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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 전체 이용가 152화

기울어진 싹을 그냥 두는 날

본문 5,117자 · 공백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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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275일째 유리는 판 하나와 봉인 병 여섯 및 빈 병 둘의 분리 보관을 이백여든째까지 실제로 연장하고 대금을 냈다.

외부 받침 종이의 둥근 자국을 담당과 확인한 뒤 안쪽 봉인은 열지 않고 바깥 받침만 교체해 따로 두었으며 경과를 적던 편지는 손이 당겨 마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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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일흔엿새째 오전, 유리는 전날 쓰다 만 편지부터 끝내지 않았다. 잠에서 깬 오른손이 조금 뻣뻣했다. 종이에 남긴 반 문장은 마른 쟁반 위에 있었다. 세온이 실제로 돌아갔다는 소식은 아직 받지 못했다. 그녀는 편지를 더 빨리 맡긴다고 그 답이 앞서 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봉투를 한번 만졌다.

아침을 먹고 나니 손의 당김이 조금 풀렸다. 그녀는 보관 경과 뒤에 뜰에서 마신 차 이야기를 썼다. 그날 잎의 이름을 묻지 못했고 차의 향은 어렴풋이 기억한다는 말이었다. 잘 기억하고 싶다고 실제로 아는 이름을 만들어 넣을 수는 없었다. 세온이 나중에 답해 준다면 그때 새로 알 수 있었다. 오늘 편지는 그 질문도 담았다.

떠난 아침의 의자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다가 짧게 남겼다. 문을 닫고 나서 의자를 조금 돌렸다고 했다. 그가 앉던 자리를 치워 버렸다는 뜻으로 읽힐까 걱정돼 한 줄을 더 썼다. 지금 자기 몸에 편한 쪽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유리는 그 설명이 변명처럼 길어지기 전에 펜을 놓았다.

몸을 쉬었다가 현재 전달 창구에 봉투를 맡겼다. 오늘 맡겼다는 사실과 그가 받을 날짜는 나뉘어 있었다. 유리는 돌아오는 길에 책을 살까 생각했지만 가방에 더 넣지 않았다. 읽던 책은 아직 뒤가 남아 있었다. 새로운 것을 들고 와야 빈 방이 덜 비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물을 마시고 잠깐 앉았다.

숙소에 돌아오니 에다가 복도에서 줄을 읽고 있었다. 손에 든 종이는 새것이었다. 번진 첫 문장을 다 되살리지는 못했다고 했다. 대신 자기가 기억하지 못한 사람의 표정을 한 줄 썼다고 말했다. 유리는 읽어 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에다는 지금은 소리로 한번 읽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방문자는 신발 끈을 다 맸다. 그런데 문 안의 사람은 발을 보고 있지 않았다. 붙잡을 말을 고르느라 손에 들린 빈 잔을 닦고 있었다. 유리는 그 잔 때문에 장면의 온도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전에 들은 줄에서는 사람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먼저 났다. 이번에는 잔의 바닥을 문지르는 소리가 그 소리를 가렸다.

그녀는 그렇게 읽혔다고 말했다. 에다는 원래 있던 동작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물 때문에 잃어버린 줄을 좋은 일로 만들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까 화가 났던 마음은 남았고 지금 쓴 줄이 마음에 드는 것도 함께 있었다. 유리는 그 두 마음을 하나로 정리해 줄 필요가 없어 좋았다. 친구가 자기 종이를 접었다.

다음 날은 이백일흔이레째였다. 유리는 오전에 온실의 관람 자리를 잠깐 보고 싶었다. 전에 다녀온 뒤 몸이 무거워졌던 시간을 떠올렸다. 오늘은 들어갈 수 있는 구역과 쉬는 자리를 현재 안내로 확인하고, 오래 서 있지 않는 범위를 골랐다. 일을 받으러 가는 약속은 아니었다. 에다는 자기 원고를 마친 뒤 따로 올 수 있다고 했다.

온실 문 앞에서는 공기가 먼저 달라졌다. 따뜻하다는 말 하나로 묶기에는 흙 냄새가 더 선명했다. 유리는 소매를 접으려다 손을 내렸다. 일하는 손의 모양으로 서지 않아도 안을 볼 수 있었다. 현재 담당은 관람하는 길을 가리켰다. 그녀는 가까운 의자의 위치를 받고 그쪽부터 걸었다.

햇빛이 닿는 받침에는 어린 싹들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다. 유리는 그중 하나의 줄기가 남들보다 더 누운 것을 봤다. 몸이 먼저 그쪽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지금 자기에게 보이는 것은 한 번의 모습이었다. 옮기기 전후와 물을 받은 때를 모르는 채 세워 주면 좋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담당이 가까이 왔을 때 그 싹을 가리켰다.

담당은 전날 빛을 받는 자리를 바꿨다고 했다. 줄기가 다시 방향을 잡는지 보는 중이었다. 급히 곧게 묶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유리는 그 설명을 듣고 손을 무릎에 놓았다. 쓰러진 것처럼 보인 모양이 지금 실패한 돌봄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관람 자리에서 본 한순간으로 다른 사람의 이틀을 고치려 하지 않아도 됐다.

“저는 저걸 보면 먼저 받쳐 주고 싶어져요.”

그녀가 말했다. 담당은 자기도 처음에는 그랬다고 했다. 유리는 그 말 뒤에 배움을 다 받은 사람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이지 않았다. 자기 온실에서도 비슷한 판단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자기 손이 쉬는 날에 남의 싹을 보면 더 급해졌다. 돌보지 않는 시간에 전문성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감정은 담당에게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맡은 화분 쪽으로 돌아갔다. 유리는 의자에 앉아 기울어진 싹을 봤다. 그 자리에서 기다려도 몇 분 사이 곧게 서지는 않았다. 잎 그림자가 손등을 조금 지나갔다. 그녀는 오늘 자기 몸이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속도가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눈앞에서 결과를 받지 않고 돌아갈 수 있었다.

에다는 조금 늦게 왔다. 원고를 더 쓰다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고 했다. 유리는 자기 때문에 늦었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서 좋았다. 친구는 같은 싹을 보고 죽은 것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현재 담당에게 들은 범위를 설명했다. 살아 있다고 단정하는 말 대신 빛 방향을 바꾼 뒤 줄기의 변화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에다는 그러면 오늘은 그냥 기울어져 있어도 되는 것이냐고 했다. 유리는 담당이 정한 관찰 안에서는 그렇다고 답했다. 친구는 그 말이 좋다며 자기 종이를 꺼내려다가 멈췄다. 지금 적으면 온실을 보러 온 시간이 글로 바뀐다고 했다. 유리는 바꿔도 되지만 자기는 지금 조금 더 앉겠다고 말했다. 에다는 가방을 내려놓고 옆에 앉았다.

온실 안에는 다른 방문자들도 있었다. 한 사람은 작은 꽃보다 천장의 물방울을 오래 봤다. 유리는 떨어지는 자리를 확인하려다 현재 안내된 길 바깥이라는 것을 보고 시선을 거뒀다. 담당이 그쪽을 살피고 있었다. 모든 물방울이 그녀를 부르는 신호는 아니었다. 자기가 분리 보관으로 맡긴 여섯 봉인 병의 안쪽 상태를 여기서 짐작하지도 않았다.

짧게 걸으니 오른손 아래로 당김이 올라왔다. 유리는 지금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에다는 더 보고 싶은 꽃이 있어 남겠다고 했다. 그녀는 혼자 돌아갈 수 있는지 현재 몸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가 끝까지 동행하지 않아도 둘이 온 일이 틀린 방문이 되지는 않았다. 온실 문 앞에서 그녀는 잠깐 쉬고 그늘로 나왔다.

바깥의 찬 공기가 소매에 닿자 온실 안의 따뜻함이 더 분명해졌다. 유리는 손을 주머니 속 천 위에 놓았다. 길모퉁이에서 아까 그 기울어진 싹을 다시 떠올렸다. 눈앞에서 바로잡지 않은 모양이 오래 남았다. 지금 자기 손을 낫게 만들기 위해 세온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도 그 옆에 있었다. 그는 자기 방문을 하고 돌아갔다.

숙소에서는 보관 담당이 맡긴 짧은 경과를 받았다. 외부 받침이 닿던 공간에 현재 보이는 누수는 없었고, 새 받침에서 같은 자국이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기존 종이의 흔적이 언제 왜 생겼는지는 아직 답할 수 없었다. 유리는 누수가 없으니 계절 현상이라는 결론을 쓰지 않았다. 원인 하나를 못 봤다고 다른 답이 자동으로 옳아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백일흔여드레째 다시 문의하겠다고 한 약속을 생각했다. 오늘 경과를 받았으니 같은 질문을 내일 그대로 보낼 필요는 없었다. 대신 다음 점검에서 새 받침의 변화 여부를 받고 싶다고 현재 창구에 남겼다. 병을 열거나 판을 옮기자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물건은 이백여든째까지 맡긴 범위에 남아 있었다.

방에서 누워 쉬다 보니 창문이 조금 어두워졌다. 유리는 세온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했다. 돌아왔을 수도 있었고 길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아직 그녀에게 도착한 말은 없었다. 걱정이 생긴다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 긴급하다는 봉투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가 약속한 짧은 소식을 받을 경로는 그대로 있었다. 오늘 받은 것은 보관 경과였다.

저녁 뒤 에다는 온실에서 더 본 것을 이야기했다. 기울어진 싹이 그 짧은 동안 곧게 서지는 않았다고 했다. 유리는 웃었다. 자기가 나간 뒤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친구는 그래도 한 잎 뒤의 빛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그녀는 같은 자리에 머문 사람이 받은 시간이 있었음을 느꼈다. 먼저 나온 사람에게는 없는 장면이었다.

에다는 그 이야기를 원고에 쓰지는 않겠다고 했다. 지금 자기 인물에게 온실이 필요하지 않아서였다. 유리는 꼭 실제로 본 것을 모두 써야 하는 것은 아니겠다고 답했다. 친구는 그러면 오늘 뭘 했느냐고 물을 때 손이 빈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도 소매를 접지 않고 온실을 나올 때 잠깐 그랬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각자 손바닥을 봤다. 에다의 손에는 잉크 자국이 남았고 유리의 오른손에는 받친 천의 주름이 있었다. 둘 다 오늘 아무것도 안 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손의 흔적을 하루의 성적처럼 세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친구에게 과일이 남았는지 물었다. 에다는 남았지만 자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유리는 웃으며 빵을 골랐다.

에다가 방으로 돌아간 뒤 유리는 메모의 마지막 단어를 보고 자기 글씨가 기울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왼손으로 받쳐 쓰느라 종이가 조금 돌아가 있었다. 그녀는 고쳐 쓰지 않고 읽을 수 있는지만 봤다. 읽을 수 있었다. 반듯한 줄이 아니어도 나중의 자기에게 오늘을 전할 수 있는 글씨였다.

펜을 내려놓자 손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유리는 온실의 기울어진 싹을 떠올리다가 웃었다. 닮았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지만 서로 같은 속도로 펴질 것이라고 약속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종이를 마른 쟁반에 두고 자기 방의 커튼을 조금 닫았다. 오늘 바라본 것을 잠들 때까지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밤에 책을 펴니 의자를 다른 집에 주었던 인물이 빌린 걸상을 받고 있었다. 자기 집에 꼭 맞는 물건은 아니었다. 앉으면 한쪽 다리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유리는 그 대목에서 잠깐 멈췄다. 책의 사람은 곧장 고치지 않고 어디가 흔들리는지 한동안 앉아 있었다. 오늘 온실에서 그냥 둔 싹이 머릿속에서 같은 방향으로 기울었다.

유리는 책을 자기 몸에 편한 각도로 다시 받쳤다. 지금 읽는 페이지는 그녀의 것이었다. 더 먼 장면은 내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세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새 메모에 적었다. 고쳐 주지 않고 본 것을 오늘도 기억할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곧장 편지로 맡기지는 않았다. 이백일흔엿새째 보낸 봉투의 도착도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말을 아껴야 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말은 자기에게 먼저 남겨 두고 싶었다. 창밖의 빛이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책의 흔들리는 걸상을 조금 더 읽었다.

15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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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날의 대답

Written by Grapheme · Published by Aldus Lib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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