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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 않는 약속

본문 5,332자 · 공백 포함

AI를 활용해 창작한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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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눈송이를 혀끝에 대려던 리넷의 손을 붙잡았다.

“먹지 마.”

급한 말이 먼저 나갔다. 리넷이 놀란 눈으로 돌아봤다. 유리는 손을 놓고 빈 접시를 내밀었다.

“여기 받아 줄래요? 바깥 눈이랑 나란히 놓아 보게.”

리넷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온은 말없이 접시를 하나 더 가져왔다. 문밖에서 눈을 조금 떠 온 그의 소매에 다시 물기가 맺혔다.

탁자 위에 두 접시가 놓였다.

바깥 눈은 천천히 물이 됐다. 온실 안의 눈은 녹으면서 작고 투명한 잎맥을 남겼다. 눈 결정 한가운데에 잎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유리는 볕이 든 병의 마개부터 막았다.

온실이 조금 어두워졌다. 리넷이 선반을 보며 숨을 삼켰다. 방금 돋아난 은빛콩의 싹이 다시 움츠러들고 있었다.

“죽는 거예요?”

“아니요. 지금은 깨우는 걸 멈추는 거예요.”

유리는 그 말을 끝내고 씨앗을 만졌다. 아직 따뜻했다. 그녀에게도 확인이 필요했다. 모르는 걸 어린 견습에게 장담할 수는 없었다.

살아 있었다.

손끝에서 아주 약한 온기가 돌아왔다.

세온이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야 긴 숨을 내쉬었다. 유리는 시선을 들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둘 다 불안했다는 사실이 그 짧은 순간에 드러났다.

이번에는 먼저 눈을 돌리지 않았다.

“다온 씨를 불러 주세요. 조용히 종자 옮길 준비만요.”

세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문을 나선 뒤 유리는 리넷과 함께 공책을 펼쳤다. 나흘꽃 그림 뒤로 비슷한 잎맥이 이어져 있었다. 리넷의 어머니는 같은 나무를 계절마다 그려 두었다.

봄에는 흰 꽃, 여름에는 넓은 잎, 가을에는 갈라지는 씨방.

겨울 그림만 없었다.

대신 종이를 눌러 쓴 글씨가 있었다.

벨잎숲. 서문 상류. 겨울에도 마지막 나무는 얼지 않는다.

유리는 접시 속 잎맥과 그림을 나란히 놓았다. 같은 모양이었다. 꽃잎은 숲에서 왔고, 눈은 그곳에 남은 봄이 얼어붙은 흔적이었다.

누군가 오랫동안 숲의 계절을 끌어오고 있었다.

그 끝에 유리가 새 봄을 더하자 길이 다시 열렸다. 낡은 구멍 위에 물을 부은 셈이었다. 온실의 봄이 세질수록, 원래 연결돼 있던 숲에서는 온기가 더 빠르게 흘러나왔다.

유리는 목덜미를 눌렀다. 자신이 열어 놓은 것을 자신이 멈춰야 했다.

다온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씨앗부터 보여 줬다. 아직 살릴 수 있는 것과, 옮기는 동안 위험한 것을 구분했다. 다온은 끝까지 듣고 나서 소매를 걷었다.

“찻방 뒤에 저장실 있어요. 여기보다 작아도 바람은 안 들어요.”

“거기 난로 쓰는 데 장작이 더 들 거예요.”

“그건 내가 셀게요. 지금은 몇 상자냐고.”

유리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세온이 종자 상자를 들었다. 유리는 그의 손을 보고 작은 천을 내밀었다. 모서리에 손이 쓸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천을 받은 뒤, 반으로 접어 그녀가 들 상자 밑에도 깔았다.

“전 괜찮아요.”

유리가 말하자 그가 잠깐 멈췄다.

“저도 그 말을 하려 했습니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세온이 작은 웃음을 보였다. 이번에는 그 웃음을 기다리고 있던 자기 마음이 먼저 들켰다.

유리는 상자를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흙 냄새에 뜨거워진 뺨을 숨길 수는 없었다. 다행히 리넷은 씨앗 이름을 큰 소리로 세느라 바빴다.

상자를 옮기는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에 좁았다. 유리가 앞에서 뒷걸음질로 걸으면 세온은 물이 고인 곳을 먼저 알려 줬다. 처음에는 한 걸음마다 하던 말이, 세 번째 상자부터는 짧아졌다.

“왼쪽.”

그가 말하면 유리는 왼발을 옮겼다.

“문턱.”

그녀가 말하면 세온은 같은 높이로 상자를 들었다.

서로를 오래 알지 못해도 맞출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유리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인연이라는 말을 붙이기 전에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네 번째 상자를 옮긴 뒤 세온이 멈췄다. 유리는 안쪽에서 흙이 쏟아졌나 싶어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손난로를 돌려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납작한 주머니를 꺼냈다. 이미 식었을 줄 알았는데, 천 가운데가 아직 미지근했다.

“도움이 됐어요?”

“많이요.”

그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잠깐 알 수 없었다. 유리는 물건을 받는 척 손을 내밀었다. 그의 장갑이 그녀의 손가락 끝에 스쳤다.

낮에 받았던 손보다 덜 차가웠다.

작은 보람이 가슴 안쪽에서 따뜻하게 퍼졌다. 빌려 온 볕과는 달랐다. 병에 넣지도, 양을 재지도 못하는 온기였다.

“다행이네요.”

그녀는 그렇게만 말했다. 세온은 그 말을 듣고 바로 다음 상자를 들지 않았다. 잠깐 더 그녀를 보다가, 자신도 같은 온기를 받은 사람처럼 천천히 웃었다.

리넷이 문 안에서 두 사람을 불렀다. 유리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창문에는 그동안 맺힌 물방울들이 작은 길을 만들고 있었다. 온실의 따뜻함이 사라지는 모습이었지만, 씨앗들은 아직 사람 손 안에 있었다.

다온이 가져온 빈 천을 깔면서 유리는 문득 스승이 한 말을 떠올렸다. 봄을 잘 옮기는 사람은 온기를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나눌 자리를 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세온이 상자 아래를 받치는 손을 보았다.

이 사람이 다음에는 자기 몫의 따뜻한 자리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바람에 계약의 이유를 붙이지는 않았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상자를 날랐다.

아무도 영웅처럼 일하지 않았다. 무거우면 둘이 들었고, 손이 곱으면 찻방에 들어가 녹였다. 다온은 문 앞에서 따뜻한 물을 나눠 줬다. 유리는 마지막 상자를 내려놓고 벽에 등을 댔다.

눈을 감자 온실의 눈송이가 아직도 눈꺼풀 안에서 내렸다.

그녀가 잘못 빌려 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른 채 빌려 줬다는 사실은 남았다. 다음 의뢰지로 가 버린다고 그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문 앞에 세온의 그림자가 섰다.

“누가 다쳤습니까?”

유리가 눈을 떴다.

“아니요. 마지막 상자도 옮겼다고 말씀드리려고.”

“다행이네요.”

그가 옆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유리는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세온이 앉았다.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그래도 혼자 쉬는 것과는 달랐다.

한동안 둘은 찻방 소리를 들었다. 물 끓는 소리, 컵을 쌓는 소리, 리넷이 하품하다가 들켜 웃는 소리.

유리가 먼저 말했다.

“계절을 데려오면 일이 끝날 줄 아는 분들이 많아요. 그다음부터 일이 더 많아지는데.”

“제가 그랬습니까.”

“아니요. 당신은 일이 끝나면 자기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쪽 같아요.”

세온의 시선이 손등으로 내려갔다.

유리는 말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지금 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다음에도 다친 손을 주머니에 숨길 것 같았다.

“우리 씨앗을 살리는 일에 당신도 들어 있어요. 손 하나가 모자라면 상자를 두 번 옮겨야 하니까.”

“그런 이유입니까.”

그가 조용히 물었다.

유리는 찻잔을 들었다. 손잡이가 식어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설명할게요.”

세온이 더 묻지 않았다. 그러나 긴 침묵 끝에 자신의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더는 다치지 않았다고 감추지 않는 손이었다.

새벽 전에 오르만이 찾아왔다.

그는 신발을 벗지도 못한 채 문턱에 섰다. 목도리에 얼음이 엉겨 있었다. 손에는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들려 있었다.

흰 꽃 세 송이가 달려 있었다.

두 송이는 이미 얼었고, 나머지 한 송이만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벨잎숲에서 가져왔다.”

오르만이 말했다.

“마지막 나무에 꽃이 피었어. 이 계절에는 안 피어야 하는데.”

유리는 가지를 받아 꽃받침을 봤다. 차갑게 투명한 부분이 꽃잎 안쪽으로 조금씩 번졌다. 낮에 병 속에서 본 것과 같았다.

남은 봄을 한꺼번에 내놓는 나무였다.

그녀는 공책의 마지막 그림을 떠올렸다. 꽃은 나흘에 걸쳐 피고 졌다. 그런데 이 꽃은 유리의 손안에서 한 장을 벌리는 데 몇 번의 숨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속도라면 다음 일출을 넘기기 어려웠다.

숲에 이르는 길은 눈 아래 있었다. 오르만은 밤에는 건너지 않는다고 했다. 수문 옆 좁은 보행교를 지나야 했고, 상류의 바람은 방향이 자주 바뀌었다.

세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길은 제가 압니다.”

유리는 그를 봤다.

“혼자 가겠다는 뜻이면 안 돼요.”

“봄을 끌어오는 길을 막을 수 있다면, 온실 쪽은 맡기고 가는 게 빠릅니다.”

그의 말은 침착했다. 너무 침착해서 유리는 오히려 화가 났다. 좋은 계획인 척하는 말 속에 자기 몸을 빼놓고 있었다.

“막는 방법부터 모르잖아요. 얼어 있는 수문을 손으로 붙들고 기다릴 생각이에요?”

세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으로 충분했다.

유리는 가지를 물병에 세워 두고 그의 앞에 섰다. 조금 전까지 옆에 앉아도 멀게 느껴지던 사람이, 지금은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었다.

그녀는 그 가까움을 다투는 데 쓰고 싶지 않았다.

“당신 한 사람이 겨울을 다 받으면 된다는 얘기, 제 앞에서는 하지 마세요.”

세온의 눈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같이 갑니다. 수문은 오르만 씨와 마을 분들이 교대로 보고, 온실은 다온 씨가 중단 상태를 지켜요. 저는 숲에서 계절의 길을 확인하고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길을 알려 줘야죠.”

그는 고개를 돌려 문밖을 봤다. 멀리 서문의 종이 한 번 울렸다. 일곱 해 전의 시간으로 그를 끌고 가는 소리였다.

유리는 세온의 소매를 잡지 않았다.

대신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기다리라는 명령 말고, 같이 가자는 부탁을 들어 주세요.”

세온이 그녀의 손을 봤다. 흙이 손톱 밑에 조금 남아 있었다. 상자를 나른 탓에 손가락 옆이 붉었다. 이 손도 오늘 하루 내내 차가웠다.

그가 손을 잡았다.

힘은 유리를 끌어당길 만큼 세지 않았다. 놓고 싶으면 놓을 수 있는 힘이었다. 그래서 유리는 조금 더 단단하게 잡았다.

“함께 가겠습니다.”

처음으로 그의 대답에 빈틈이 없었다.

리넷이 두 사람의 손을 보고 급하게 공책을 눈앞에 들었다. 다온은 말없이 가방에 빵을 넣었다. 오르만은 보행교 열쇠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대신 늦지 않기 위해 움직였다.

유리는 마지막으로 온실에 들렀다. 씨앗이 빠진 선반에는 작은 흙 부스러기만 남아 있었다. 병 일곱 개의 마개는 단단히 닫혀 있었다. 자신이 빌려 온 봄은 더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유리창에 서리가 안쪽부터 피어나고 있었다.

그녀가 손전등을 비추자 서리 아래에 흰 꽃잎들이 겹쳤다. 하나, 둘, 셋. 숲의 마지막 나무에서 벌어지는 꽃들이 이쪽에 비치고 있었다.

첫 꽃이 산산이 부서졌다.

유리는 뒤에 선 세온을 돌아봤다. 그도 그것을 봤다. 마른 목울대가 한 번 움직였다.

창에 두 번째 꽃이 피었다.

세온은 문을 열고 유리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곧바로 잡았다.

온실을 나서는 순간, 등 뒤에서 두 번째 꽃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남은 꽃은 하나였다.

3화 끝

현재 3화까지 공개했어요. 이후 공개 일정은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Written by Grapheme · Published by Aldus Libris

AI를 활용해 창작한 작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