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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로 한 조건

본문 5,179자 · 공백 포함

AI를 활용해 창작한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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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초안 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온실과 숲은 한쪽에, 수문은 다른 쪽에 놓였다. 흰종 경계탑은 아직 어느 쪽에도 넣지 않았다. 한 줄을 세 줄로 나누자 종이의 빈 곳이 줄고 해야 할 질문이 늘었다.

“같은 겨울에 걸렸다고 제가 다 같은 방식으로 볼 수는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다온은 탑의 이름을 읽고 창밖을 봤다. 해가 지기 전의 빛이었다. 첫 계약 기준 여섯째 날, 오늘 유리는 새 일을 받지 않고 쉬겠다고 정했다. 탁자에 앉았다는 이유로 그 선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세온은 초안 옆의 빈 종이를 가져왔다. 유리에게 대신 이름을 붙이지 않고 각 구획에서 필요한 일을 물었다. 유리는 씨앗 인장을 탁자에 놓지 않았다. 계절을 새로 빌려 주는 계약이 아니었다.

“첫 단계는 관찰과 기록 대조예요. 새 봄 공급은 포함하지 않아요. 경계를 바꿀 권한도 제가 받았다고 쓰지 마세요.”

다온이 펜을 들었다.

“그러면 숲이 다시 마르면 당신은 보고만 있습니까?”

“지금 남긴 긴급 보호 인계로 먼저 대응해야 해요. 제가 현장에 있으면 할 수 있는 설명은 하겠지만, 옛 계약을 마음대로 끊겠다는 약속은 못 해요.”

말하면서도 유리는 찻방 저장실의 작은 잎을 떠올렸다. 구할 수 있는데 계약 밖이라 외면하겠다는 말로 들릴까 두려웠다. 그러나 구할 수 있는지 아직 모르는 일을 전부 맡겠다고 하는 편이 더 쉬운 거짓말이었다.

세온은 물잔을 내려놓고 다온에게 기존 교대표를 보여 줬다. 숲과 수문은 지금도 다른 담당이 지키고 있었다. 유리의 새 계약을 그 교대의 빈칸을 모두 채우는 방식으로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다온은 한동안 표를 읽었다. 그다음 탑 옆에 확인 인력 별도라고 썼다.

“탑은 길이 길어요. 온실 보고 나서 잠깐 다녀오는 곳이 아니고.”

“그래서 첫날을 거기에 쓰고 싶어요. 가는 길과 돌아올 시각부터 정할 수 있다면요.”

유리가 말했다. 탑으로 무작정 출발하는 대신 먼저 방문과 열람 범위를 확인하기로 했다. 세온이 자기가 열쇠를 가져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보관인이 가진 권한과 공동회가 요청할 수 있는 범위를 담당자에게 물을 사람이 필요했다.

기간은 일곱째 날 아침부터 열한째 날 일몰까지로 좁혔다. 다섯 날이었다. 하루에 현장과 기록을 함께 하되, 밤샘 감시는 맡지 않았다. 날씨가 길을 막으면 무엇을 우선할지 다시 합의하고 자동으로 기간을 늘리지 않기로 했다.

“다섯 날에 답이 안 나오면요?”

다온이 물었다.

“나온 답과 안 나온 질문을 드려요. 더 맡을지는 그때 다시 정하고요.”

유리는 자기 목소리가 조금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끝을 정하면 그 안에서 꼭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고 혼자 생각했다. 다온이 요구한 것이 아직 아닌데도 그랬다.

세온이 종이 아래에 완료 조건을 썼다. 허용 범위의 현장 관찰과 자료 대조, 확인 근거와 미확인 항목의 인계. 재심의 승리나 겨울의 종료라고 쓰지 않았다. 유리는 그 문장을 읽고 어깨를 조금 내렸다.

보수는 조합의 통상 반일 점검 단가를 기준으로 하루 두 몫을 책정했다. 유리는 자기가 속한 조합 기준이라는 점을 먼저 밝혔다. 다온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전 외부 점검 비용과 비교했다. 서로 대조할 수 있는 기준이었고, 특별히 불쌍한 마을이니 깎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지급할 몫은 공동회가 동의한 조사 예산과 대행실의 구획 확인 비용에서 나눴다. 종자 보온용 장작이나 이미 배정된 겨울 식량은 쓰지 않았다. 다온은 각 출처의 남은 양을 확인해 실제 지불할 수 있는 부분만 적었다.

다섯 날 전체를 무조건 채우지 않아도 이미 일한 보수는 지급됐다. 위험 때문에 중단하거나 상대가 범위를 늘리려 할 때 멈출 수 있다는 줄도 넣었다. 잘못한 일을 고쳐 달라는 정당한 요청과 일을 더 맡기는 요청을 구별했다.

유리는 금액란을 읽다가 펜을 멈췄다. 숫자가 생각보다 단정했다. 오늘 밤 자기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와 상관없이, 내일 하루의 일에는 낼 수 있는 값이 있었다.

다온이 물었다.

“숙식은 이 안에 넣을까요?”

“따로 적고 싶어요. 방을 쓴다는 이유로 밤에 부르면 바로 나오는 조건이 붙지 않게요.”

유리가 답했다. 다온은 입술을 굳히더니 곧 웃었다.

“그건 나도 좋아요. 찻방 방값하고 새벽에 문 두드리는 값은 다르죠.”

세온도 작게 웃었다. 유리는 세 사람의 웃음 뒤에 남은 빈칸을 봤다.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 편하다는 이유로 불편한 질문을 빼지 않아도 됐다. 그 사실이 머물고 싶은 마음을 조금 더 선명하게 했다.

교통과 현장 보조 인력은 실비와 배정 시간을 별도로 정했다. 유리는 세온이 항상 상자를 들 사람이라고 쓰지 않았다. 대행실 업무가 있는 날에는 다른 사람이 올 수 있어야 했다. 세온은 잠시 종이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못 가면 당신이 못 움직이는 계획은 피해야겠군요.”

“네. 같이 가는 날은 같이 가고요.”

그녀가 말했다. 마지막 문장을 굳이 덧붙였다는 것이 뒤늦게 부끄러웠다. 세온은 펜 끝을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유리는 그의 표정 대신 종이의 끝을 봤다. 선이 조금 부드럽게 내려갔다.

유리는 계약의 마지막 빈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관찰 결과를 누가 읽을지 정하지 않은 자리였다. 세온은 대행실과 공동회가 함께 받으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필요한 설명은 같이 듣되 개인 증언은 당사자별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녀는 세온의 돌려받은 한 시간을 예로 들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그 기록의 내용까지 새로 꺼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미 말한 것을 다시 전할 권리와, 새 일을 맡기는 권리는 다른 줄에 적혔다.

다온은 주민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와도 기록하겠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그렇다고 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결과라는 이유로 관찰을 지우면 조사 보수를 받는 까닭도 사라졌다. 다만 누구에게 어떤 설명을 먼저 할지는 피해를 받을 당사자의 사정을 듣고 정해야 했다.

“그러면 좋은 말 해 달라고 드리는 품삯은 아니군요.”

다온이 말했다.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찻방 주인은 자기 앞의 금액란을 다시 읽고 밑줄을 그었다. 세온은 그 종이를 건너다보며 기다렸다. 유리는 이 사람들이 자신을 붙잡는 대신 자기 일이 불편한 말을 할 자리까지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사실이 고마워도 품삯을 줄여 드리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리넷은 부엌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이 있는지 다온이 부르자 공책을 들고 왔다. 자기도 조사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정식 제자로 부르지 않고, 본인이 맡을 수 있는 관찰 기록과 원래 온실 업무의 시간을 먼저 나누자고 했다.

리넷은 하루 종일 따라다니고 싶다고 했다. 다온이 저장실 교대는 누가 대신하느냐고 묻자 입을 다물었다. 결국 탑 방문은 기존 교대와 겹치지 않는 시간에 관찰 보조로 동행하고, 다른 날은 자료를 정리하는 범위부터 정했다. 공동회가 그 노동의 몫도 따로 셌다.

“공책이 제 거면 그림도 제가 쓸지 정하죠?”

리넷이 물었다.

“네. 어머니 것과 당신 것도 나눠서요.”

유리가 답했다. 리넷은 그 줄을 자기가 적었다. 빠른 글씨였지만 이름만은 크게 눌렀다.

초안은 날이 어두워진 뒤 닫혔다. 오늘 서명하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유리는 원래 약속한 다음 날 아침까지 읽을 시간을 가졌다. 다온도 공동회 지급 항목의 최종 확인을 남겼다. 세온은 자기 서명을 먼저 해 놓고 기다리는 방식으로 재촉하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온 유리는 상자를 열었다. 미사용 봄 일곱 병과 빈 병 하나가 가지런했다. 처음 쓴 봄의 가을 반환 의무는 기존 계약에 남았다. 내일의 조사 보수와 상계하지 않았다. 시계도 이 상자에 없었다.

그녀는 가방 안쪽에서 보내지 않은 첫 편지를 만졌다.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한 종이였다. 찢지 않고 다시 넣었다. 스승의 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오늘 자기 조건을 정할 수 있었다.

등불을 낮추기 전 계약 초안을 한 번 더 읽었다. 다섯 날이 끝나면 떠나도 되는 사람이 내일 여기 남는 것이었다. 남을 길과 떠날 길이 나란히 있어야 자기 선택의 모양을 알 수 있었다.

아침에는 서리가 창 아래에만 얇게 맺혔다. 유리는 손을 녹인 뒤 찻방으로 내려갔다. 다온이 지급 출처와 숙식 별도 장부를 보여 줬다. 첫날 보수의 선지급분이 정해진 봉투에 담겼다. 유리는 액수를 직접 세고 수령란을 확인했다.

세온은 탑 보관인에게서 온 방문 답을 내밀었다. 첫날 오후에 외부 경계와 공개 관리 기록을 볼 수 있었다. 봉인 보관품을 열거나 종을 임의로 울릴 권한은 없었다. 왕복할 수 있는 길과 동행 인력도 확인돼 있었다.

유리는 그 조건을 조사 범위에 붙였다. 허가가 안 난 부분을 자기 능력으로 열겠다는 줄은 없었다. 그다음 세 사람은 계약서의 같은 문장을 읽었다. 한유리의 관찰과 설명이 주민의 동의를 대신하지 않음.

펜을 들자 오른손 손목이 뻐근했다. 어제 많이 쓴 탓이었다. 유리는 손을 한 번 펴고 서명했다. 통증을 숨긴 채 끝까지 밀어 쓸 필요는 없었다. 서명은 읽을 수 있었다.

세온이 뒤이어 이름을 썼다. 다온은 공동회의 결정 범위와 자기 대표 자격을 적었다. 이 계약이 공동회 모든 사람의 옛 빚까지 인정하는 문서가 되지 않도록 주어가 작게 남았다.

“부탁드립니다.”

세온이 말했다.

“정한 범위로 해 볼게요.”

유리는 답했다. 두 사람은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서로 가진 계약 사본의 장수가 맞는지 확인했다. 이상하게도 그 평범한 동작이 처음 잡았던 손만큼 가까웠다.

리넷이 저장실에서 막 올라온 새 잎 그림을 보여 줬다. 은빛콩은 보온 아래 살아 있었고 새 종자 두 주머니는 잠든 채였다. 나무 확인에서 뿌리의 급격한 변화도 없었다. 조사에 가는 동안 지켜야 할 것들은 다른 손에 있었다.

유리는 소매를 접었다가 추워서 다시 내렸다. 계절을 열 일이 없는데 습관부터 나왔다. 세온이 그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가 쳐다보자 그는 오늘은 밖에서 오래 걷는 날이라고 말했다.

“알아요. 손이 먼저 출근했네요.”

유리도 웃었다. 그는 그녀의 가방을 들겠느냐고 묻기 전에 오늘 짐에 유리판이 있는지 확인했다. 유리는 기울이면 안 되는 칸만 알려 줬다. 자기 인장과 계약 사본은 직접 멨다.

문밖에는 탑으로 가는 길의 연락지가 와 있었다. 보관인이 추가로 보낸 기록이었다. 최근 관리 점검 때 종 아래의 서리가 보관함 쪽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어떤 계약의 흔적인지는 아직 대조하지 못했다.

유리는 그 줄을 읽고 고개를 들었다. 세온이 같은 종이의 날짜를 보고 있었다. 오래된 겨울의 자리에, 며칠 전이라는 날짜가 새로 붙어 있었다.

14화 끝

Written by Grapheme · Published by Aldus Lib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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