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예순나흘째, 유리는 어제 시작한 답장부터 펴지 않았다. 아침에 오른손을 받친 천을 갈고 어깨를 움직여 본 뒤 식사를 했다. 창가에는 세온이 이백예순째 쓴 편지가 있었다. 그는 늦은 후보를 이백일흔이틀째부터 이백일흔나흘째 사이로 좁혀 보자고 했지만, 출발을 확정하지 않았다. 그 문장을 밤새 기쁜 쪽으로 고쳐 읽지 않으려 했다.
초안의 첫 줄은 그대로 쓸 수 있었다. 오늘 새로 생긴 사실이 아니라 어제 실제 받은 날짜였다. 그 아래에는 방의 현재 조건을 적었다. 두 종류의 방과 계단, 함께 조용히 앉을 작은 공간, 아직 예약이 없다는 말이었다. 세온이 싼 쪽을 고를 것 같아 그쪽만 적으려다가 멈췄다. 남의 돈을 아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남의 선택을 줄일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 쪽의 바람을 먼저 분명히 썼다. 늦은 기간이 현재 맞고, 같이 있는 동안 중간에 쉬는 때를 두고 싶었다. 방 밖에서 책을 읽을 때도 자기 손과 어깨가 불편하면 먼저 들어가 누울 수 있어야 했다. 그가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혼자 나가도 괜찮다고 적었다. 그 말을 쓰자 잠깐 서운했다. 실제로 혼자 나가는 모습을 아직 보지도 않았는데 그랬다.
유리는 서운함을 거짓 없는 문장이라고 지워 버리지 않았다. 보고 싶어서 혼자 나가는 시간이 아쉬울 수도 있다고 다음 줄에 적었다. 그래도 그 아쉬움을 이유로 같은 자리에 붙잡아 두고 싶지는 않다고 썼다. 두 말을 같은 종이에 놓는 것이 조금 어려웠다. 늘 너그럽게 기다릴 수 있는 사람처럼 쓰는 편지는 쉽지만 자기가 아니었다.
숙소 관리인이 복도에서 바닥을 닦았다. 유리는 말려야 할 자리가 마를 때까지 문 안에 남아 있었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순간 책상을 떠나 누웠다. 글을 몇 줄 더 쓰면 편지가 완성될 것 같았으나 전달 창구는 오후에도 열려 있었다. 지금 쉬면 보내지 못한다는 조급함은 실제 창구의 문보다 빨리 닫히고 있었다. 그녀는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에다가 문 앞에 있었다. 두드려도 되느냐는 질문을 문이 열린 뒤에 했다고 본인이 웃었다. 유리는 문을 열어 놓은 건 자기였다고 답했다. 친구는 점심 뒤 마레에게 원고를 돌려받으러 간다고 했다. 직접 읽어 본 종이에 무언가 적어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고, 아직 내용은 듣지 못했다. 유리는 답을 미리 좋게 골라 주지 않았다.
에다는 자기가 듣고 싶은 평이 너무 뚜렷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앞에서 웃었다는 말보다 다음에도 읽어 달라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는 반가운 부탁을 받으면 원고보다 먼저 날짜를 내주고 싶어질 때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있다고 답했다. 말하고 나니 조금 덜 멋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도 세온이 오겠다는 줄을 기다리며 비슷하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럼 편지에 멋있는 말을 덜 쓰라고 했다. 유리는 이미 쉬고 싶고 서운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썼다고 답했다. 에다는 그 편지는 본인이 읽을 것이 아니니 더 묻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원고에는 자기 주인공이 싫어하는 소리를 하나 더 넣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둘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도 다른 사람의 종이는 각자의 손에 남았다.
점심은 방 밖 식탁에서 먹었다. 숙소 사람 하나가 세온이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새 봉투가 온 것을 봤던 모양이었다. 유리는 늦은 후보 기간을 보고 있지만 아직 오기로 끝난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곧'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한 글자에 길과 인수와 방을 다 넣으면 다음에는 자기가 설명할 것이 더 많아졌다.
상대는 그럼 도착할 때 알려 달라고 했다. 유리는 숙소에서 받아야 할 범위가 생기면 관리인에게 먼저 말하겠다고 답했다. 누군가를 만나는 반가움을 모두에게 보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숙박할 사람이 생기는 일을 혼자만 아는 약속으로 둘 수도 없었다. 식탁에서 그 말을 나누고 나니 방의 모양이 조금 더 실제에 가까워졌다.
오후에 그녀는 답장을 마쳤다. 숙박비와 자기 보관비는 각자 현재 마련할 수 있는 범위에서 보아야 한다고 썼다. 세온이 와서 병과 시계 문제를 대신 풀어 줄 것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보고 싶다고 쓴 바로 뒤에 그 말을 놓으니 문장이 딱딱해 보였다. 그녀는 고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이유로 오래된 미해결까지 낭만으로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 방에 짐을 당연히 들여놓지 않겠다고 썼었다. 유리는 그 말이 고마웠다고 답했다. 다만 다른 방을 얻는 것이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은 아니라고 분명히 썼다. 같이 읽을 공간을 실제로 물어봤고, 오기로 정해지면 그때 현재 조건을 다시 확인하겠다고 했다. 허락된 시간을 함께 고르는 일에는 반가움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그 부분을 조금 더 크게 썼다.
마지막 인사는 세 번 바뀌었다. 기다리겠다고 쓰면 정해지지 않은 출발을 이미 재촉하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오라고 쓰면 길의 속도를 모르는 사람이 편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유리는 결국 '오실 수 있는 날을 함께 고르고 싶어요'라고 썼다. 그 뒤에 자기 오늘 하루의 이야기를 짧게 붙였다. 에다가 원고 평을 들으러 갔다는 내용은 본인의 허락 없이 자세히 쓰지 않았다.
봉투를 접기 전 그녀는 전체를 소리 내어 읽었다. 오른손으로 종이를 들지 않고 책상에 놓았다. 읽다가 자기 문장이 너무 공손해 보이는 곳에서 웃었다. 세온에게는 존댓말이 편했지만 모든 문장 끝에 불편하지 않으면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한 군데를 지우고 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것은 조건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었다.
전달 창구까지 가는 길에는 마른 바람이 불었다. 유리는 종이를 가방 안쪽에 넣었다. 이백예순하루째 보낸 편지의 도착을 아직 알지 못했고, 오늘 봉투가 그 편지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앞선 답에는 같은 방에서 깨어나 어느 줄인지 묻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오늘 답에는 후보 기간과 실제 숙소 조건이 들어갔다. 그녀의 하루가 조금씩 다른 봉투에 실렸다.
창구에서는 현재 묶음의 발송을 들었다. 유리는 주소와 받을 사람을 확인한 뒤 실제로 맡겼다. 종이가 자기 손을 떠나자 마음이 잠깐 비었다. 늘 잘 쓰고 나면 후련해질 줄 알지만 이번에는 한 줄 더 붙이고 싶었다. 세온이 졸면 자기도 놀리지 않겠다는 답이었다. 그 한 줄 때문에 봉투를 다시 꺼내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만나면 말할 수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온실에 들르지 않았다. 잠깐 들르면 테사의 현재 싹을 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보관 문의가 다음 날로 다가와 있었다. 오늘 남은 몸으로 모든 반가운 일을 거치고 싶지는 않았다. 길모퉁이 의자에 앉아 물을 마셨다. 손을 받친 천 끝이 조금 접혔다. 그녀는 왼손으로 펴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에다가 먼저 숙소에 돌아와 있었다. 마레는 방문자가 왜 자기 집의 불을 켜지 않았는지 물었다고 했다. 친구가 예상한 신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그 질문에 답을 써 넣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자기는 그 답이 없어서 좋은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에다는 본인도 그러면서 왜 남이 물으면 당장 고쳐야 할 것처럼 느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는 원고 한 구석을 보여 줬다. 마레가 자기 생각을 적은 짧은 줄이 있었다. 유리는 에다가 허락한 그 부분만 읽었다. 질문 옆에는 처음의 웃긴 소리가 좋았다는 말도 있었다. 에다는 자기 눈에는 질문만 크게 보였다고 했다. 그녀는 편지의 기다리겠다는 말을 세 번 고쳤다고 말해 줬다. 에다는 그럼 둘 다 남의 눈을 너무 빨리 빌려 쓴 날이라고 했다.
유리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지만 세온에게 보낼 새 편지를 꺼내지는 않았다. 하루에 좋은 말 하나를 들을 때마다 다음 봉투를 만들면 길이 종이로 메워질 것 같았다. 오늘 맡긴 글은 자기 말로 충분했다. 친구는 새 봉투가 아니라 저녁 먹으러 갈 생각을 하자고 했다. 그녀는 지금은 조금 쉬고 나서 식탁에 가겠다고 답했다. 친구는 먼저 나갔다.
방에 혼자 남자 내일 보관비를 다시 셈했다. 이백예순닷새째까지 맡긴 계약은 내일 끝났다. 다음 조건을 아직 실제로 듣지 않았으니 같은 값으로 계속된다고 적어 놓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지금 가진 돈과 식사, 숙소에 필요한 몫을 따로 놓았다. 오늘 받은 방 문의를 자기 지출로 미리 빼지는 않았다. 그가 머물 방은 그가 고를 일이고 비용도 당사자 사이에서 정할 일이었다.
그녀는 사고 싶었던 작은 책의 종이를 한쪽으로 옮겼다. 표지를 보고 적어 둔 이름이었다. 당장 사야 하는 물건은 아니었다. 보고 싶은 책을 뒤로 미뤘다고 손에 남은 돈이 기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관비를 내기 위해 스스로 욕심 없는 사람인 척할 필요는 없었다. 갖고 싶은 것이 남아 있는 채로 오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책의 이름은 지우지 않았다.
저녁 식탁에서 에다는 내일 같이 갈까 물었다. 유리는 보관 조건을 듣는 자리까지는 혼자 갈 수 있고, 돌아와서 짧게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친구는 오후 자기 시간이 맞으면 듣겠다고 했다. 반드시 빈 방에서 기다리겠다는 약속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정도가 지금 자신에게 충분한 부탁이라는 것을 느꼈다. 돈 이야기를 친구가 대신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방으로 돌아오며 그녀는 오늘 보낸 마지막 인사를 떠올렸다. 오실 수 있는 날을 함께 고르고 싶다는 말. 그 문장 안에는 아직 여행도 예약도 없었지만 자기가 고른 주어는 있었다. 세온이 자기 일의 실제 인수를 확인하는 동안 그녀도 자기 몸과 방과 비용을 보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오래 기다렸는지 셀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만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밤에는 책을 두 장 읽었다. 흔들리는 의자를 고친 사람은 기다리던 사람이 오지 않자 창문을 닫고 자기 수프를 데웠다. 유리는 그 사람이 무엇을 포기한 것인지 다음 문단을 읽었다. 포기가 아니라 너무 차가워진 저녁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기 따뜻했던 수프를 떠올리고 웃었다. 이야기 속 기다림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사랑이 차가운 그릇을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등불 아래 멈춘 시계는 같은 시각에 있었다. 유리는 새 봉투가 곧 그 바늘을 움직이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오래된 한 시간의 반환은 여전히 별도 기록의 문제였다. 오늘 세온에게 간 말은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청구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른 손을 천 위에 놓았다. 아직 직접 하지 못한 짧은 인사가 하나 남아 있었다. 졸면 놀리지 않겠다는 말은 다음 방의 빛까지 가져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