는 말로 등짐은 안 가벼워지니.”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숨이 놓였다. 아무도 자기를 이겼다고 치켜세우지 않았다. 사람은 살아 있었고 대신 움직인 손과 발에는 값이 남았다. 수레길이 막힌 까닭도 확인해야 했다.
석문은 자신이 짐터에서 잠깐 세워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동행인이 허락하지 않아 돌아오는 수레에서 뛰어내리려 했다는 설명이었다. 다른 쪽은 그가 계약을 어기고 달아나려 했다고 주장했다.
관아 사람은 양쪽을 따로 데려갔다. 칼을 든 사람의 소속, 명령한 사람, 첫 몸싸움의 경위는 새로 조사할 일이었다. 장명상단이 시켰다는 결론을 그 자리에서 내리지는 않았다.
수현도 본 것을 말해야 했다. 누가 먼저 칼을 뽑았느냐는 질문에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진오의 허리를 스친 날과 달아나는 석문, 골목에서 따라온 사람은 봤다고 했다.
“당신이 길을 막았습니까?”
“순라 신호 뒤에 목수와 조일이 수레를 뒀습니다. 저는 물가 쪽으로 내려가지 않게 소리쳤습니다.”
수현은 제일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을 고르지 않았다. 오늘 한 일을 나누자 자기가 직접 한 것은 작아졌다. 대신 누가 없었으면 길이 열리지 않았을지 더 분명해졌다.
막았던 샛길이 다시 열리자 물장수가 빈 통을 끌고 지나갔다. 조금 전 칼이 놓였던 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수현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속도를 보았다. 자기 가슴만 아직 골목 안을 달리고 있었다.
목수는 손수레 손잡이를 확인하더니 수현에게 내일 경첩 기록을 꼭 보내 달라고 했다. 밤에 도왔다는 이유로 원래 맡긴 일을 없던 것으로 할 생각은 없는 말투였다. 수현은 보내겠다고 답하고 조일 쪽을 보았다. 견습은 품에서 젖지 않은 종이 보자기를 꺼내 보였다. 가게를 뛰어나올 때도 오늘 끝낸 일을 챙긴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흩어질 무렵 진오가 손을 털었다. 손등에 담을 스친 상처가 있었다. 의원에게 가야 할 만큼 깊지는 않다고 스스로 말했으나 관아 사람이 보고 나서 정하기로 했다. 윤초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먼저 붕대를 보았을 것 같았다.
석문이 수현을 불렀다.
“당신이 백 수리공이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남자는 자기 성과 이름의 글자를 말했다. 서린이 쪽지의 경위와 모양을 확인했다. 운반 함 그림은 자신이 그렸다고 했다.
“내 식구는 검 이야기 안 해도 됩니까?”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오늘 들을 이유는 없습니다.”
남자는 눈을 감았다. 오래 뜨고 버틴 눈이 천천히 접혔다. 수현은 그가 운다고 생각했다가, 잠깐 숨을 고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물그릇이 넘어지지 않게 바닥에 놓았다.
“줄눈은 내가 찍은 게 아니오.”
석문이 다시 말했다.
“내 이름 옆에 찍었다고 적혀 있었소. 나는 검 함을 옮겼고, 표를 받았지. 칼을 꺼내 줄을 새긴 적은 없어.”
서린은 이제 그 말부터 정식으로 받을지 물었다. 그는 오늘 밤은 식구가 있는 곳이 아니라 관아가 확인한 별도 방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자기 뒤를 따랐을 사람이 더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가족에게는 살아 있다는 말만 전해 달라고 했다.
수현은 거절하지 않았다. 가족을 만나게 해 주면 모든 말이 열릴 것 같았지만 남자가 고른 밤은 달랐다. 진오는 전달할 문장을 본인에게 다시 읽어 줬다.
새벽을 앞두고 가게로 돌아왔을 때 조일은 문턱에 앉아 있었다. 목수의 손수레는 돌아갔고 빈 칼집만 벽에 기대 있었다. 수현은 그것을 들고 금 간 끝을 보았다. 오늘 아무것도 막지 않은 물건이었다.
“칼집 쓴 값은 안 받겠네요.” 조일이 말했다.
“사람들이 대신 썼지.”
수현은 견습 옆에 앉았다. 손은 여전히 아팠다. 달려가지 않은 일을 후회할 줄 알았는데, 따라갔다면 누가 골목을 열었을지부터 떠올랐다.
서린이 마지막 전갈을 가져왔다. 칠목표국이 내일 징계 심문을 연다는 통지였다. 윤초뿐 아니라 지급 검을 반환한 경위와 진오의 물건 반출도 함께 묻겠다고 했다.
첨부 목록에는 운반 계약 원본이 있었다. 지금까지 열람 요청에 답하지 않던 물건이었다.
그 아래에 조건 하나가 붙었다.
‘감정품 소견을 제출한 자는 심문에 출석하여 그 근거를 답할 것.’
수현은 손의 빈 칼집을 내려놓았다. 내일은 남의 문 앞에서 자기 말을 지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