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신발이 골목 물웅덩이에 떠 있었다.
수현은 그것을 주우려고 몸을 굽혔다가 멈췄다. 신발의 주인은 바로 옆 처마 아래 서 있었다. 여섯 살쯤 된 아이가 맨발 하나를 어머니의 치마 뒤에 숨기고 있었다.
“주워 드려도 됩니까?”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왼손으로 신발을 건져 뒤집었다. 물이 흘렀다. 안쪽까지 젖은 것을 그대로 신길 수 없어 조일이 가져온 마른 천을 깔았다.
석문의 집을 찾아온 것은 그날 해가 진 뒤였다. 관아 연락소 사람이 앞장섰고 서린과 진오가 동행했다. 수현은 가족을 숨기러 혼자 나서지 않았다. 그랬다면 누구에게서 무엇을 숨겼는지 나중에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집은 상단이 빌려 준 방이었다. 바깥문에는 새 근무지 배정에 따른 비움이라는 종이가 붙었다. 그런데 문 앞 사람들은 석문과 함께 떠나지 않았다. 아내는 수레가 남편만 데려갔다고 했다.
“같이 가도 된다고 들으셨습니까?” 서린이 물었다.
“남편은 먼저 가서 방을 구한다고 했어요. 내일 다시 사람을 보내 준다고.”
“누구에게 들은 말입니까?”
“남편한테요. 그 말을 할 때 옆에 다른 사람도 있었고요.”
여자는 문 안을 돌아봤다. 등불이 없어 집은 벌써 깊은 밤처럼 보였다. 쌀자루 하나와 이불 묶음이 문턱 안에 있었다. 아이가 아까 신발 벗겨진 발을 자꾸 비볐다.
수현은 자기 가게의 빈 수리걸이를 떠올렸다. 일하는 곳과 잠자는 곳이 같은 사람에게 자리를 비우라는 말은 품삯 하나를 늦추는 것보다 넓게 닿았다. 그렇다고 방을 내주라고 상단 문을 부술 권한은 없었다.
관아 사람이 집주인에게 비움 시점과 짐 보관을 확인하러 갔다. 서린은 여자에게 오늘 밤 갈 곳이 있는지 물었다. 여자는 강 건너 친정이 있다고 했다. 밤배는 이미 마지막 짐을 받고 있었다.
“그 배에 타고 싶으십니까?”
여자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남편이 내일 이 골목으로 사람을 보내면 자신들을 못 찾을 것이라고 했다. 수현은 우리가 알려 주겠다고 쉽게 말하지 않았다. 새 근무지에서 편지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진오가 처마 끝에 서서 비를 봤다. 표국에서 가져온 겉옷이 어깨까지 젖었다. 보관방 근무를 못 하게 된 뒤에도 그는 칠목의 표사였다. 칼 없이 여기 온 사람에게 호위를 맡겨도 되는지 수현은 먼저 물어야 했다.
“동행을 부탁하면 표국 허가가 필요합니까?”
“업무로 받으면 필요하오. 오늘 내 발로 걷는 것까지 막지는 않지.”
“오늘 당직 품삯 문제부터 남아 있잖습니까.”
진오가 비로소 그를 봤다.
“그래서 이름 없이 맡아 달라고는 하지 마시오.”
서린은 종이를 꺼냈다.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관아 출석도 증언 약속도 아니라 오늘 머물 곳까지의 안전한 이동이었다. 진오가 돕는 시간과 범위, 본인에게 돌아갈 비용을 적었다. 다만 보관 장소는 길에서 누구에게나 읽히게 펼치지 않았다.
제목은 가족 이동 동행이었다. 석문의 검사에 유리한 증언을 하는 조건은 없었다. 여자는 그 문장을 서린에게 두 번 읽어 달라고 했다.
“말 안 해도 묵을 수 있어요?”
“오늘 보호 요청은 말의 내용과 따로 접수합니다.”
아이에게도 알아들을 말로 설명했다. 오늘 밤 젖지 않을 방으로 가는 것, 아버지를 혼내러 가는 게 아니라는 것. 아버지가 꼭 내일 온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아이는 물에 빠졌던 신발을 두 손으로 들었다.
방을 찾는 데에는 시간이 들었다. 합의회 앞방은 증거 물건이 드나들었고, 관아 연락소에는 사적인 숙박 자리가 없었다. 수현의 수리점에는 화로와 날붙이가 있었다. 아무 곳이나 문만 닫으면 안전한 방이 되지는 않았다.
곽두가 나루의 옛 휴게방을 제안했다. 밤배를 기다리는 일꾼 가족들이 쓰던 곳이었다. 현재 비어 있는지, 문을 안에서 걸 수 있는지, 마른 자리와 식수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곽두는 방의 위치부터 크게 말하지 않았다.
“배 짐 장부 보는 곳과는 다르오. 일하는 사람들 이름도 거기 가져오면 안 되고.”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아 사람은 경로를 확인하고 필요한 연락만 맡았다. 가족이 이동한다는 소문을 내서 불러 모을 이유는 없었다.
수현은 이불 묶음을 들려다가 조일에게 팔을 잡혔다.
“오늘은 손이 아니라 다리로 왔잖아요.”
“한 묶음쯤은.”
“그 묶음 들고 또 붕대 갈 값은요?”
수현은 이불을 내려놨다. 진오가 들었고 조일은 작은 쌀자루를 들었다. 여자는 자기 그릇 꾸러미를 맡기지 않았다. 깨지기 쉬운 물건은 본인이 안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보호받는 사람이 모든 짐을 남에게 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골목을 나설 때 상단 표식을 단 남자 둘이 왔다. 하나는 빈방을 확인하러 왔다며 짐 수를 세려 했다. 여자는 품속에서 방 사용 쪽지를 꺼냈다. 반환 날짜 칸이 흐려 비어 보였다.
수현은 그 종이를 빼앗아 읽지 않았다. 관아 사람이 양쪽 말을 들었다. 오늘 당장 물건을 압수할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문 잠금과 내일 열람은 집주인 입회로 별도 정리하기로 했다.
다른 남자가 진오를 알아봤다.
“칠목표국이 이 일을 맡았습니까?”
“아니오. 내 이름으로 걷는 중이오.”
“표국 검도 없이?”
진오는 대답 대신 이불 묶음을 고쳐 들었다. 수현은 그걸 보며 표사가 무엇을 지킬 때 꼭 검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웃는 남자를 쳐다보는 진오의 턱은 굳었다. 쉽다는 뜻도 아니었다.
수현은 일행 사이 간격을 좁혔다. 앞장선 관아 사람이 길을 열었고 뒤에서는 곽두가 짐수레와 부딪치지 않게 모퉁이를 확인했다. 수현이 맡은 것은 아이와 조일이 뒤처지지 않는 일이었다.
아이는 아버지가 타고 간 수레가 저 길로 갔다고 말했다.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어두운 큰길이었다. 수현은 무슨 색 수레였는지 몰아묻지 않았다. 신발을 신은 발이 아프냐고 물었다.
아이는 작게 끄덕였다. 수현은 처마 아래에서 잠깐 멈추게 했다. 천을 다시 접어 발뒤꿈치에 댔다. 그 짧은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의 걸음이 모두 멈췄다. 작은 사람이 따라오게 하는 데 드는 시간이었다.
휴게방에는 생선 냄새가 남아 있었다. 곽두는 전에 말린 그물을 넣어 뒀다고 설명했다. 마른 돗자리를 새로 깔고 찻물을 들였다. 여자는 문을 안에서 직접 열고 닫아 봤다. 아이는 문턱 높이를 세 번 넘었다.
서린은 누구에게 이곳을 알려도 되는지 물었다. 여자는 친정과 남편에게만, 남편에게는 관아가 본인을 확인한 뒤에 전해 달라고 했다. 상단 사람이 전갈을 받으러 왔다고 하면 기다리겠다고 했다.
수현은 처음으로 오늘 자기에게 할 일이 별로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방이 생기고 물이 오자 여자는 아이 옷부터 벗겨 말렸다. 낯선 남자 넷이 계속 둘러서 있는 것이 도움은 아니었다.
그는 문밖으로 나왔다. 비가 가늘어졌고 나루에서는 마지막 배가 떠나는 소리가 났다. 강 건너 친정으로 오늘 갈 기회는 지나갔다. 대신 이 방에서 아침을 고를 수 있게 됐다.
진오도 밖에 섰다. 손에는 칼집 대신 젖은 이불끈이 남아 있었다. 수현은 오늘 동행 품삯을 어떻게 정산할지 물었다.
“먼저 방값부터 내시오. 내 몫은 약속한 대로 쓰면 되오.”
“미뤄도 된다는 뜻입니까?”
“내일 받을 날짜를 정하자는 뜻이지.”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짜라며 덮으면 쉬웠을 대답이었다. 서린은 합의회에 청구 가능한 보호 비용을 나누어 적었다. 가게 선금이나 석문의 밀린 품삯에서 임의로 제하지 않았다.
여자가 문을 조금 열었다. 손에 작은 헝겊 주머니가 있었다. 남편이 두고 간 물건이라고 했다. 검사에 쓴 것인지 모르지만 가져가 버리면 남편이 더 곤란해질까 봐 망설였다고 했다.
수현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맡기고 싶으십니까, 무엇인지 확인만 원하십니까?”
여자는 잠깐 생각한 뒤 안에서 본 것만 말하겠다고 했다. 주머니에는 도구가 아니라 지워진 값표가 있었다. 남편은 못 받은 품삯을 잊지 않으려고 모아 두곤 했다는 설명이었다.
서린은 오늘 열어 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여자는 주머니를 다시 안쪽에 놓았다. 사람을 보호하면 그 사람의 서랍도 얻게 되는 줄 알았다면, 수현도 상단과 멀지 않았을 것이다.
가게로 돌아왔을 때 조일은 젖은 소매부터 짜냈다. 오늘 끝낸 부품 기록 일의 남은 품삯을 받아 놨다고 했다. 작은 돈함에 동전이 조금 늘었다. 대신 저녁을 사 올 시간은 놓쳤다.
둘은 남은 보리를 물에 불렸다. 수현은 젖은 신발을 화로에서 멀리 두었다. 빨리 말리려 가까이 대면 가죽이 상했다. 조일은 그 말이 사람한테도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오늘 만난 아이의 신발을 떠올린 듯했다.
밤이 깊기 전에 도문결의 회답이 도착했다. 합의회가 낸 소재 확인 요청에 대한 것이었다. 석문은 업무 교대에 동의했으며, 기존 계약에 따라 숙소를 비웠다는 문장이었다. 가족이 따로 남은 이유는 알지 못한다고 썼다.
수현은 여자의 말을 떠올렸다. 남편은 내일 사람을 보내 준다고 했었다. 서로 어긋나는 문장 사이에서 누가 거짓말하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오늘 골목에서 젖은 발로 선 것은 아이였다.
서린은 회답에 붙은 동의서의 필사본을 보여 줬다. 이름 아래에는 작은 획이 있었다. 본인 확인은 아직 안 됐다. 서명했다면 자유롭게 선택한 것인지도 별도 질문이었다.
그때 관아 사람이 문을 두드렸다. 성문 통행 기록을 확인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상단 수레는 나갔다. 석문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기록에 함께 오른 동행인은 상단이 말한 사람과 달랐다.
수현은 국 끓는 솥을 불에서 내렸다. 이름이 다른 까닭은 교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일이라고 기다리기에는 수레가 이미 너무 멀리 갔을지 몰랐다.
“지금 따라갈 수 있습니까?”
관아 사람은 밤길 추격을 하겠다는 허락은 없다고 답했다. 대신 앞쪽 중간 짐터에 사람이 있는지 연락을 보냈으며, 새벽 첫 성문 확인에 맞춰 접촉을 요청했다고 했다.
수현은 다친 손을 폈다가 천천히 오므렸다. 자기 검도 없고 윤초도 여기 없었다. 달려가면 사람을 찾을 것 같다는 마음만 있었다.
조일이 식탁 위에 빈 칼집 하나를 놓았다. 수리 의뢰가 취소돼 돌려보낼 물건이었다.
“가실 거면 짐짝 받침으로라도 쓰세요. 손으로 또 잡지 말고.”
수현은 칼집을 보았다. 무기를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새벽에 관아와 함께 중간 짐터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들이 문을 닫기도 전에 진오가 돌아왔다. 젖은 어깨에서 물이 떨어졌다. 그는 나루 쪽 오래된 수레길을 가리켰다.
“그 수레가 돌아오고 있소. 성밖으로 간다고 적힌 수레가.”
밤안개 속에서 바퀴 소리가 났다. 빈 수레인지, 누구를 싣고 있는지 아직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