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장이 저절로 걸어 다니진 않죠?”
조일이 쇠자를 보고 말했다. 새벽에 돌아온 얼굴에는 잠이 없었다. 윤초는 관아 연락소의 빈방에 머물렀고, 오늘 아침 감정 뒤 정식 출석하기로 했다고 했다.
수현은 도장을 모루 위에 놓았다. 쇠자에 찍힌 것은 숙부가 쓰던 옛 도장이었다. 지금 도장보다 백 자의 끝이 짧았다.
“걸어 다닐 수는 있지. 누가 들고 갔다면.”
“숙부님이 살아 계실 때요, 돌아가신 뒤요?”
“그걸 알아내야 해.”
수현은 오래된 검사 장부를 꺼냈다. 창틀에서 새어 든 빛에 종이 끝의 좀먹은 자국이 드러났다. 조일이 밥을 퍼 왔다. 묽은 죽에 소금이 조금 들어 있었다.
“먹으면서 보세요. 형이 쓰러지면 제가 대신 못 들어요.”
“뭘?”
“쇠가 하는 말이요.”
조일은 그 감각을 신기해하지 않았다. 어릴 때 처음 들었다고 말했을 때도, 일감을 두 배로 할 수 있느냐부터 물었다. 지금도 쓸데없는 기대를 하지 않는 점이 좋았다.
수현은 죽 한 숟갈을 삼켰다.
장부에는 제칠차 납품 검사가 적혀 있었다. 합격 여덟, 불합격 둘. 불합격품 회수 확인 칸은 비어 있었다. 납품 수량은 열 자루인데 회수된 것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이것만으로는 못 써.”
“왜요? 불합격이라고 돼 있잖아요.”
“뒤에 회수하고 안 적었을 수도 있어. 숙부가 빈칸을 잘 남겼지.”
수현은 자기 말이 변명처럼 들리는 걸 알았다. 숙부는 손기술은 정확했으나 장부 쓰는 일을 싫어했다. 그 성미를 수현이 그리워하는 일과, 기록의 빈칸을 신뢰할 수 없는 일은 별개였다.
두 사람은 장부를 덮지 않았다. 조일이 같은 내용을 옮겨 적었다. 수현은 쇠자의 앞뒷면을 종이에 눌러 본떴다. 원본에 새 흠집을 내지 않으려고 먹은 종이 쪽에만 얇게 발랐다.
아침 종이 울릴 무렵, 문밖에 남자가 섰다.
고운 비단옷은 아니었다. 먼지 묻은 회색 도포, 잘 관리한 가죽 신, 허리에 짧은 검 한 자루. 남자는 문 옆의 수리비 표부터 읽었다.
“백진석 선생의 조카분이시군요.”
“수리는 닷새 걸립니다.”
“수리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남자가 명패를 놓았다.
장명상단 검사 책임자 도문결.
그 이름은 전날 윤초의 입에서도 나왔다. 검을 먼저 맡아 두겠다던 사람.
수현은 먹종이를 뒤집어 놓았다.
“영업 전입니다.”
“길게 걸리지 않을 겁니다. 어제 의뢰를 받으신 물건,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합의회가 보관합니다.”
도문결은 실망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그런 물건은 개인이 떠안기에 짐이 큽니다. 선생께서도 그 점을 아셨다면 오래 고생하지 않으셨을 텐데요.”
수현의 손이 멎었다.
숙부는 기침이 오래가다 죽었다. 죽기 전까지 일을 놓지 못했다. 그건 누구나 아는 일이었고, 누구나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돌아가신 분하고 무슨 거래가 남았습니까?”
“그분께 드릴 돈이 남았습니다.”
도문결이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은전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조일의 눈이 움직였다.
“미지급 검사비입니다. 선생의 도장과 장부를 상단에 반환해 주시면 정산하겠습니다.”
“장부는 우리 겁니다.”
“상단 검사의 일부를 위탁받으셨지요. 문서 소유는 계약에 따릅니다.”
“계약부터 보여 주십시오.”
처음으로 도문결의 미소가 얇아졌다.
“합의회에서 보시게 될 겁니다.”
“그럼 거기서 정산하지요.”
은전 주머니가 다시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도문결은 나갈 때까지 조일을 쳐다보지 않았다. 자기보다 값이 작은 물건은 굳이 확인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조일이 문을 닫았다.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요?”
“세어 보진 못했네.”
“저는 소리로도 몰라요.”
수현은 웃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둘은 장부와 쇠자를 각자 다른 보자기에 쌌다. 도장은 수현의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회랑 창고는 합의회 건물 뒤에 있었다. 회랑이라는 이름과 달리 곡식을 넣던 낡은 창고였다. 문 앞에만 새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서린이 먼저 와 있었다. 윤초는 관아의 심부름꾼 한 명과 함께 담 아래 서 있었다. 오른쪽 손목의 붕대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도문결이 다녀갔습니까?” 수현이 물었다.
“조금 전에. 감정 입회를 요구했습니다.”
“거절하셨습니까?”
“그럴 근거는 없습니다. 거래 당사자에게 반론할 기회도 줘야 합니다.”
서린은 수현이 내민 보자기를 곧바로 풀지 않았다. 누가 언제 발견했고 발견 뒤 누가 만졌는지부터 물었다.
조일이 자기 이름을 말했다. 장부를 가져오면서 한번 펼쳐 봤다고도 덧붙였다.
“어디까지 읽었습니까?”
“불합격 둘요. 그리고 쌀값 밀린 데요.”
서린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둘 다 그대로 적겠습니다.”
그녀는 새 물건을 별도 목록에 올렸다. 전날 봉인한 검의 함과 섞지 않았다. 함의 끈과 봉랍은 수현과 윤초가 직접 확인한 뒤 풀었다.
파편은 둘 다 있었다.
수현은 짧은 파편의 방향을 표시한 종이부터 확인했다. 누군가 바꿔 끼웠다면 그 작은 조각부터 사라졌을 터였다.
그때 도문결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뒤에 짐꾼 둘이 긴 상자를 들고 있었다.
“비교하시라고 같은 납품 검을 가져왔습니다.”
상자에는 반짝이는 새 검이 들어 있었다.
수현은 그것을 보지 않고 서린에게 물었다.
“합의회 보관 시편은요?”
“지금 꺼내겠습니다.”
서린이 창고지기에게 열쇠를 건넸다. 창고지기는 안쪽 칸으로 들어갔다. 나무가 긁히는 소리, 쇠고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도문결이 양손을 소매 안에 넣었다.
“장인이 직접 가져온 것을 믿지 않으십니까?”
“믿음을 감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수현이 답했다.
“어느 검이 언제부터 어디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윤초가 눈썹을 조금 올렸다. 어제 수현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오늘은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듣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보관 시편은 기름종이에 싸여 나왔다. 서린은 인수 날짜를 읽고 봉인지의 번호를 장부와 맞췄다. 도문결이 가져온 검에는 별도로 임의 제출품이라고 썼다.
수현은 두 검의 길이와 무게를 쟀다. 새 검은 보관 시편보다 조금 가벼웠다. 손잡이 모양은 같았지만 균형이 달랐다.
“차이는 허용 규격 안입니다.” 도문결이 말했다.
“그 규격도 봐야겠습니다.”
수현은 보관 시편에 손끝을 댔다. 숨을 고르고 미세한 힘을 흘렸다.
다시 침묵이 걸렸다.
칼등 가까이에 긴 틈이 있었다. 윤초의 검에서 느낀 것보다 좁고 길었다. 같은 결함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멀쩡한 검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도문결이 가져온 새 검은 깨끗하게 울렸다.
수현은 두 자루의 위치를 바꾸지 않고 종이에 표시했다. 그다음 작은 나무망치로 같은 지점을 가볍게 두드렸다. 누구나 들을 수 있게.
맑은 소리 하나.
낮게 갈라지는 소리 하나.
창고지기가 고개를 들었다.
“보관이 잘못됐군요.” 도문결이 말했다. “여기 습기가 많습니다.”
가능한 반론이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윤초가 그를 보았다. 불만이 얼굴에 드러났다.
수현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 보관 기록과 납품 당시 검사표를 함께 봐야겠습니다. 습기로 생긴 결함이라면 쇠자와 부러진 검, 보관 검이 왜 비슷한 위치에서 반응하는지도 설명해야 하고요.”
“비슷하다는 건 백 수리공의 감각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아직 같은 쇠라고 안 적었습니다.”
수현은 기록지를 돌렸다.
세 개의 그림 아래 각각 다른 말이 있었다. 파단면, 내부 결함 의심, 비교 필요. 범인이라는 글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도문결은 종이를 한동안 보았다.
윤초가 왼손으로 탁자 가장자리를 짚었다.
“그러면 내 검은 원래 부러질 검이었다는 건가?”
“그것도 더 봐야 합니다. 결함이 있어도 어떤 힘을 받았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정말 답이 느리군.”
“검은 빨리 부러졌으니 답이라도 천천히 내야지요.”
조일이 웃음을 삼키다가 기침했다.
서린이 도문결에게 납품 원본을 요구했다. 상단 책임자는 직접 가져오겠다며 몸을 돌렸다. 서린은 창고지기에게 문 앞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강제로 붙잡지는 않았지만 나갈 때 기록을 남기라는 뜻이었다.
수현은 그사이 쇠자를 꺼냈다.
서린이 지워진 글씨를 읽었다. 제칠차. 불합격.
“이것은 검사 도구입니까, 시편입니까?”
“숙부가 불합격 검의 뿌리를 잘라 자로 만든 것 같습니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모릅니다.”
“인장은요?”
수현은 안주머니의 도장을 내놓았다. 옛 도장이라고 설명했다. 어제 검 함에 찍은 현재 도장과도 나란히 놓았다.
서린은 아무 말 없이 두 도장을 찍었다. 옛 도장의 끝이 짧았다. 쇠자의 흔적과 같았다.
“유품은 언제부터 본인이 관리했습니까?”
“숙부 장례를 치른 뒤부터입니다.”
“장례 전후로 다른 분이 출입했습니까?”
수현은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상단이 조문을 왔다. 장부를 찾겠다며 가게 뒤를 둘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들어왔는지 일일이 기억하지 못했다. 슬픔 때문에 기억하지 못했다는 말도 증거가 되지는 않았다.
“여러 명입니다. 명단은 없습니다.”
서린은 그대로 썼다.
그 빈칸이 수현의 가슴에 박혔다. 자신은 어제 윤초에게 빠진 사실을 적겠다고 했다. 오늘은 자기 차례였다.
도문결이 밖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말뜻은 들리지 않았다. 조일이 문 쪽으로 움직이자 수현이 소매를 잡았다.
“혼자 가지 마.”
“들으려는 게 아니라 물 마시려고요.”
“물도 같이 마시자.”
서린은 감정품을 임시로 다시 봉인했다. 정식 검사에 쓸 절단 도구와 입회인을 확보하기 전에는 손대지 않기로 했다. 수현도 동의했다. 이미 한 번 부러진 검에 새 상처를 더할 이유가 없었다.
안쪽에서는 늙은 정리꾼이 바닥에 흩어진 종이를 묶고 있었다. 창고지기가 그에게 함께 나가자고 했지만, 노인은 번호가 뒤섞인 채 두면 다음 사람이 고생한다며 손을 저었다. 수현은 그 말에 뒤를 돌아봤다. 창문은 높고 좁았다. 종이 더미 뒤에는 물통도 보이지 않았다. 낮이라 등잔은 쓰지 않는데 어디서 탄내가 나는지 잠시 신경이 쓰였다.
“아저씨, 금방 다시 들어올 겁니다. 그때 같이 하시지요.”
노인은 알았다는 뜻으로 손을 들었다. 그 손등이 먹물로 까맸다. 수현은 그 손을 나중에 기억하게 됐다.
그들이 마당으로 나왔을 때, 도문결 옆의 남자가 급히 달려왔다. 손에는 합의회 표지가 찍힌 작은 쪽지가 있었다.
서린이 쪽지를 읽었다.
“무슨 일입니까?” 수현이 물었다.
그녀가 창고 쪽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잠겨 있던 안쪽 칸. 시편과 함께 검사표를 보관한다던 곳이었다.
“제칠차 검사표가 없어졌습니다.”
윤초가 낮게 욕을 삼켰다.
서린은 쪽지를 접지 않았다.
“어제 저녁 목록 확인 때는 있었다고 합니다.”
수현은 도문결을 보았다. 상대는 놀란 표정이었다. 그 표정의 진위를 수현은 알 수 없었다.
안쪽 창문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누군가 창고 문을 닫았다.
밖에서,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