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단 씨.”
이름을 부른 뒤 르네아는 자기가 얼마나 자주 대답을 다른 것으로 바꿔 왔는지 알았다. 실의 장력을 봐야 해서, 대사가 덜 써져서, 수프가 뜨거워서. 모두 실제로 해야 할 일이었지만 지금 눈앞에는 풀어야 할 매듭도 식혀야 할 그릇도 없었다. 남자는 자기가 좋아한다고 한 말을 거두지 않은 채 기다렸다.
“저도 당신을 좋아해요.”
한 문장으로 말하니 목이 아프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게 나왔지만 그에게는 들렸다. 세르단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조금 펴졌다. 르네아는 그 손을 보고 나서야 자기 손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잘 움직이는 사람이라서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잘 안 움직일 때 제가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도 아니고요.”
그녀는 말을 하다 멈췄다. 아닌 것들을 계속 지우다 보면 좋아하는 사람은 종이 가운데 남은 흰 자리처럼 될 것 같았다. 그가 직접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자기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알았다.
“당신이 고르는 걸 자꾸 보고 싶어요. 공연도, 점심도요. 제가 고른 것과 다르면 왜 그런지 묻고 싶고요.”
세르단의 입가가 움직였다. 그녀는 그가 웃기 전에 자기도 웃었다. 오른쪽 문을 고르던 남자, 너무 낮아진 의자를 고친 남자, 오늘 자기 말의 차례를 기다리던 남자가 가까이에 앉아 있었다. 전부 아는 얼굴인데 아직 더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 걸 구애라고 불러도 되나요.”
르네아가 물었다. 세르단은 잠깐 눈을 내렸다 다시 들었다.
“제게 물으시는 거라면, 저는 좋습니다.”
“그럼 당신에게 구애할게요.”
이번에는 입술이 저절로 올라갔다. 포스터에 쓸 수 없는 말이었다. 무대 속 여자가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녀가 자기 시간을 조금 더 내어 이 남자의 모르는 것을 알고 싶다는 말이었다. 남자가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면 듣고, 다음에 다시 물어보고 싶다는 뜻까지 들어 있었다.
“저도 당신에게 구애하고 싶습니다.”
세르단이 말했다.
르네아는 그 말에 잠깐 아무것도 못 했다. 서로 좋아한다고 말한 다음부터는 조금 능숙해질 줄 알았다. 남자가 같은 말을 자기 목소리로 돌려주자 의자가 갑자기 좁아졌다. 가까이 옮긴 것은 자기였는데,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자기 것이었다.
“지금 손 잡아도 돼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빈 손바닥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실을 정리해 씻고 난 손이었다. 살갗이 매끄럽지는 않았고 손톱 아래 검은 것이 조금 남았다. 남자의 엄지가 손등을 가볍게 눌렀다. 르네아는 그 감촉 때문에 다음 말을 놓쳤다가 다시 찾았다.
“내일 갑자기 서툴러져도, 오늘 한 말을 농담으로 바꾸지는 않을래요.”
“저도 그러겠습니다. 서투르면 무엇이 어려운지 말해 보죠.”
그녀는 알겠다고 했다. 상대를 편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이미 편하지 않은데도 좋은 순간이 있었다. 지금 그의 손을 잡고 얼굴을 오래 보는 일도 그랬다. 목덜미가 뜨거워지는데 눈을 돌리기는 싫었다.
세르단이 잠깐 웃음을 거뒀다. 르네아가 무슨 일인지 묻자 그는 오늘 처음 좋아한다고 말해 놓고 곧 쉬러 가야 한다고 말하기가 좀 아쉽다고 했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도 몸의 피곤함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저도 아쉬워요.”
그녀가 답했다.
“아쉽다고 해서 안 가도 되는 건 아니지만요.”
그는 그렇다고 했다. 르네아는 손을 꼭 쥐었다가 조금 풀었다. 아쉬움을 예쁘게 감추면 남자가 더 편하게 떠날지는 몰라도, 자기가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을 듣지 못할 터였다. 그녀는 떠날 사람을 붙들지 않으면서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얼굴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가기 전에 입 맞춰도 될까요.”
세르단이 물었다. 르네아는 그가 물은 덕분에 이번에는 자기가 고개만 끄덕이지 않기로 했다.
“네. 그러고 싶어요.”
두 사람은 앉은 채 조금 가까워졌다. 르네아는 그의 다른 손이 의자 옆에 놓인 것을 봤다. 그가 편한 높이에서 멈추자 그녀도 몸을 기울였다. 첫날보다 짧게 웃었고 입술은 조금 더 오래 닿았다. 그다음에는 둘 다 물러났다. 방 안에는 자기들이 숨 쉬는 소리 외에 공연을 이어 주는 소리가 없었다.
르네아는 웃으며 이마를 짚었다. 별일도 없는데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세르단이 자기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답했다. 남자는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기 얼굴도 비슷할 것 같다고 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그가 웃었다.
문을 잠그고 나올 때는 바닥빛을 끝까지 남겼다. 로비에서 하던 습관이었지만 손을 잡고 나온다고 그 순서를 생략할 이유는 없었다. 세르단은 안문 앞에서 외투를 고쳐 입었다. 르네아가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손을 내밀자 그는 골목 갈림길까지 같이 잡고 가고 싶다고 했다.
“저도요.”
그녀가 답했다. 극장 안에서 했던 말이 바깥까지 이어졌다. 오늘부터 거리가 달라졌다고 돌길이 평평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평소보다 조금 천천히 걸었다. 르네아는 손의 온도를 들킨 사람처럼 자꾸 미소가 났다. 이번에는 앞을 보는 동안에도 그가 옆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고개를 급히 돌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둘 다 문을 지나치지 않았다.
세르단이 먼저 와 있었다. 르네아가 좋은 아침이라고 하자 그가 같은 인사를 했다. 어제보다 쉬운 문장이었다. 그녀는 물병을 놓고 오늘 점심에도 같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낮에는 다벨에게 초상에 대한 답을 전하러 가야 하니 저녁 전에 잠깐 볼 수 있겠다고 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했다. 좋아한다고 들은 다음 날의 첫 제안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어제 말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도 않았다. 점심을 같이 먹으려고 빵집의 다른 수프를 생각해 뒀다고 말하자 남자는 어떤 수프인지 물었다. 그녀는 나중에 보러 가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브론은 탁자 위에 대본과 장부를 나란히 놓았다. 선창 공연 뒤 다시 보고 싶다는 이웃 두 명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것이 새 공연을 열 비용이 생겼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는 우선 열흘 동안 다음 짧은 재공연을 준비할지 물었다. 두 사람이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싶은지가 먼저였다.
르네아는 세르단을 봤다가 곧 대본을 봤다. 어제 남자와 나눈 말 때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면, 어떤 극을 만들고 싶은지 묻는 질문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녀는 마지막 장면은 남기고 처음의 빛은 낮은종 공간에 맞게 다시 넓혀 보고 싶다고 했다. 손바닥 크기가 좋았어도 여기서 해야 할 모양은 달랐다.
세르단은 넓어지는 빛이 자기 왼쪽 시야를 가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장면을 하루에 여러 번 하는 방식에는 바로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 횟수를 정하지 않았으니 먼저 비어 있는 바닥에서 동선을 보자고 답했다. 두 사람의 의견이 만나는 데 어젯밤의 손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브론은 펜을 언제 부를지 물었다. 르네아는 자기들이 문장과 자리부터 고친 뒤 정한 시험일에 와 달라고 하겠다고 했다. 그 전에 새 회로의 하중 시험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펜의 시간을 막아 두고 두 사람이 대본을 고치는 동안 기다리게 만들 수는 없었다.
열흘 전체를 하루 종일 같이 일하는 기간으로 쓰지는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은 다른 목공과 환영 손질 일을 이미 맡고 있었다. 우선 둘이 가능한 오전 두 번을 골랐다. 그다음 펜에게 가능한 날과 일당을 묻고, 이브론은 준비비를 어디서 낼지 확인하기로 했다. 재공연 날짜와 표는 그 뒤였다.
“그럼 지금 정한 건 열흘 동안 같이 고쳐 보자는 데까지군.”
이브론이 말했다. 르네아와 세르단이 각각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대본 첫 장에 두 이름을 적었다. 옆에 오늘 정하지 않은 돈과 날짜를 남겼다. 르네아는 이름 사이가 어제 초상보다 훨씬 멀다는 생각을 했다. 장부의 같은 줄에 앉는 거리와 로비에서 옮긴 의자의 거리는 달라도 됐다.
세르단은 대본을 넘겨 배표를 반 접는 장면을 다시 봤다. 바깥 관객에게 손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녀는 그렇다면 손을 크게 움직이기보다 두 사람이 탁자에 종이를 놓고 다투는 편이 어떠냐고 했다. 그는 손바닥 크기의 종이를 무릎에 놓아 봤다. 르네아가 그 종이 끝을 잡아당기자 그가 놓지 않았다.
“이러면 제가 뺏는 사람 같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실제로 뺏으셨습니다.”
“당신이 안 놔줬고요.”
둘은 잠깐 웃었다. 이브론은 다음 말을 들으려다 점심 전에 볼 일이 있다며 일어났다. 르네아는 남자와 마주 앉아 종이를 고쳐 접었다. 서로 좋아한다고 말해도 연기를 잘못하면 다시 해야 했다. 다만 전날보다 틀린 동작을 말하기 쉬웠다. 자기가 손을 뺏었다고 남자가 웃는 동안에도, 그의 호감까지 뺏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약속한 시각이 되자 큰물결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르네아는 문구에 제 이름도 같이 들어가니 완성된 종이를 다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세르단은 그렇게 전하겠다고 했다. 그는 대본과 확인받을 초상을 서로 다른 봉투에 넣었다. 르네아가 봉투를 반대로 건네자 그가 이름을 확인하고 바꿔 들었다.
작은 실수 하나에 또 웃음이 났다. 그녀는 어제 말한 서툼이 이렇게 빨리 쓸모를 찾을 줄 몰랐다. 세르단은 문 앞에서 저녁에 어디서 만날지 물었다. 오래 걸어야 하는 곳 대신 낮은종 로비에서 잠깐 보기로 했다. 그때 몸을 봐서 빵집까지 갈 수도 있었다. 점심에 못 먹은 수프는 저녁에도 남아 있을지 몰랐다.
그가 떠난 뒤 르네아는 혼자 대본을 읽었다. 마지막 문장 ‘같은 문으로 나가요’를 밑줄 그었다. 바로 다음에 사랑한다는 말을 넣으면 더 선명해질까 생각하다 연필을 멈췄다. 자기들이 어젯밤 한 고백을 인물들에게도 당장 시킬 필요는 없었다. 이 여자에게는 배표를 들고 문을 나서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새로 고칠 첫 장면에만 표시했다. 환영을 쓰는 손과 종이를 잡을 손이 같은 순간에 바빠지는 곳이었다. 좋은 기분이라고 매듭이 하나 더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오전에 끝낼 수 있는 만큼 읽고 나서 대본을 덮었다.
저녁에 세르단이 돌아왔을 때 르네아는 빵집 얘기부터 했다. 남자는 오늘 걸어도 되는 거리를 생각하고 가까운 탁자까지 가자고 했다. 두 사람은 문을 나섰다. 이름을 붙여 남에게 소개하는 일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오늘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겨 두지 않았다.
“저 오늘도 같이 있고 싶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세르단이 손을 내밀었다.
“저도 그랬습니다.”
르네아는 그 손을 잡았다. 누가 두 사람을 보느냐는 것은 잠깐 잊었다. 함께 걸어가는 사람의 저녁이 궁금했다. 그가 아직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녀가 다음에 물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