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로 가는 길은 세 개였지만, 오늘 고를 수 있는 길은 하나였다.
르네아는 문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는 멎었고 남쪽 골목에는 볕이 남아 있었다. 다리 쪽의 계단은 아직 젖었을 것이었다. 세르단은 평탄한 길로 짧게 다녀오는 것이 오늘 좋겠다고 말했다.
아침에 그는 몸이 전날보다 편하다고 했지만 빠른 방향 전환은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점심 뒤 자기 그림의 마무리를 하고 저녁 전에 걷고 싶었다. 서로의 대답이 실제로 맞은 뒤에 두 사람은 신발을 신었다.
르네아는 도면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남자도 희곡을 집에 뒀다. 집을 나오는 두 사람이 그 순간 꼭 작가와 환영사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길모퉁이의 긴 그림자를 보자마자 자기 창을 생각했다.
세르단이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지금은 걷는 중이라고 답했다가 웃었다. 큰 방이 자꾸 따라온다고 솔직히 고쳤다. 남자는 자기 대사도 아까 신발 안까지 들어왔다고 했다.
“어떤 줄인데요?”
“지금은 쉬겠다는 줄이요. 그런데 자꾸 소리 내고 싶군요.”
르네아는 그 줄은 집에 돌아가서도 살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남자는 종이가 물에 빠지지만 않으면 그렇겠다고 답했다. 둘은 운하 옆의 낮은 길로 들어섰다.
물가에는 아직 낮에 일하던 배가 있었다. 짐을 다 내린 배의 선체가 전보다 조금 높이 떠 있었다. 그녀는 그 차이를 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공연장을 채우는 사람만 세다가 비워진 물건의 모양을 보게 된 날이었다.
세르단은 배를 보며 무대 뒤에서 받침을 뺄 때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르네아는 오늘도 일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했다. 남자는 그것까지 집에 두고 오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일을 안 하는 날과 일에 관해 말하지 않는 날은 같지 않았다. 다만 지금 본 배를 조사하거나 물건을 고치러 내려가지는 않았다. 둘은 자기 길의 마른 돌 위에 있었다.
처음 쉬기로 한 벽 옆에는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세르단이 멈춰 그 자리를 봤다. 르네아는 조금 더 가면 된다고 말하려다가 그가 어디서 쉴 수 있을지 물었다.
남자는 앞의 가게까지 갈 수는 있지만 오늘은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가방을 자기 어깨 쪽으로 고쳐 메고 함께 섰다. 쉬는 자리에도 다른 사람의 오후가 있었고, 비켜 달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낮은 벽에 앉은 두 사람은 빵을 나눠 먹고 있었다. 한 사람이 작은 조각을 물에 던지려 하자 동행이 손을 붙잡고 무언가 말했다. 르네아는 그 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처음 함께 걷던 날에는 남자의 얼굴만 보려고 했음을 떠올렸다. 오늘은 쉬는 곳과 길의 물기, 자기 어깨의 가방까지 한꺼번에 보였다. 덜 설레는 것인가 잠깐 의심했지만 그의 팔이 가까이 오자 그 질문은 조금 우스워졌다.
“지금 손을 잡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세르단은 좋다고 답하고 손을 폈다. 손가락이 맞닿았지만 그를 이끌어 어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둘은 그대로 서 있었다.
잠시 뒤 벽의 자리가 났다. 세르단은 앉기 전에 물기를 확인하고 천천히 몸을 낮췄다. 르네아도 옆에 앉았다. 손을 놓자 찬 공기가 두 사람 사이로 조금 들어왔다.
그녀는 가게에서 차를 사 올지 물었다. 남자는 오늘은 자기 물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르네아는 따뜻한 것을 마시고 싶었다. 그 말을 하자 세르단은 자기는 여기서 쉬고 있을 테니 다녀와도 좋다고 답했다.
그녀는 혼자 가게에 갔다. 작은 잔에 차를 받고 돌아올 때 벽 쪽을 봤다. 남자가 다른 곳으로 사라질까 두려운 눈은 아니었다. 잠깐 멀리서 보는 그 사람의 옆모습을 새로 알고 싶었다.
세르단은 물 위가 아닌 자기 신발 끝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가자 고개를 들고 웃었다. 르네아는 무얼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집에 소금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했다고 했다.
그녀는 차를 흘릴 뻔했다. 한 번쯤은 자기 생각을 했다고 대답해 줄 수도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남자는 그러면 저녁에 소금을 누가 사 올지도 같이 떠올랐으니 그녀 생각도 했다고 답했다.
“정말 훌륭한 연애군요.”
르네아가 말했다. 세르단은 다음 희곡에 넣으면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는 그 장면은 자기 것이라고 답했다. 둘이 웃은 뒤 실제로 돌아가는 길에 가게에 들를지 정했다.
그 웃음이 잦아들자 르네아는 어제 답장을 보내고 조금 후련했다고 말했다. 아직 상대가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는데도 자기 말을 쓰고 나니 방이 넓어진 것 같았다. 세르단은 자기도 그랬다고 했다.
그녀는 한편으로 제안을 놓칠까 아쉽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남자는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좋은 선택을 하면 손해와 아쉬움이 하나도 없어지는 세상은 아니었다. 물 위에서 빈 배가 짧게 흔들렸다.
세르단은 그 제안이 돌아오지 않아도 지금 쓰는 대사를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르네아는 자기 큰 방도 계속 그릴 것이라고 했다. 집의 두 책상은 아직 그 모든 것을 만들어 낼 큰 재산은 아니었지만, 오늘 다시 앉을 자리는 있었다.
잠깐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런 침묵이 생기면 그녀가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 줘야 할 것 같았다. 손끝에서 새라도 꺼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도 있었다.
지금의 길에는 환영을 만들 바닥 회로가 없었다. 그녀는 자기 손을 그냥 무릎 위에 뒀다. 마음을 빛으로 바꿔 보일 수 없어서 불편한 대신 남자에게 실제로 말해야 하는 날들이 있었다.
“어제 조금 질투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세르단은 무엇을 두고 그랬느냐고 물었다. 르네아는 그가 혼자 보여 주고 싶은 장면을 먼저 썼을 때라고 답했다. 자기부터 독립된 큰 방을 이야기했으면서, 그의 종이를 보니 덜 쓸모 있는 사람이 될까 겁이 났다고 했다.
남자는 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봤다. 르네아는 바로 괜찮다는 말을 달라고 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다만 자기가 어제 정확한 답만 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세르단은 자기도 그녀가 큰 방의 입구를 설명할 때 자기는 어디 서 있을지 먼저 찾았다고 말했다. 아직 그려 넣지 않은 자리가 많다는 걸 아는데도 그랬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그녀가 잘못 그렸다는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
르네아는 종이의 작은 인물 하나를 떠올렸다. 그 사람을 남자로 채우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채우고 싶어 했지만, 실제로 세르단이 서고 싶은 자리는 그에게 물어야 알 수 있었다.
“그 방에서 꼭 같이 일하지 않아도, 끝난 뒤 저를 만나러 와 주면 좋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남자는 지금 할 수 있는 약속을 고르려는 듯 잠깐 생각했다. 매번 공연 끝에 가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실제 날짜가 생기면 보고 싶은 마음부터 말하겠다고 답했다.
르네아는 그 대답을 받았다. 어렴풋한 영원보다 작았지만 얼굴을 보고 다시 물을 자리가 남았다. 그녀는 그가 보러 오는 장면만이 아니라 자기 혼자 막을 내리고 돌아오는 밤도 가질 수 있었다.
해가 더 낮아지자 물 위의 등 그림자가 길어졌다. 세르단이 이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심한 어지러움은 없지만 오늘은 이만큼에서 아쉬운 채 끝내고 싶다고 했다. 르네아는 차를 다 마시고 잔을 돌려줬다.
돌아가는 길의 폭이 좁아지는 곳에서는 손을 놓았다. 두 사람은 앞뒤로 천천히 걸었다. 르네아는 앞에서 속도를 맞추려고 자꾸 뒤를 돌아보다가 남자가 괜찮은 간격을 말하자 그 말을 따랐다.
가게에서는 작은 소금 봉지와 오늘 저녁에 쓸 채소를 샀다. 짐은 한쪽으로 몰아 들지 않았다. 집까지 필요한 양을 고른 것이어서 값은 생각보다 적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생활이 저절로 나아지는 표는 아니었다.
그녀는 동전이 남은 주머니를 닫았다. 남자가 빵도 보느냐고 묻자 오늘 집에 아직 있다고 답했다. 세르단은 그 사실을 알고 물었다고 했다. 르네아는 그럼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에 도착하자 길에서보다 공기가 따뜻했다. 남자는 가까운 의자에서 쉬었고 그녀는 신발을 벗고 물을 올렸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한 번씩 묻고 나니 할 말이 더 없어도 방은 비지 않았다.
문 아래에는 소멜의 답쪽지가 와 있었다. 며칠 뒤 정한 시간 안에서 그림을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일로 길게 맡는 감수는 아니고 짧게 서로의 것을 보는 자리라고 범위도 적혀 있었다. 르네아는 자신이 맞출 수 있는지 달력을 본 뒤 답했다.
전날 보낸 제작 답장의 수신 소식은 아직 없었다. 그녀는 빈 소식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차갑게 거절당했다고도, 좋은 조건이 오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종이를 해당 봉투 안에 넣었다.
저녁을 먹은 뒤 세르단이 짧게 한 장을 읽어 주겠다고 했다. 르네아는 오늘은 자기도 듣는 데 피곤해서 내일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남자는 좋다고 했다. 아까 길에서 자기 마음을 이야기한 것만으로 하루의 힘을 다 쓸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세르단은 조금 아쉽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읽고 싶은 한 장은 내일도 자기에게 남는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그 뒤를 더 고치지 않았다.
부엌을 치운 뒤 르네아는 자기 방의 창을 잠깐 열었다. 운하에서 돌아온 공기가 어두워져 있었다. 도면 속 큰 방은 여전히 종이 위에 있었고 작은 집의 창은 손으로 밀면 실제로 열렸다.
세르단이 문 앞에서 안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좋다고 답했다. 남자의 팔은 등을 가볍게 감쌌고 그녀도 그의 허리에 손을 놓았다. 오래 버티는 동작이 아니라 잠깐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몸이었다.
르네아는 입을 맞추고 먼저 물러섰다. 남자가 웃었다. 그녀는 오늘의 산책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소금을 잊지 않아 특히 좋았다고 했다. 그녀는 웃으며 그 말을 연애극의 마지막 줄로 쓰지 말라고 했다.
각자의 방으로 가기 전 둘은 내일 아침의 빵을 나눠 뒀다. 일찍 일어난 사람이 다른 몫을 먹지 않는 간단한 약속이었다. 그것은 두 사람의 모든 차이를 해결하지 않았지만, 내일 다시 시작할 일을 작게 만들었다.
르네아는 침대에 누워 오늘 걷지 않은 두 길을 떠올렸다. 더 긴 산책도 높은 다리도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른 길의 저녁이 덜 실제가 되지는 않았다. 잔을 내려놓은 자리와 서로에게 털어놓은 말이 남았다.
벽 너머에서 종이가 한 번 접혔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듣고 눈을 감았다. 내일은 또 자기 이름으로 선을 그을 것이고 남자도 자기 줄을 쓸 것이었다. 같은 집의 아침은 그 두 일을 한 작품으로 묶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