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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 전체 이용가 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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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유리는 이백쉰째에 판과 병의 분리 보관을 이백쉰닷새째까지 실제로 이어 맡기고, 에다가 읽는 짧은 글 한 편을 들었다.

그날 세온에게 쓴 답을 지역 창구에 맡긴 뒤, 다음에는 에다가 고른 글을 몸과 자리에 맞춰 듣고 싶다고 말했다.

133화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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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는 책을 읽기 전에 돌멩이부터 골랐다. 마당 끝의 납작한 돌을 들어 햇볕에 비춰 보더니, 이것이면 이야기의 한쪽을 붙들 수 있겠다고 했다. 유리는 그 말이 재미있어서 자기 쪽 종이를 먼저 눌렀다.

이백쉰하루째 오전이었다. 전날 보낸 편지의 접수 종이는 방에 두고 나왔다. 오늘 마당까지 가져온 것은 오른손을 받칠 천과 물 한 컵이었다. 에다가 빌려 간 책을 들고 왔으므로 책 두 권을 옮길 필요도 없었다. 앉는 자리를 정할 때 친구가 먼저 해의 방향을 봤다.

“어제는 제가 읽는 동안 유리 씨 얼굴이 계속 어두워졌어요.”

“이야기가 슬퍼서요?”

“지붕 그림자가 왔어요. 그 표정으로 저를 보셔서, 제가 잘못 읽는 줄 알았어요.”

유리는 의자를 조금 돌려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에다가 탁자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두 사람이 가구 하나의 다리를 번갈아 붙잡는 대신, 숙소에서 마당을 정리하던 사람이 빈 탁자를 옮겨 주었다. 유리는 손에 힘을 주지 않고 의자를 고를 수 있었다. 햇빛이 책 위에 걸렸다.

에다가 고른 글에는 집을 떠나는 사람이 나왔다. 유리는 첫 줄을 듣고 세온의 출발을 생각했지만 곧 책으로 돌아왔다. 글 속 사람은 누군가에게 가는 길도 아니고, 다시 올 날짜를 정하고 떠난 것도 아니었다. 자기에게 있었던 작별을 모든 이야기의 첫머리에 앉혀 놓으면 그 사람의 길은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는 중간에서 문장을 되짚었다. 문이 닫힌 뒤 누가 밖에 남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리는 왼손으로 책을 당기려다가 멈추고, 조금만 자기 쪽으로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에다가 책을 돌렸다.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짧은 쉼표가 있었다.

“여기서 숨을 쉬니까, 기다리는 사람이 바뀌네요.”

에다가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떠나는 사람이 기다렸고, 다음에는 집 안의 사람이 기다렸다. 글자는 한 번도 옮겨지지 않았다. 유리는 웃었다. 쉼표 하나가 사람을 방 밖으로 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친구는 그러면 자기가 문지기였느냐고 물었다.

“조금 성급한 문지기였어요.”

“그럼 이번에는 천천히 열게요.”

에다는 다음 문장을 느리게 읽었다. 누가 어디 있는지 눈에 들어오자 앞에서 재미없다고 했던 대화도 달리 들렸다. 유리는 그 대화를 잘 고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읽는 사람이 자기 호흡을 찾으면 살아나는 줄이 있었다. 그녀는 컵을 들어 목을 적셨다.

바람이 들어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책의 오른쪽 페이지가 들리면서 납작한 돌 밑에서 반 장이 빠져나왔다. 에다가 얼른 눌렀고, 탁자 옆에 세워 두었던 종이봉투 하나가 먼저 넘어졌다. 안에서 말라붙은 잎 두 장이 흘러나왔다. 둘 다 갈색이라 유리는 처음에 친구가 책갈피로 쓸 잎을 가져온 줄 알았다.

에다는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자기 화분을 봤다. 화분은 물이 닿아도 되는 받침 위에 있었다. 방금 날아간 잎은 그 화분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안심한 얼굴로 잎을 주워 봉투에 넣었다. 그러고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마레 씨가 아래 마당에서 주셨어요. 이것도 봄이냐고 물으시면서요.”

유리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에다는 숙소 아래 공동 온실의 오전 일을 맡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화분에 물이 나갈 자리를 봐 준 손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으나, 마레는 그 사람과 다른 당번이었다. 친구는 온실의 모든 사람을 한 사람처럼 부르던 말을 고쳤다. 오전에는 마레가 있고 오후에는 또 다른 손이 온다고 했다.

봉투에는 잎을 딴 날과 화분의 위치가 짧게 쓰여 있었다. 유리는 그것을 보고 바로 병명을 찾지 않았다. 오늘 책을 들으러 나온 사람이 종이 한 장을 받았다고 현장을 본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잎이 마르기 전의 색과 젖었던 흙, 햇빛이 든 자리도 그녀는 보지 못했다.

“왜 저한테 주셨을까요?”

“제가 유리 씨하고 책을 읽는다고 했어요. 잎도 읽을 줄 아실 것 같다고요.”

에다가 말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유리는 조금 웃었다. 친구가 자기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까지 틀렸다고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말라붙은 잎이 자신을 대신해 부탁을 받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봉투를 탁자 가운데 놓았다.

“잎은 글보다 말수가 적어요. 제가 모르는 걸 대신 대답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에다는 손을 무릎에 모았다. 그럼 자신이 잘못 말한 것이냐고 물었다. 유리는 부탁한 사람이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직접 들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지금 봄을 새로 빌려 달라는 뜻인지, 화분을 옮길 자리를 잠깐 봐 달라는 뜻인지도 달랐다. 에다는 그 둘을 묻지 않았다고 했다.

에다는 봉투의 접힌 곳을 한 번 폈다가 원래대로 접었다. 잎이 부서질까 봐 세게 누르지는 않았다. 자기는 유리에게 작은 일을 가져다주면 좋아할 줄 알았다고 했다. 지난번 세 장의 일을 마친 날 얼굴이 밝았던 것이 기억났다는 말이었다.

유리는 그날 기뻤다고 답했다. 그러나 기쁜 일을 한 사람이면 그다음 비슷한 부탁에도 언제나 웃으며 답할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친구가 자기 손을 보려 하자 그녀는 오른손 때문만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오늘 같이 책을 듣기로 한 일도 자기가 고른 좋은 일이었다.

에다는 그 말을 듣고 돌을 내려다봤다. 일거리와 시간을 같이 가져오면 두 가지를 모두 선물한 셈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시간 하나를 자기가 먼저 써 버릴 뻔했다고 했다. 유리는 선물의 잘못을 따져 갚을 빚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에는 먼저 물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다가 그건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잠깐 조용해진 뒤 친구가 그럼 지금 부탁을 하나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어떤 부탁인지 듣고 싶다고 했다. 에다는 자기가 먼저 읽었을 때 웃은 줄이 있는데, 유리도 거기서 웃는지 듣고 싶다고 말했다. 같이 웃어 달라는 부탁은 아니라는 말을 급히 붙이자 유리가 먼저 웃었다.

“그럼 이미 실패했네요. 아직 그 줄이 아닌데요.”

에다가 대답했다. 유리는 실패라면 웃음을 돌려줘야 하느냐고 물었다. 친구가 돌을 책 위로 다시 가져왔다. 그 뒤에는 잎 봉투를 읽는 자리와 겹치지 않도록 자기 가방 안에 넣었다. 오늘의 한 가지 부탁은 두 사람이 앉아 있던 탁자 위에 남았다.

둘은 읽던 글을 끝까지 들은 뒤에 움직이기로 했다. 에다가 당장 아래로 내려가 사과하고 오겠다고 해서 유리가 붙잡은 것은 아니었다. 친구가 책을 덮으며 남은 두 문단부터 마치고 싶다고 했다. 방금 불어온 바람 때문에 앞의 사람이 어디까지 갔는지 궁금해졌다고도 했다. 유리는 돌을 페이지 끝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마지막 문장에서 집을 떠났던 사람은 빈 주머니를 뒤집었다. 글 속에 있던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에다가 자신은 누군가 쫓아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유리는 자기는 그 사람이 돌아설 줄 알았다고 답했다. 두 사람이 고른 다음 장면은 모두 책에 없었다. 책은 그 뒤에 다른 사람의 아침으로 넘어갔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돌려보내고 싶어요.”

에다가 말했다. 유리는 종이를 넘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는 일이 반가워도 떠나는 사람의 선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세온이 제때 길을 나선 뒤 자기 방에서 쉴 수 있었다는 편지가 떠올랐다. 그녀는 그 소식을 받기 전 며칠 동안 자기 쪽 시간만 보고 있었다.

책을 덮자 마당이 갑자기 넓어 보였다. 글 속 문이 닫혔는데 현실의 문은 그대로 열려 있었다. 유리는 오늘은 여기까지 듣고 싶다고 말했다. 에다는 더 읽자고 권하지 않고 돌 밑에 남은 종이 조각을 챙겼다. 빌린 책에는 잎도 돌도 끼우지 않았다.

점심 뒤 마레가 직접 마당으로 올라왔다. 소매 끝에 젖은 자국이 있었고 손에는 비어 있는 나무틀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유리의 이름을 확인한 뒤, 에다에게 맡긴 잎 때문에 먼저 와야 했다고 했다. 유리는 앉은 채 인사했다. 마레도 빈 의자를 당겨 앉았다.

“온실 전체를 살펴 달라는 부탁은 아닙니다. 새로 들여놓은 낮은 선반이 있는데, 아침 물기와 사람 지나는 길이 한자리에서 부딪칩니다.”

틀은 선반에 얹는 작은 상자의 것이었다. 한쪽 모서리만 젖어 짙었다. 마레는 물기가 생기는 모습을 본 사람이 서로 다른 말을 해서, 내일 오전 같은 자리를 함께 보고 싶다고 했다. “봄을 빌릴 돈은…” 하고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유리는 지금 새 계절을 제안할 까닭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보여 준 틀만으로 온실을 판단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짧게 앉아서 현재 물기가 어디서 오는지 같이 보는 일이라고 했다. 오래 서 있거나 상자를 옮기는 손은 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레는 틀을 돌려 젖은 곳을 자기 쪽으로 옮겼다. 그 정도를 부탁하려고 왔다고 했다. 오전 당번이 자기이므로 문과 선반을 쓰는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전하고, 옮기는 일도 그쪽에서 맡겠다고 했다. 유리는 그동안 모아 둔 종이와 실제 자리를 같이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내일 몸이 괜찮으면 아침 식사 뒤 잠깐 가겠다고 답했다.

“싫으시면 거절해도 됩니다. 에다 씨가 벌써 해 주신다고 말한 건 아니었습니다.”

마레가 일어나며 덧붙였다. 에다가 뒤늦게 숨을 내쉬었다. 유리는 친구 쪽을 보고 고맙다고 말했다. 자기 이름으로 대답할 틈이 생긴 것이 좋았다. 말라붙은 잎은 마레가 가져갔다. 다른 사람의 의뢰를 지금 방에 들여놓지 않아도 내일 그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저녁에 유리는 창가에서 아래 온실의 지붕을 봤다. 어제까지는 지붕 끝만 보이던 건물이었는데, 오늘은 오전에 누군가 문을 열고 선반 곁에서 일하는 곳이 됐다. 멀리 있는 세온의 하루도 편지를 받기 전에는 저 지붕처럼 보이는 부분만 있는 날이 많았다. 그녀는 알지 못하는 자리를 마음대로 채우지 않고 컵을 내려놓았다.

방 안의 멈춘 시계는 변함없었다. 오른손의 천을 다시 펴자 아침보다 손목 아래가 편해졌다. 그녀는 자기 몸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짧은 차이를 들었다. 내일 온실에서 앉을 자리를 먼저 보겠다고 작은 쪽지에 적었다. 물기가 있는 모서리를 찾기 전에, 자신이 머물 자리를 정할 일이 있었다.

잠들기 전 에다가 돌을 문 앞에 놓고 갔다. 내일은 책을 안 읽으니 다시 마당으로 돌려줘도 되느냐는 말이 붙어 있었다. 유리는 돌을 집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바람이 한 장을 넘기는 데 필요한 무게가 오늘은 거기 있었다. 그녀는 문 너머로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 내일 보고 싶은 작은 온실의 길을 떠올렸다. 마당에서 돌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에다는 대답 대신 두 번 가볍게 문을 두드렸고 유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등을 기댔다.

13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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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 135화

선반 밑의 작은 물길

Written by Grapheme · Published by Aldus Lib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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