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목표국 문에는 칼자국보다 새 빗장이 먼저 보였다.
수현은 문밖 돌계단에서 잠깐 쉬었다. 밤을 거의 못 잤다. 아침에 조일이 내민 보리밥을 먹고 손의 천을 갈았지만 눈 안쪽에 모래가 남은 것 같았다. 서린은 심문 전에 쉬는 시간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제 손보다 입이 늦을 겁니다.”
“그럴 때는 늦게 답하십시오.”
그녀가 말했다. 가게에서 늦게 답하면 손님이 나갔다. 오늘 빨리 답하면 돌아갈 말을 놓칠 수 있었다. 수현은 물 한 모금을 삼키고 계단을 올랐다.
표국 마당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길게 늘어선 운반틀 아래로 볕이 들었다. 견습 표사 둘이 젖은 끈을 말리고 있었다. 전날 밤 칼을 봤다고 이곳 모든 손이 칼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윤초는 관아 사람과 함께 들어왔다. 오른손목은 여전히 붕대 안에 있었다. 그녀가 표국 현판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조금 길었다. 수현은 따라 보지 않고 내려올 계단의 폭을 봤다.
“여기 처음이지?”
“손님 검은 밖에서만 받았습니다.”
“문 안에 오면 값이 달라지나?”
“오늘은 수리 안 합니다.”
윤초가 짧게 웃었다. 웃음 뒤에는 밤새 듣지 못한 소식이 있었다. 수현은 석문이 관아 보호 아래 머물며 가족에게 생존 전갈을 보냈다고만 알렸다. 진술 내용은 전하지 않았다.
심문방 앞에서 진오가 기다렸다. 허리에는 검이 없었다. 손등에 새로 감은 천이 보였다. 그는 윤초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고 문을 열었다. 누가 앞서 들어갈지는 잠깐 망설이다 관아 사람에게 맡겼다.
방 안 탁자는 말굽 모양이었다. 안쪽에 표국 심문 담당 둘, 옆에 기록인. 장명상단 입회인은 창가에 앉았다. 도문결이 직접 왔다. 수현의 붕대를 보고 인사를 했지만 전날 밤 이야기는 먼저 꺼내지 않았다.
“수고가 많으셨다 들었습니다.”
“본 것을 말하러 왔습니다.”
서린은 시작 전에 권한을 확인했다. 오늘은 표국 내부 징계와 물품 관리 경위에 대한 문답이었다. 관아 사건의 유죄나 무죄를 이 방에서 결정할 수 없었다. 윤초를 자유롭게 돌려보내는 일도 표국이 할 수 없었다.
심문 담당은 그 범위를 받아 적게 했다. 수현은 서린이 늘 같은 말을 한다고 생각하던 자신을 떠올렸다. 같은 문장도 이 문 안에 없으면 누구의 목에 어떤 줄이 걸릴지 달라졌다.
첫 물건은 진오가 가져온 나무표였다.
표국 보관 담당이 남은 반쪽을 내놓았다. 접힌 자국과 깨진 면은 맞물렸다. 진오는 자기가 보관방 밖으로 가져온 경위를 다시 말했다. 반출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빼지 않았다.
“왜 바로 상관에게 제출하지 않았나?”
“윤초가 의뢰한 감정에서 검 이동 경로를 묻고 있었소. 원래 자리에 두면 다시 못 볼 것 같았소.”
“누가 없애려 했나?”
“본 사람은 없소. 그건 내 염려였소.”
수현은 무릎의 왼손을 펴고 다시 접었다. 진오를 도우려면 말을 보태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도울 수 있는 것은 옮겨 온 뒤 표를 어떻게 보관했는지 답하는 것뿐이었다.
서린이 임시 인도 목록을 냈다. 표국 담당은 두 조각을 합친 그림을 남기고 물건 자체는 별도 보관에 동의했다. 징계 판단은 보류됐다. 진오의 근무 복귀도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음은 윤초의 운반 계약이었다. 기록인이 사본을 탁자에 놓자 서린은 원본 목록에 적힌 물건을 요청했다. 심문 담당은 당사자가 내용을 알면 충분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윤초가 먼저 대답했다.
“내가 서명한 건 원본입니다. 여기 없는 문장이 생기면 내가 알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방이 조용해졌다. 수현은 새로 쓴 칼집의 값표를 떠올렸다. 손님이 서명한 종이를 나중에 다른 문장으로 읽어 주면, 돈을 받는 쪽은 늘 편해질 터였다.
도문결이 손을 모았다.
“상단 계약에는 거래처 정보가 있습니다. 외부 수리공에게 전부 보여 줄 수는 없지요.”
“제 이름으로 대행을 확인했다는 문서도 거래처 정보입니까?”
수현이 묻자 도문결은 그건 별도 정산 자료라고 답했다. 수현은 더 크게 말하지 않았다. 따로라면 따로 검토하자는 요청을 서린이 이어 갔다.
원본을 보기 위해서는 오늘 감정의 근거부터 답해야 했다. 수현은 어제 절단한 시편의 그림과 두 감정인의 소견을 냈다. 단면의 어두운 띠가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 부분은 자르지 않았는지 설명했다.
손이 저절로 종이 위를 움직였다. 오른손을 펴려다 통증이 와 멈췄다. 수현은 왼손으로 바꾸고 한 번 더 물을 마셨다. 아무도 그 짧은 지연을 대신해 주지는 않았다.
“윤초의 검과 같은 강재라는 판정입니까?” 심문 담당이 물었다.
“결함의 생긴 방식이 닮았습니다. 같은 화로, 같은 날, 같은 납품 묶음 전체라는 판정은 못 합니다.”
“그렇다면 계약 원본이 왜 필요하지요?”
“쇠가 닮은 것과 실제 이동한 길을 맞춰야 합니다. 길을 모르는데 묶음이 같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도문결이 그림의 선 하나를 가리켰다.
“이 줄눈은 하급 검수인이 검사 후 찍습니다. 석문이 맡은 물건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수현은 앞서 받은 쪽지와 오늘 새벽 진술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말을 들었다고 바로 반박 자료로 읽지는 않았다. 석문의 진술은 관아가 접수 중이었다. 이 방에서 필요한 것은 상단 주장의 근거였다.
“언제 누가 찍는지 적힌 작업 규칙을 요청합니다. 그날 기록한 사람도요.”
“백 수리공은 선생의 검사 장부도 완전하다고 말하지 못하셨지요.”
“네. 제 스승 장부도 대조해야 합니다.”
수현이 답하자 도문결의 손끝이 종이에서 멎었다. 스승 이름을 꺼내면 자기 말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수현은 목이 실제로 뜨거워진 것을 알았다. 입을 열기 전 한 번 숨을 세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의 기록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심문 담당은 창을 열게 했다. 방 안이 더웠다. 바깥에서는 표사들이 운반틀을 옮겼다. 짐이 탁자 모양을 따라 움직이지 않듯, 종이 위의 길도 대답하는 사람 마음대로 돌지 않았다.
잠깐 쉬는 동안 윤초는 물그릇을 들지 못했다. 손목 때문에 왼손으로만 받침을 옮기다 그릇이 기울었다. 수현이 받으려는 순간 진오가 먼저 잡았다. 셋은 잠깐 서로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내가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윤초가 낮게 물었다.
“다친 손목이 하나 더 있었겠지요.”
“네 손도 있었잖아.”
“그래서 뛰어가지 않았습니다.”
윤초는 마당 쪽을 보았다. 칼로 길을 열던 사람에게 달려가지 않는 말은 비겁하게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팔에도 같은 답이 걸려 있었을 것이다.
수현은 원본을 못 보면 오늘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했다. 단면 소견 제출과 문답, 표의 경위. 그걸로 충분하다고 돌아가면 검이 지나간 길은 또 닫혔다. 그렇다고 표국 문을 부수면 원본을 본 사람이라 말할 수 없었다.
서린은 두 번째 요청서를 준비했다. 전부 내달라는 요구를 줄였다. 윤초가 서명한 운반 범위, 정비품 출고와 인계, 제삼 수령지와 연결되는 부표. 다른 거래액과 무관한 사람 이름은 가릴 수 있었다.
수현은 그 조건에 동의했다. 자기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은 열람 목록에 남겨 달라고 덧붙였다. 가린 칸을 빈칸이라 부르면 다음에 엉뚱한 결론이 생겼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 심문 담당은 윤초에게 물었다.
“짐을 열지 못하게 막은 책임을 인정하나?”
“인정합니다. 그 사람이 무게가 다르다고 말했는데도 계약을 앞세웠습니다.”
윤초의 목소리는 짧았다. 수현은 그 답을 대신 부드럽게 만들지 않았다. 그녀가 했다는 일과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일을 한 번에 덮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계약 위반이 아니라 준수인데, 왜 이제 원본을 문제 삼지?”
“내가 지킨 문장이 누구에게 무엇을 허락했는지 모르고 서명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봐야 합니다.”
수현은 그 말에 어깨가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옳았던 말만 고르는 답이 아니었다. 본인에게 불리한 문장도 원본에 있다면 함께 남겠다는 뜻이었다.
심문 담당 둘이 잠깐 의논했다. 결국 기록인이 안쪽 방에서 긴 문서함을 가져왔다. 자물쇠를 열기 전 표국 보관인과 상단 측이 목록을 확인했다. 수현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빨리 다가가면 손이 먼저 움직일까 봐였다.
원본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계약 한 장 뒤에 인계 부표가 두 장 더 꿰매져 있었다. 첫 사본에는 없던 바느질 구멍이 가장자리에 보였다. 서린은 이를 곧바로 은폐라고 쓰지 않았다. 사본 작성 범위가 어디였는지부터 물었다.
기록인은 본 계약만 옮겼다고 했다. 부표는 운송 정산용으로 따로 관리했다고 설명했다. 한데 묶인 시점은 보관 기록을 더 봐야 했다. 수현은 그 대답을 듣고서야 종이를 가까이 보았다.
윤초의 서명은 첫 장에 있었다. 봉인 짐을 열지 못하게 하는 문장 아래였다. 뒤쪽 부표에는 정비 검의 출고지가 장명 보급소로, 수령지는 칠목표국으로 적혔다. 그것만 보면 진오의 말과 맞았다.
그러나 아래에는 되돌림이 아닌 추가 인계 칸이 있었다.
표국이 쓰지 않고 따로 보내는 검사 물품 일부. 수령지의 긴 이름 가운데는 가림 종이가 붙었다. 서린은 가린 범위의 근거를 물었다. 심문 담당은 오늘 허락한 열람 항목에 포함되는지 다시 의논했다.
수현은 가림 종이를 손으로 들어 올리지 않았다. 칸의 제목과 문서 번호, 보이는 운송 표지를 적었다. 아래쪽에는 칠목의 도장과 다른 네모 인장이 반쯤 찍혔다.
그 도장을 본 표국 기록인이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는 관아 사람이 앉은 쪽을 한 번 봤다. 수현은 그 시선만으로 수령인을 알아냈다고 말하지 않았다.
열람은 정해진 시각에 끝났다. 원본은 함에 돌아갔다. 서린은 남은 항목을 적은 재열람 요청을 받아 냈고, 수현은 오늘 본 줄마다 원본과 다시 대조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보람은 있었지만 계약을 손에 넣은 것은 아니었다.
윤초의 징계 결론은 미뤄졌다. 진오의 반출 문제도 별도 판단이 남았다. 수현에게는 오늘 설명한 감정 소견에 보충 요청이 올 수 있었다. 누구도 가벼워진 발로 문을 나서지는 않았다.
마당에서 기다리던 조일이 보자기를 내밀었다. 이웃 공방에 넘길 기록 사본을 오전에 전하고 왔다고 했다. 견습이 끝낸 일의 품삯으로 산 작은 빵 두 개가 안에 있었다.
수현은 하나를 진오에게 주려다 값을 묻는 그의 눈을 봤다. 오늘 점심은 사겠다고 먼저 말했다. 진오는 그제야 받았다. 윤초 몫은 관아가 허락한 뒤 따로 건네기로 했다.
표국 문을 나서자 햇빛이 낮아졌다. 수현은 원본 열람 목록에서 추가 인계 번호를 다시 읽었다. 서린이 옆에서 같은 번호를 소리 내 대조했다. 그들이 잘못 베끼면 다음 문 앞에서부터 틀릴 터였다.
그때 관아 사람이 걸음을 멈췄다. 그 네모 인장에 관해 확인할 곳이 있다며, 내일 창고 출납 담당과 만나 보겠다고 했다. 지금 이름을 확정해서 쓰지는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수현은 칠목표국을 돌아봤다. 검은 여기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계약 뒤에는 칼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쇠의 다음 길이 꿰매져 있었다.
그는 가게로 가기 전에 내일의 빈 감정지를 샀다. 맨 위에 세 번째라는 글자를 쓰고, 그 아래 수령지 이름은 비워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