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초는 수현이 가져온 종이를 보기 전에 손부터 보았다.
“벌어졌군.”
“아직 붙은 적이 없습니다.”
관아 연락소의 작은 면담방이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문밖에 관아 사람이 앉았다. 윤초가 나갈 수 있는 문은 아니었다. 수현은 그녀 앞에 어젯밤 대조한 목록 사본을 놓았다.
원본 검사표는 합의회에 남겼다. 서린이 가지고 온 것은 대행 확인란과 번호를 옮긴 사본뿐이었다. 그녀는 앉기 전에 오늘 진술이 어디에 제출되는지 설명했다.
윤초는 자기 이름이 적힌 빈칸을 읽었다.
“여기는 서명하지 않았어.”
“본 적은 있습니까?” 수현이 물었다.
“이 양식은. 계약 끝내면 받는 확인지와 비슷해.”
“왜 어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윤초의 왼손이 종이 끝에 닿았다. 오른손은 깨끗한 붕대로 감긴 채 무릎 위에 있었다. 손잡이 하나 쥐지 못하는 손 때문에 이 방에서 약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대답을 늦추는 입이 그랬다.
“운반 계약을 어겼다고 하면 나를 믿을 사람이 없어질 줄 알았어.”
수현은 의자를 끌어 가까이 앉지 않았다. 탁자에 놓인 거리가 필요했다.
“안 했다고 믿어 주는 사람입니까, 한 일을 알고도 감정하는 사람입니까?”
윤초가 그를 올려다봤다. 잠깐 웃을 듯하더니 입술을 눌렀다.
“둘이 같은 줄 알았지.”
문밖에서 새가 울었다. 수현은 그 소리를 핑계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서린이 대답을 그대로 적는 동안 기다렸다.
윤초는 운반한 날의 해 위치부터 말했다. 버들나루 동쪽 짐터, 칠목표국에서 붙인 호위 둘, 상단에서 받은 봉인 짐. 자기 몫은 다른 사람이 뚜껑을 못 열게 하는 일이었다.
죽은 짐꾼도 그 조건을 알았다. 그러나 짐이 선착장에 내려왔을 때 그는 화물 쪽을 가리키며 무게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열어 보자고 했어?” 수현이 물었다.
“한 번만. 내가 막았어.”
“칼을 뽑았습니까?”
“아니. 뚜껑에 손을 올려놓고 계약을 말했지.”
윤초는 그때 자기 손을 놓았던 것처럼 탁자에 왼손을 폈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이었다. 수현은 그 손이 무엇을 막을 수 있었는지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보았다.
“그다음에는요?”
“표국에서 맡긴 인계 쪽지를 가진 사람이 왔어. 밖에 있던 짐 하나를 안에 합친다고 했지.”
“얼굴을 기억합니까?”
“짐꾼 얼굴은 기억해. 쪽지를 가져온 사람은 모자를 눌러썼고, 오래 서 있지 않았어. 이름은 듣지 못했어.”
서린이 물었다.
“쪽지의 글씨를 직접 읽었습니까?”
“인계 표시와 내 상관의 도장을 봤어. 내용은 그 사람이 읽어 줬지.”
읽지 않은 문장이 그녀를 움직였다. 수현은 검사표의 대행란을 떠올렸다. 자기 이름이 어떤 입에서 읽혀 나갔는지는 아직 몰랐다.
윤초는 자기가 본 범위와 나중에 들은 말을 나눠 다시 말했다. 두 짐을 합쳤다는 것은 전달자가 한 말이었다. 실제로 어느 상자 안에 무엇을 넣었는지는 못 봤다. 안쪽 창고로 짐이 옮겨졌고, 잠시 뒤 소리가 나서 들어갔다는 데서 이전 진술과 이어졌다.
“얼굴 가린 자와 맞붙은 건 그다음이야. 검이 부러졌고, 나는 물러났어. 쓰러진 사람을 본 건 그 뒤고.”
“그 사이에 누가 다녀갔는지 모른다는 뜻입니까?”
“내가 본 건 거기까지야.”
그녀의 말이 처음부터 빠르지는 않았다. 중간에 두 번 멈췄고, 같은 장소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설명했다. 서린은 문과 강 쪽을 그리게 했다. 그림 위에 서자 말의 순서가 정리됐다.
수현은 잘못 붙은 칼자루를 분리할 때를 생각했다. 힘껏 잡아당기는 것으로는 나무가 먼저 부서졌다. 다만 사람을 칼자루처럼 다룰 수는 없었다. 어느 틈이 아픈지는 당사자가 말해 줘야 했다.
“숨긴 걸 말하면 검의 결함도 거짓말이 됩니까?”
윤초가 물었다.
“쇠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건을 아는 척할 수도 없고요.”
수현이 답했다.
“이번에는 빠뜨렸다는 사실까지 함께 제출해야 합니다.”
윤초는 문밖의 사람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서린이 쓰기 전에 같은 말을 자기 입으로 다시 했다. 누가 옮겨 적어서 생긴 표현이라고 돌릴 수 없는 문장이었다.
면담이 끝나기 전 관아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추가 진술은 본 심문에서 확인할 것이며, 윤초는 당분간 연락소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수현에게 죄가 풀릴 것 같으냐고 묻지 않았다.
윤초도 나갈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현 앞의 빈 종이를 가리켰다.
“우리 의뢰는 이제 어떻게 되지?”
선금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수현의 이름도 관련 문서에 올랐다. 윤초의 검을 감정하는 일과 자기 결백을 주장하는 일을 한 주머니에 넣을 수 없었다.
수현은 새 조건을 읽었다. 원본은 합의회 보관. 칼날 수리는 하지 않음. 감정 결과와 사건 판단 분리. 수현의 대행 여부는 서린이 다른 기록과 대조. 모르는 사실을 감춰 달라는 요구가 오면 감정 의뢰 중단.
윤초는 마지막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중단하면 검도 내놓나?”
“아닙니다. 감정품은 그대로 보관합니다. 제가 그걸 거래할 권리는 없습니다.”
“좋군.”
“아직 값이 안 나왔습니다.”
“값까지 좋다는 말은 안 했어.”
그녀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수현도 그만큼만 웃었다.
서린은 선금 잔액에서 이미 쓴 물품비와 앞으로 청구할 감정 품삯을 나눠 쓰게 했다. 무죄를 받아 주는 대금은 없었다. 승패를 조건으로 품삯을 올리지도 않았다.
윤초는 다친 오른손으로 붓을 잡으려다 내려놓았다. 서린이 대신 읽어 주고 그녀가 확인할 수 있는 날인 방법을 정했다. 도장이 없는 사람의 동의를 어떤 손으로 남기는지, 셋은 잠깐 의논했다.
수현은 어제 검사표의 빈칸이 떠올라 서둘러 끝내지 않았다. 본인이 듣고 이해한 내용과 기록이 같은지 마지막까지 맞췄다.
윤초가 조건 사본을 받아 접었다. 왼손으로 접으니 모서리가 어긋났다. 그녀는 다시 펴려다가 그대로 품에 넣었다.
“저 짐꾼에게 미안하다고 쓰면 도움이 되나?”
수현은 대답을 고르느라 조금 늦었다.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요.”
윤초가 시선을 내렸다. 서린은 그 말도 진술에 추가할지 물었다. 윤초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본 사실을 먼저 쓰고, 사과는 가족에게 전할 방법을 관아에 따로 묻겠다고 했다. 죽은 사람의 가족이 듣기를 거절할 수도 있다고 서린이 설명했다.
수현은 그 대답을 기다렸다. 사과 한마디에 의뢰가 가벼워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가벼워진 것은 자기 마음뿐일 수 있었다. 그는 감정 조건 아래에 오늘 받은 진술의 날짜를 적었다. 늦게 한 말은 늦게 했다는 흔적까지 남아야 했다.
면담방을 나오자 조일이 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현은 견습을 안에 들이지 않았다. 상단이 노리는 물건이 있는 가게를 혼자 지키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다. 아침에는 이웃 목수에게 문을 봐 달라고 값을 약속했고, 조일은 합의회 서류 전달만 맡았다.
소년이 보따리를 내밀었다. 간밤에 남은 빵이었다.
“감정이 길어져서 점심 먹을 돈은 따로 안 남겼어요.”
수현은 빵을 반으로 나눴다. 손바닥 때문에 반이 아니라 세 조각이 됐다. 조일은 가장 큰 것을 받더니 작은 조각을 다시 수현의 손에 얹었다.
“어제보다 답이 생겼어요?”
“윤 표사가 뭘 했는지는 조금.”
“누가 도장을 찍었는지는요?”
“아직.”
조일은 낙심한 얼굴 대신 셈하는 얼굴을 했다. 답이 생기는 속도보다 밥이 없어지는 속도가 빨랐다.
가게에 도착하니 목수는 문고리를 고치고 있었다. 멀쩡한 문고리를 괜히 갈아 주는 것은 아니었다. 화재 소문을 들은 손님 둘이 맡긴 물건을 돌려 달라고 다녀가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 헐거워졌다고 했다.
수현은 남은 수리품부터 셌다. 낫 세 자루, 호미 둘, 경첩 한 벌. 검은 없었다. 검을 맡기는 손님은 상단 눈치를 봤고 농기구를 맡기는 손님은 불이 번질까 봐 겁냈다.
“검을 태운 것도 아닌데.”
조일이 중얼거렸다.
수현은 목수에게 약속한 값을 줬다. 가게를 지키는 일은 손님이 오지 않아도 끝낸 일이었다. 그 돈을 아끼면 내일은 맡길 사람이 없었다.
목수는 가게 안쪽을 가리켰다.
“아침에 들고 나갈 게 있다 했지요. 서린 서기와 함께 보시게.”
어제 요청한 옛 영수증이었다. 수현은 서린이 따라 들어온 뒤에 서랍을 열었다. 이름과 실제 대금을 함께 적은 종이 몇 장이 묶여 있었다. 옛 서명을 대조할 자료였다.
그중 하나는 숙부 장례 며칠 뒤 작성한 것이었다. 수현의 이름이 급히 기울어져 있었다. 쌀을 사고 남은 돈, 상가에서 빌린 그릇값. 자기 글씨라는 걸 알아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검사표의 대행란은 둥글고 반듯했다. 하지만 비슷하지 않다는 느낌만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서린은 같은 글자가 여러 번 나온 자료를 골라 사본과 대조했다. 관찰한 차이만 적고 필적을 판정할 다른 사람을 요청하기로 했다.
수현은 종이를 건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게 서랍 하나가 이렇게 넓을 줄 몰랐다. 손님 돈과 자기 이름과 숙부의 남은 일이 같은 먼지를 쓰고 있었다.
해가 마당 가운데로 내려올 때 곽두가 왔다. 나루 책임자는 문 앞에 놓인 낫을 피해 발을 디뎠다. 그는 검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문 지키는 사람은 이제 있소?”
“당분간은 둘이 번갈아 있을 겁니다.”
“그럼 내일 나루에 올 수 있겠네.”
수현이 이유를 묻자 곽두는 손바닥으로 자기 허벅지를 한 번 쳤다. 짐을 들어 본 사람의 무게 재는 동작이었다.
“죽은 친구가 짐이 다르다고 했다면서. 그 말은 관아에서 물어 왔소. 우리가 적은 무게표가 있어.”
서린이 고개를 들었다. 곽두는 원본은 들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루의 하루 품삯을 정산하는 기록이라 함부로 빼 올 수 없었다. 모든 운송인의 몫이 함께 걸려 있었다.
“열람할 수 있습니까?”
“그날 기록과 필요한 칸만. 일하는 사람 자리를 비워야 하니 내일 해 뜬 뒤 한 시각. 공짜로 내줄 건 아니고.”
“얼마입니까?”
곽두가 값을 말했다. 조일은 바로 곡식값으로 바꿔 계산하는 얼굴을 했다. 수현도 같은 셈을 했다. 둘의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서린은 사건 기록 열람 비용으로 합의회에 먼저 요청하겠다고 했다. 수현은 자기 몫이 생기면 부담하겠다고 답했다. 빚을 안 지는 일과 도움을 안 받는 일은 달랐다.
곽두가 떠나려다 문턱에서 돌아섰다.
“그 친구는 무게가 틀리면 늘 두 번 쟀소. 틀린 저울 탓으로 품삯을 깎이는 걸 싫어했거든.”
그가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이번에도 두 번 적었더군. 싣기 전 것하고, 누가 옆짐을 더한 뒤 것.”
수현은 막 서랍에 넣으려던 영수증을 내려놓았다.
칼을 쥐지 않은 손이 짐을 막았다. 그 손이 비켜선 뒤, 배에 실린 무게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