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마흔다섯째 날, 유리는 창문을 열기 전에 가방의 끈을 만졌다. 어제 세온에게 직접 멜 수 있다고 말했던 가방이었다. 오늘도 같은 답을 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오른손은 천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밤새 편하게 받쳤지만 오래 쥐면 불편한 곳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아침을 먹고 컵을 왼쪽으로 당겼다. 잠은 조금 얕았다. 세온이 떠날 수 있는 날이라는 사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몸이 덜 쉰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의 벌로 읽지는 않았다.
지역 창구의 첫 전달에는 돌아갈 이동 인수가 실제로 맞았다는 답이 있었다. 세온은 중간에서 한 번 쉬는 돌아갈 길을 받았고 오늘 정한 때에 출발할 수 있었다. 아직 길을 마친 사람의 답은 아니었다. 유리는 숙소 앞의 짧은 인사를 받을 수 있다고 남겼다. 멀리 걷지 않고 앉아서 만나고 싶다는 말도 썼다.
그녀는 답을 건네고 방으로 돌아왔다. 창문 아래에 둔 시계는 멈춰 있었다. 이제 그 멈춤을 볼 때마다 당장 자기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보관 중인 판과 여덟 병에는 현재 맡은 사람이 있었고 기한은 내일까지였다. 오늘 저녁에 다시 물을 일을 아침의 작별 안으로 끌어오지 않았다.
세온은 짐을 가지고 왔다. 처음 인사하러 왔을 때에는 자기 방에 두었던 가방이었다. 유리는 그 차이를 보자 가슴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는 옆 의자에 놓아도 되는지 묻고 앉았다. 여행 가방의 밑면에 길의 먼지가 마른 채 붙어 있었다. 여기 온 사람이 이제 돌아갈 사람으로 눈앞에 있었다.
“잘 잤어요?”
그가 물었다. 유리는 조금 얕게 잤다고 답했다. 보고 싶어서 기다리던 날에도 그랬고, 오늘은 떠나는 날이라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온은 자기 잠도 아주 깊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떠나기 전에 잊은 물건이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했다는 설명이었다. 유리는 자기가 잊힌 물건은 아니라고 했다. 그가 웃었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먼저 하면 조금 나을 줄 알았습니다.”
그의 말이 천천히 나왔다. 유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손을 내려다봤다.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같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다음 날짜를 받으면 오늘 덜 아쉽다고 답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먼저 오늘 헤어지는 것이 아쉽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 약속이 그 말을 지울 필요는 없었다.
세온은 알겠다고 답했다. 그는 가방 끈을 손바닥으로 한 번 폈다. 유리는 그 작은 동작이 말을 더 고르는 시간처럼 보였다. 그가 무슨 마음인지 전부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뒤 그는 자기도 더 앉아 있고 싶다고 말했다. 오늘 정한 이동은 바꾸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서둘러 가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이 그녀를 조금 편하게 했다. 유리는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의 일을 자기 탓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로델이 중요하니 자기는 아쉽지 않다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조금 더 보고 싶고 정한 때에는 떠날 수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숙소 담당이 컵을 가져다줬다. 어제 마당의 차와는 달리 아침의 물이었다. 유리는 자기 컵을 왼쪽에 두었다. 세온은 손잡이를 돌려 주려다가 손을 멈췄다. 이미 잡기 좋은 쪽이었다. 유리가 그걸 보고 웃자 그는 오늘은 자기가 조금 늦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늦게 알아차려도 되는 일이라고 답했다.
가방에서 그가 작은 종이를 꺼냈다. 유리가 어제 읽어 준 두 쪽에서 어디까지 들었는지 적은 쪽지였다. 내용을 베껴 둔 것은 아니고 다음에 자기 책을 펼칠 곳을 기억하려고 썼다고 했다. 그녀는 여행 가방의 빠뜨리지 않을 물건 안에 그런 종이가 있는 것을 봤다. 계약의 보관 인장과 다른 종류의 기록이었다.
“그 장면이 그렇게 궁금했어요?”
그녀가 묻자 그는 그 뒤도 궁금하지만 어느 줄에서 같이 웃었는지 잊기 싫었다고 답했다. 유리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런 말에 매번 침착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지금 바로 책을 펼쳐 더 읽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은 짧은 인사까지만 하기로 했다고 스스로 덧붙였다.
세온은 다음에 이야기할 것이 남았다고 했다. 유리는 남은 줄이 두 사람을 자동으로 다시 만나게 할 담보는 아니라고 농담했다. 그는 그래서 나중에 다시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녀는 좋다고 했다. 둘이 같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보다, 아직 모르는 답을 다시 묻겠다는 말이 오늘은 더 또렷했다.
에다가 마당 쪽에서 손을 들었다. 세온과 짧게 인사하고 싶다는 말은 어제 만남 뒤 유리가 따로 물어 두었다. 친구는 두 사람의 의자 사이로 곧장 들어오지 않고 길 옆에 섰다. 유리가 불러 세 사람은 서로 이름을 말했다. 에다는 자기 화분 이야기부터 꺼내려다 여행길은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세온은 오늘 중간 마을까지 가서 쉬고 다음 날 로델 쪽으로 간다고 답했다. 에다는 자기도 그 길에서 차를 놓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기다린 국이 오래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을 먹을 때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영주 대행에게 보고하는 사람도, 특별한 손님을 구경하는 사람도 아닌 짧은 인사였다.
친구가 간 뒤 유리는 그가 자기 마을의 사람과 말하는 모습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고 했다. 세온은 다음에는 오늘보다 조금 긴 인사를 물어도 되겠느냐고 했다. 그녀는 에다에게도 다시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지낼 다음 풍경을 떠올리는 일에 다른 사람의 자리까지 미리 넣을 필요는 없었다.
유리는 그의 돌아갈 길에 줄 물건을 준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차를 조금 나눠 줄까 생각했다. 그러나 짐이 늘어나고, 자기가 좋아하는 맛을 그가 반드시 좋아할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 생각을 그냥 말로 전했다. 세온은 받아야 했을 선물이 사라져서 아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대신 다음에 그 차를 같이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선물이 없다는 설명까지 하는 자신이 조금 우습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도 자꾸 다음을 약속해 오늘의 헤어짐을 잘해 보려 한다고 답했다. 둘은 웃었다. 유리는 오늘 잘 헤어졌다는 판정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잘 온 사람을 보내는 날에도 조금은 서툴 수 있었다.
바깥에서 출발 준비를 알리는 소리가 났다. 세온은 가방을 바로 들지 않았다. 먼저 유리를 보고 이제 일어나야겠다고 말했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이 불편해 짐을 챙기는 속도가 조금 느렸다. 그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돌아갈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머무는 사람의 손까지 빨라져야 하지는 않았다.
유리는 숙소 앞의 모퉁이까지만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실제 출발 자리까지는 조금 더 멀었다. 세온은 좋다고 답하고 자기 가방을 들었다. 그녀는 작은 가방을 직접 멨다. 오늘도 가능한 동작이었지만 어제 답을 반복해 증명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둘은 사람들의 길을 비켜 천천히 걸었다.
모퉁이에 이르자 바람이 셔츠 소매를 스쳤다. 세온은 여기서 쉬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녀가 앉을 낮은 자리를 먼저 보고 그가 곁에 섰다. 길의 턱을 넘는 마지막 몇 걸음을 함께 못 걷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아쉬움을 없애려고 몸이 괜찮다고 더 말하고 싶어졌다.
“저는 여기서 인사할게요.”
그녀는 그 말로 발을 멈췄다. 세온도 가방을 내려놓고 마주 섰다. 떠나기 전 잠깐 안아도 되는지 그가 물었다. 유리는 왼팔로 가볍게 닿는 쪽이 좋다고 답했다. 그가 그 범위를 지켰다. 짐의 먼지 냄새와 익숙한 옷감이 가까웠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세온은 고맙다고 말했다. 잘 맞아 줘서라는 말 뒤에 잠깐 멎었다. 유리는 자기가 그를 맞는 일을 해낸 사람처럼 들린다고 웃었다. 그는 함께 읽은 두 쪽과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준 시간이 좋았다고 고쳤다. 그녀는 그 답을 받았다. 자기도 그의 낮은 탁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로델에 도착하면 쉬고 나서 소식을 쓰겠다고 했다. 유리는 곧바로 답을 보내야 한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편지를 실제로 받으면 자기 날짜와 상태를 담아 쓰겠다고 했다. 길 위의 시간을 둘이 이미 여러 번 배웠다. 오늘 들은 출발을 내일 도착의 증거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유리가 먼저 손을 놓았다. 세온은 가방을 들고 길을 넘었다. 그녀는 그의 등이 사라질 때까지 서 있지 않았다. 가까운 자리에 앉아 숨을 골랐다. 그가 한 번 돌아봤을 때 그녀는 앉은 채 손을 들었다. 서서 끝까지 배웅해야만 멀리 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걸었다.
잠시 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유리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아침에는 그 소리 중 어느 것이 그의 것인지 고르려 했을 것이다. 지금은 이미 떠난 사람이었다. 남은 소리는 이 마을의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문턱 앞에서 한 번 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 두 개가 함께 있던 바깥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오른손 밑에 천을 펴자 손등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아침 인사는 길지 않았지만 몸은 쉬고 싶었다. 유리는 물을 마시고 창밖을 봤다. 오늘 더 읽지 않은 책을 서둘러 펼치지 않았다. 둘이 읽지 않은 줄이 있다고 혼자 읽는 것을 멈출 필요도 없었지만, 지금은 책보다 빈 컵을 가만히 두고 싶었다.
낮이 지나 지역 창구에서 실제 출발이 이뤄졌다는 짧은 고지가 왔다. 세온이 정한 이동에 인수됐다는 범위의 소식이었다. 중간 숙소에 들었는지, 로델에 닿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유리는 받은 답을 놓고 오늘의 길을 거기까지만 알았다. 눈으로 본 작별 뒤에 실제 출발이라는 사실이 하나 더 놓였다.
그녀는 저녁에 보관인에게 내일의 만료 전에 현재 조건을 다시 받고 싶다고 남겼다. 판 하나와 여섯 봉인병, 빈 두 병은 여전히 자기 일이었다. 만난 사람이 돌아갔다고 그 일의 날짜가 밀려나지는 않았다. 다만 오늘의 아쉬움까지 그 일로 씻으려 하지는 않았다. 필요한 질문 하나를 남기고 종이를 덮었다.
저녁 식사는 평소대로 따뜻했다. 유리는 한 사람 몫의 그릇을 자기 앞에 놓고 먹었다. 그가 옆에 없어서 맛을 모르는 날은 아니었다. 다만 국을 한 번 더 뜨며 아침의 낮은 목소리가 잠깐 생각났다. 그녀는 그 정도의 그리움을 식탁에 같이 두었다.
밤에는 책갈피를 빼지 않고 책을 손에 올렸다. 두 쪽을 함께 읽은 다음에도 세상에는 혼자 읽을 줄이 많았다. 유리는 한 문단을 읽다가 웃었다. 그에게 나중에 말해 주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아직 날짜가 없는 다음 만남을 붙잡느라 오늘의 웃음을 미리 봉인할 필요는 없었다. 멈춘 시계 옆에서, 돌아간 사람에게 쓸 새 이야기가 조용히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