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늦게 줬다는 것하고 검사를 늦게 했다는 것은 달라.”
수현이 말하자 조일은 정산 부표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앞면 숫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뒷면에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건 아는데, 여기 대행 완료라고 썼잖아요.”
해가 아직 가게 처마에 닿기 전이었다. 전날 조일이 찾아 둔 부표는 서린의 임시 봉인지 안에 있었다. 아침 입회 때 열기로 해 두었으므로 둘은 기억으로만 말하고 있었다.
수현은 화로 앞에 앉아 찬 쇠집게를 내려다봤다. 불은 피우지 않았다. 손에 힘을 줄 수 없는데 불부터 피우면 일을 하고 싶어질 터였다.
“우리 대금은 수리값이었지?”
“표국 칼집 세 개, 운반 고리 둘. 그건 제가 적었어요.”
“숙부 검사비가 섞였는지는?”
“안 섞였어요. 아니, 받은 액수는 수리값하고 같았어요. 어디 돈으로 줬는지는 모르고.”
조일은 자기 말을 고쳤다. 수현은 그 수정을 잊지 않으려고 빈 종이에 적었다. 잘하는 사람 옆에 서는 것보다 자기가 아는 범위를 줄이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었다.
서린이 올 때까지 두 사람은 가게 앞을 쓸었다. 마른 쇳가루가 한쪽으로 모였다. 수현은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빗자루를 쥐었고, 조일은 말없이 쓰레받기를 가까이 댔다.
손님 한 사람이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맡긴 호미를 찾으러 온 채소 장수였다. 어제 약속한 수리는 못 끝냈다고 수현이 말하자 장수는 붕대를 보았다.
“손이 그 모양이면 먼저 말하지.”
“오늘 맡길 곳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물건을 옮기는 값은 제가 내고요.”
장수는 한숨을 쉬었지만 호미를 받아 갔다. 수현은 선금을 돌려주고 같은 시장 안의 다른 공방을 적어 줬다. 고객을 지키겠다고 못 지킬 약속을 붙들면 호미만 늦어졌다.
조일은 빈 수리걸이를 보았다.
“이러다 걸이만 고치게 생겼네.”
“그건 네가 잘하지.”
“값을 누가 내는데요?”
수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서린이 문을 두드린 것은 그때였다.
부표가 열렸다. 오른쪽 아래에는 수리값 수령 확인이 있었다. 수현의 서명이 분명했다. 그러나 위쪽의 대행 완료 문장은 수령인이 직접 쓴 글씨가 아니었다. 상단에서 미리 적어 온 정산 항목이었다.
그날 수현은 돈을 세고 아래에 이름을 썼다. 숙부 일과 관련 없다고 생각해 위쪽의 작은 줄을 꼼꼼히 읽지 않았다.
“제가 받은 종이를 제가 못 봤습니다.”
그가 말했다.
조일이 입술을 달싹였지만 끼어들지 않았다. 서린은 수령 서명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계약과 양식을 더 봐야 한다고 했다. 부표를 받았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고, 그 안에 든 모든 문장을 승인했는지는 별도 판단이었다.
수현은 자기가 서명한 날의 일을 진술했다. 상단 수금인이 수리품을 실어 갔고, 밀린 대금을 한꺼번에 줬다. 수현은 돈을 받은 뒤 쌀을 사러 갔다. 검사한 검은 없었다.
“그날 하루를 함께 있던 사람은요?”
“저요.” 조일이 말했다. “그렇지만 장 보러 나간 동안은 아니에요.”
수현은 처음으로 견습에게 빚진 기분이 들었다. 자기를 살리려고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가게 안에 있었다.
서린은 나루 사본과 검사표 사본을 나란히 폈다. 부표 날짜와 나루 지급일은 같았다. 검사표 날짜는 그보다 닷새 빨랐다. 같은 사건을 세 날짜로 적은 것인지, 서로 다른 단계인지부터 나눠야 했다.
검사한 날. 종이를 다시 쓴 날. 돈을 지급한 날.
수현은 세 줄을 내려다봤다. 어제는 빨리 이어야 할 금 같았다. 오늘은 이어 붙이면 안 되는 틈처럼 보였다.
“상단에 대행 완료가 어떤 행위를 뜻하는지 물어야겠습니다.” 서린이 말했다.
조일이 종이 아래를 가리켰다.
“물어보기 전에 이것도 봐 주세요.”
그는 정산 항목의 작은 번호를 읽었다. 검사표를 재작성한 묶음 번호와 끝자리가 닮았지만 같지는 않았다. 하나는 접수 번호, 하나는 지급 번호였다. 조일은 옆에 적힌 수수료 항목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수현도 처음 보는 항목이었다. 제칠차 대행 인계료. 수리 대금과 더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받도록 옆칸에 적혀 있었다. 수현이 받은 돈의 액수만 봤다면 놓칠 줄이었다.
“이름은 없네.”
“받은 사람 칸은 이쪽이 잘렸어요.”
부표의 한쪽 끝에는 잘라 낸 흔적이 있었다. 수령인이 가져갈 부분만 떼어 준 양식이었다. 남은 쪽은 상단 회계에 있어야 했다.
조일은 비슷한 부표 한 장을 더 꺼냈다. 이번 사건과 무관한, 봄에 받은 수리값이었다. 서린이 다른 사람의 거래액은 가리고 양식만 비교했다. 그 종이에도 절취선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이름을 잘랐다고 할 수는 없었다. 원래 반쪽으로 나누는 종이였다. 그 사실이 실망스러웠지만 덕분에 어디에 나머지가 있는지는 분명해졌다.
수현은 조일에게 빈 수리걸이 뒤에 붙일 종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모든 답을 상단이 가져다줄 리는 없었다. 열람 요청의 범위를 좁혀 정확히 써야 했다.
그들은 재작성 날짜, 대행 확인 근거, 인계료 지급인과 수령인이라는 세 항목만 요청했다. 장명상단 거래 전체를 달라는 요구보다 작았다. 거절했을 때 어느 문을 닫았는지도 알 수 있는 크기였다.
점심 전에 도문결의 답장이 왔다. 본인이 오지 않고 상단 연락인이 전달했다. 정산 완료일과 검사 완료일은 다를 수 있으며, 대행은 단순한 기록 인계를 가리킬 수도 있다는 문장이었다.
수현은 그 말에서 당장 틀린 점을 찾지 못했다.
서린이 연락인에게 물었다.
“그럴 수 있다는 설명입니까, 이 건이 그랬다는 답입니까?”
연락인은 종이를 다시 읽었다. 적힌 말 이상은 모른다고 했다.
“그대로 전달해 주십시오. 이 건의 근거를 요청합니다.”
연락인이 떠난 뒤 수현은 종이에 그어진 줄을 쓸어 보려다가 손을 멈췄다. 원본을 만지는 버릇도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조일은 붓을 빨아 내려다 물었다.
“전부 내일 준다고 하면요?”
“우리는 오늘 가진 걸 정리해야지.”
“내일도 내일이라고 하면요?”
서린이 답했다.
“제출 요청 날짜를 합의회에 남깁니다. 자료가 없다는 것과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수현은 조일이 그 말을 그대로 쓰려는 걸 보고 고개를 저었다. 손님에게 보여 줄 말과 안쪽 장부에 남길 말은 달라야 했다. 가게 문에는 오늘 가능한 수리와 불가능한 수리부터 적었다.
조일은 정산 부표를 얻은 날 쌀을 산 기록부터 확인하겠다고 했다. 수현은 같이 가려다가 서린의 손짓에 멈췄다. 가게를 비울 수는 없었다. 오늘은 조일과 서린이 쌀집에 가고 수현이 문을 지켰다.
혼자 남자 망치 소리가 없는 공방이 낯설었다. 건너편에서는 대장장이가 말굽을 두드렸다. 한 번, 쉬고, 두 번. 수현은 어느 대목에서 쇠를 돌렸을지 소리로 짐작했다. 자기 손끝으로 알 필요 없는 일은 세상에 많았다.
조일이 돌아왔을 때 소매에는 쌀겨가 묻어 있었다. 영수증을 달라 하니 쌀장수가 자기 장부를 보여 줬다고 했다. 가게 밖으로 가져오진 않았고, 서린이 해당 거래만 보고 날짜를 대조했다.
“그날 쌀 산 건 맞아요. 형이 돈을 갖고 온 뒤 제가 갔대요. 제 외상 줄 옆에 수령 표시가 있어요.”
수현은 기억을 고쳤다. 돈을 받고 쌀을 산 것은 자기였지만 쌀집까지 간 것은 조일이었다. 하루의 작은 일을 한 덩어리로 기억해 뒀던 것이다.
“내가 그날 장 보러 갔다고 진술했지.”
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종이를 달라고 했다. 틀린 부분에 이유와 수정 시각을 남겼다. 처음 말을 깨끗하게 다시 쓰는 대신 선 하나로 지우고 옆에 고쳐 썼다.
조일은 그 선을 오래 보았다. 자기가 기억해 낸 일이 수현의 진술 하나를 틀리게 만들었다. 수현은 견습의 어깨를 왼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이래서 같이 보는 거야. 나 혼자였으면 쌀독도 날 못 이겼겠네.”
조일이 그제야 웃었다. 그리고 오늘 품삯에서 쌀집 확인에 든 시간을 빼지 말라고 했다. 수현은 그러겠다고 답했다. 맞는 말을 찾아오는 것도 분명히 한 일이었다.
붕대 교체를 마치고 돌아오니 합의회 심부름꾼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든 것은 두툼한 장부가 아니라 얇은 지급 확인 사본이었다. 나루가 보관하던 정산 기록에서 추가로 확인한 줄을 보내온 것이었다.
곽두의 말도 덧붙어 있었다. 별도 짐의 운반료가 다른 품삯과 같은 날 지급됐고, 지급 근거로 검수 접수 번호를 썼다는 내용이었다. 그 번호는 사후 검사표와 같았다.
종이 셋이 처음으로 한 고리에 걸렸다.
그렇다고 고리가 누구 손에 있었는지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자기에게 유리한 설명 두 가지와 불리한 설명 하나를 적었다. 늦은 지급. 사후 서류 정리. 또는 자기가 실제 인계받고 기억 못 하는 일.
마지막 설명을 보고 조일이 고개를 들었다.
“형은 안 했다면서요.”
“나는 안 했다고 말해. 확인하는 사람은 내 말도 살펴야 해.”
“그렇게 쓰면 남들이 믿어요?”
수현은 대답을 바로 못 했다. 안 했다는 말보다 안 했음을 확인할 길을 남기는 게 오래 걸렸다. 그동안 손님은 나가고 쌀은 줄었다.
“믿을지 모르지. 그래도 틀리게 믿게 하고 싶진 않아.”
조일은 얼굴을 찡그렸다. 납득한 얼굴도, 반대한 얼굴도 아니었다. 그는 세 설명의 옆에 확인에 필요한 자료를 적기 시작했다. 혼자 있던 시간, 남은 영수증, 실제 인계받은 사람.
오후에는 채소 장수가 다시 왔다. 손에는 시장에서 남은 보따리만 들려 있었다. 수현의 가슴이 먼저 내려앉았다. 그러나 장수는 새 공방에 호미를 맡기고 수리할 날짜를 들었다고 말했다.
“오늘은 안 된대. 모레는 된다 하고. 거짓말 안 하는 집으로 보내 줘서 왔어.”
그녀는 작은 무 뿌리 둘을 내밀었다. 돈 대신 받을 수 없다고 하자 장수는 시장에서 안 팔리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수현은 값을 물었고, 흠난 부분을 빼고 동전을 줬다.
조일은 무를 부엌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이제 증거 말고 저녁도 잘라 볼 수 있겠네요.”
칼질은 조일이 했다. 수현은 씻는 일만 거들었다. 서린이 장부를 덮는 동안 가게 안에는 오랜만에 쇳물 아닌 음식 냄새가 났다.
해 질 무렵 도문결이 보낸 두 번째 연락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양식 설명이 아니었다. 대행 인계료 수령인을 확인하려면 수리점도 제칠차 검사 물품 인수 여부를 밝히라는 요구였다.
수현은 사본의 마지막 칸을 읽었다.
‘인계 물품: 검사 불합격품 일부.’
그는 모루 밑에서 꺼낸 낡은 쇠자를 떠올렸다. 이제 그 물건은 합의회 별도 함에 있었다. 숙부가 남겼다고만 생각했던 불합격 시편이었다.
수현은 서린을 보았다.
“쇠자를 제게 넘겼다는 뜻으로 쓰려는 겁니까?”
“그 뜻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조일이 국 끓이는 불을 줄였다. 가게가 잠깐 조용해졌다. 수현은 불합격품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적힌 숙부 장부의 빈칸을 떠올렸다.
그 빈칸이 수리점까지 돌아와 입을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