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나루의 아침은 젖은 밧줄 냄새로 시작됐다.
수현은 물가에서 두 걸음 떨어져 걸었다. 손바닥에 다시 감은 천이 밤사이 굳었다. 오늘 쇠를 들어 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머리 위로 흔들리는 갈고리를 볼 때마다 손이 먼저 움직이려 했다.
곽두가 짐터 한 귀퉁이를 비워 뒀다. 탁자는 없었고 뒤집은 빈 궤짝이 있었다. 서린이 종이를 얹으려 하자 그가 손으로 막았다.
“그건 방금 물 묻었소.”
조일이 마른 돗자리를 깔았다. 서류에는 서류 밑에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수현은 어제 가게에서 세어 온 동전의 무게가 주머니를 당기는 걸 느꼈다.
합의회는 기록지 보존과 제한 열람의 품삯을 승인했다. 사람을 더 빼 쓰는 일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곽두는 정산을 맡는 일꾼 하나만 잠시 세우고 나머지는 배로 보냈다.
“밤배 늦으면 내 말을 들어 주는 사람도 없어져.”
그는 커다란 저울 아래로 수현을 데려갔다. 쇠고리에 나무 저울대가 걸렸고 한쪽 접시는 두꺼운 판자로 돼 있었다. 사람들이 짐을 내려놓을 때마다 기둥에서 낮은 소리가 났다.
수현은 그 소리를 듣고 눈을 감지 않았다. 내력을 보낼 필요가 없는 소리였다. 나무 밑동이 단단한 바닥에 닿아 있는지 먼저 봤다.
“무게표 숫자는 어느 저울로 쟀습니까?”
“저걸로. 돌추는 따로 보관했소. 값을 속인다고 싸움이 난 뒤로.”
곽두가 쇠테를 두른 돌추를 가져왔다. 옆에는 나루에서 쓰는 확인 표식이 파여 있었다. 수현의 가게 추와 단위가 조금 달랐다. 조일이 같은 이름을 쓰고도 값이 다르냐고 묻자 곽두는 강 건너서는 쌀 한 말도 다르다고 했다.
수현은 곧바로 환산하지 않았다. 같은 저울에서 같은 날 잰 두 짐을 먼저 비교하기로 했다. 자기가 아는 값으로 바꾸면 숫자만 더 정확해 보일 수 있었다.
기록지에는 죽은 짐꾼의 표시가 남아 있었다. 글자를 다 쓰는 대신 짧은 획 둘을 교차했다. 곽두는 그 사람이 늘 마지막 획을 길게 뺐다고 말했다.
“버릇만 보고 진짜라고 하면 안 되겠지?”
“기록한 걸 본 사람이 있습니까?”
곽두가 옆의 일꾼을 가리켰다. 그는 이름을 말하고 그날 둘이 번갈아 추를 올렸다고 했다. 쓰는 순간을 계속 본 것은 아니었지만, 두 번째 무게를 함께 읽었다고 했다.
수현은 두 줄을 봤다. 첫 짐에는 봉인 상자 둘. 두 번째에는 상자 둘에 보조 짐 하나를 합쳤다고 적혀 있었다. 품목명은 여전히 검 열 자루였다.
조일이 손가락으로 두 수치를 빼다가 멈췄다.
“보조 짐을 넣고도 품목이 같아요.”
“겉을 싼 판자였을 수 있어.”
수현은 대답하며 옆줄을 봤다. 포장재 무게를 따로 적는 칸이 있었다. 바로 그 칸이 두 번째 줄에서는 비어 있었다.
그들은 상단의 납품 검 무게와 비교하려던 종이를 접었다. 포장을 포함한 짐 무게를 검만 잰 것과 맞추는 것은 틀린 비교였다. 문제는 몇 자루가 더 들어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더했는지 확인할 칸이 사라졌다는 데 있었다.
곽두가 창고 처마를 가리켰다.
“빈 상자는 돌려받았소. 장명이 새것이라고 하면서도 늘 회수하거든.”
서린은 그날 돌아온 상자가 어느 것인지 물었다. 곽두는 모른다고 했다. 한쪽 벽에 같은 상자들이 쌓여 있었고, 귀퉁이 표지는 빗물에 많이 지워졌다. 지금 하나를 골라 그날 물건이라 할 수는 없었다.
조일의 어깨가 처졌다. 수현은 오히려 빈칸 옆에 작은 선을 그었다. 못 찾은 상자를 못 찾았다고 남기는 것도 오늘 얻은 것의 일부였다.
옆에서 짐 내리는 소리가 끊겼다.
빈 상자 더미 위쪽에서 판자 하나가 미끄러졌다. 누군가 젖은 끈을 풀다가 끝을 놓친 모양이었다. 수현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상처가 천 안에서 당겼다.
곽두가 그의 팔꿈치를 잡아 뒤로 끌었다.
판자가 돌바닥을 쳤다.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짐터 일꾼 둘이 나머지 상자를 받치고 줄을 다시 걸었다. 조일은 서류를 돗자리째 안아 바깥으로 물렸다.
수현은 빈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날아오는 판자를 붙잡았다면 종이도 손도 오늘 안에 끝났을 것이다.
“가게 손은 가게에서 쓰시오.” 곽두가 말했다.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건 손이 아니라 버릇이오.”
수현은 대꾸하지 못했다. 짐터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서류를 확인했다. 먼지가 조금 묻었을 뿐 물에 젖은 것은 없었다.
낙하한 판자는 생각보다 두꺼웠다. 수현은 부러진 면을 보고 조일에게 작은 자를 달라고 했다. 곽두가 뭘 하느냐고 묻자 그는 무게를 비교할 수 있는지 보겠다고 답했다.
“그날 상자라고 쓰지는 않습니다. 포장도 만만한 무게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고요.”
일꾼들은 깨진 판자를 저울에 올렸다. 젖은 끈을 더하고, 빼고, 다시 쟀다. 조일이 각각의 값을 적었다. 종이에만 있던 보조 짐이 젖은 나무와 밧줄의 무게가 됐다.
그 수치는 두 기록 사이의 차이를 모두 설명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남은 차이를 검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그날 상자 크기와 젖은 정도부터 몰랐다.
“확인할 게 더 늘었어요.” 조일이 말했다.
“빼야 할 잘못된 답 하나가 생겼지.”
수현은 자루 둘이 더 있었다는 문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보조 짐 구성과 별도 인계 여부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짐꾼이 이상하다고 말한 것이 무엇인지, 그 좁은 질문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저울 곁에서는 작은 배의 선원이 품삯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젖은 밧줄 무게까지 짐으로 셌다며 돈을 더 달라는 말이었다. 정산 일꾼은 물이 마르면 그만큼 빠진다고 대꾸했다. 곽두가 둘 사이에 서더니 줄을 누구 물건으로 셌는지부터 물었다.
줄은 나루 것이었다. 선원은 그걸 자기 배까지 운반했고 돌아올 때도 가져왔다. 물이든 줄이든 등에 진 일은 했다는 말에 일꾼은 목록을 다시 폈다. 곽두는 짐값을 바꾸는 대신 줄을 돌려준 품삯을 따로 적게 했다.
수현은 그 장면을 지켜봤다. 무게가 같은 것이 같은 일은 아니었다. 검 한 자루를 수리하는 일과,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일도 장부에서 다른 이름을 가져야 했다.
“형, 저기까지 배워 오는 거예요?”
조일이 물었다.
“배워 오면 밥값이 덜 들까?”
“당장은 더 들어요. 알아듣느라 배고파졌거든요.”
수현은 아침에 넣어 온 마른 떡을 꺼냈다. 조일은 둘로 나누고 원본 기록지와 멀리 떨어져 먹었다. 부스러기가 떨어진 젖은 바닥으로 참새들이 모여들었다. 강에서 부는 바람은 종이를 뒤집었지만, 누군가 오늘 한 일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한 시각이 거의 끝났다. 곽두는 기록지를 덮으려다가 마지막 장을 다시 폈다. 운반을 마친 뒤 줄을 긋는 정산 면이었다. 짐꾼들의 몫을 나눠 적은 칸 옆에 작은 덧글이 있었다.
‘별도 짐은 검사자 인계 후 지불.’
수현은 눈을 들었다.
“검사자가 나루로 왔습니까?”
“우리 쪽에서 본 사람은 없소. 그래서 품삯 받는 날도 다퉜지.”
“제 이름이 있었습니까?”
곽두는 대답하기 전에 장을 넘겼다. 먼저 기억으로 말하지 않았다. 인계인 이름 칸은 줄 하나로 비어 있었다. 다만 상단에서 돈을 받아 온 날짜가 품목 옆에 적혔다.
서린은 그 날짜를 사본에 옮겼다. 수현은 언뜻 그 날짜가 낯익다고 느꼈다. 숙부의 사후 검사표를 보던 감각이었다. 그러나 자기 장부 원본은 봉인돼 있었고, 지금 여기서 펼칠 수는 없었다.
조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날 장명에서 수리품 찾아갔어요.”
수현이 견습을 보았다.
“기억나?”
“돈 받은 날이라서요. 전날에는 쌀집에서 외상 안 된다고 했거든요. 그래도 영수증 봐야 해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일은 더 말하지 않았다. 쌀독 바닥의 날짜가 검사표 옆에 올 수 있다는 걸 이해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열람을 마치자 일꾼이 원본을 자기 함에 넣었다. 서린은 사본의 해당 줄만 대조받고 나루 표식을 받았다. 다른 화물주나 일꾼의 품삯은 옮기지 않았다. 곽두는 그 점을 확인한 뒤에야 함 뚜껑을 닫았다.
수현은 저울을 한 번 더 돌아봤다. 다음 짐이 이미 올라가 있었다. 진실을 찾느라 비워 달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은 끝났다. 저울은 오늘 먹고살 사람의 짐을 받아야 했다.
점심 무렵 가게로 돌아가는 길에는 젖은 판자 냄새가 옷에 배어 있었다. 조일은 무게표 사본을 품이 아닌 보자기에 쌌다. 땀에 젖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수현은 손바닥을 다시 펴 보았다. 아침보다 상처 가장자리가 붉었다. 의원이 며칠은 힘을 주지 말라고 했는데 반나절도 잘 지키지 못했다.
“오늘 정밀 감정은 안 해요.”
조일이 먼저 말했다.
“종이만 볼 거야.”
“종이 보면서 상자도 붙잡잖아요.”
수현은 변명할 말을 못 찾았다. 대신 저녁에 문을 일찍 닫고 쉬겠다고 했다. 말만 약속한 게 되지 않도록 가게 문에 붙일 시간을 조일에게 적게 했다.
가게 앞에서 도문결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예의 바르게 비켜 섰다. 그 옆에는 상단 수레가 한 대 있었다. 수현은 수레에 묶인 빈 상자를 보았다. 밧줄에는 물기가 없었다.
“나루에 다녀오셨다지요.”
“필요한 기록을 봤습니다.”
“무게는 거래마다 달라집니다. 기름, 습기, 포장. 모르는 분들은 숫자 하나를 보고 검이 늘었다고 하지요.”
맞는 말이었다. 수현은 오늘 자기가 지운 문장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런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도문결은 잠깐 그를 보았다. 예상한 대답과 달랐는지 손가락이 수레 난간에서 멎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선생의 이름도 함부로 쓰인 것이라면 바로잡아야 하고요.”
“작성 경위 자료를 주시겠습니까?”
“찾고 있습니다. 다만 감정을 계속하시면 상단은 그동안 거래를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보관품의 이해관계가 얽히니까요.”
수현은 문 안의 낫과 호미를 생각했다. 상단 이름으로 맡긴 물건은 이미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쇠를 사는 작은 손님까지 끊기면 이야기가 달랐다.
조일이 보자기를 품에 더 가까이 당겼다.
서린이 들어오며 거래 중단의 범위와 이유를 서면으로 달라고 요청했다. 도문결은 정식 통지가 아니라 조언이라고 했다. 문장에는 이름표를 안 붙여도 사람을 누를 만큼의 무게가 있었다.
수현은 문을 열었다.
“조언은 들었습니다. 검은 봉인 상태로 두겠습니다.”
도문결이 떠나고 수레 바퀴 소리가 멀어졌다. 조일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돈함을 꺼냈다. 함 안에는 영수증과 함께 받은 정산 부표의 끈이 남아 있었다.
그는 서린에게 먼저 보여 준 뒤 한 장을 골랐다. 장명상단이 건넨 정산 부표였다. 수리 대금 수령증과 한 묶음이었고, 나루 일꾼이 돈을 받은 날과 같았다.
수현은 그 날짜를 사후 검사표 사본 옆에 놓았다.
“닷새.”
조일이 말했다.
“검사를 끝냈다는 날보다, 돈을 받았다는 날이 닷새 뒤예요. 그런데 이 부표에는 그날 검사 대행도 끝냈다고 적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