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할 자리는 맨 뒤에 있었고, 끝낼 일은 맨 앞에 적혀 있었다.
서린은 제안서 첫 장의 처리 종결이라는 말을 읽었다. 그 아래에는 회사의 추가 조사비와 서류 작성 비용을 정산하는 조건이 있었다. 아직 받지 않은 돈을 되찾는 제안은 아니었다. 더 기다리지 않고 비용을 정리하자는 문서였다.
11월 14일 오전, 회사 회의실이었다. 회사 책임자와 계약 검토 담당이 옆에 앉았다. 모은경은 업체 창구를 통해 참여했다. 서린은 자기 이름으로 어떤 확인을 요구받았는지 설명할 뿐, 주민이나 하은 가족의 합의를 대신 결정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장치 문제로 현장 기록에 차이가 있었다는 확인입니다. 조사하신 내용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은경이 말했다.
서린은 뒤의 확인 문장을 펼쳤다. 개별 장치 오류에서 발생한 것으로 상호 확인한다. 그다음 줄은 관련 자료 추가 제출 종결이었다. 원인을 하나로 정하고, 그 원인을 더 확인할 길을 닫는 두 문장이 같은 서명 아래 있었다.
“장치 일부를 읽지 못했습니다. 그게 모든 기록 차이의 원인이라고 확인한 적은 없습니다.”
“고의라는 단정도 아직 없으시잖아요.”
“그래서 오류라고도 단정하지 않습니다.”
서린은 상대의 문장에 반대한다고 곧바로 반대쪽 원인을 고르지 않았다. 복사된 자기 서명과 일부러 합쳐진 동명 접수, 780초를 지정한 협의서는 디스크의 읽기 실패가 생겨서 만들어진 일이 아니었다.
회사 책임자가 정산 항목을 분리할 수 있는지 물었다. 실제 추가 업무 비용은 쌓여 있었다. 동료가 대신 맡은 다른 현장의 교통비와 일정 변경도 있었다. 누군가는 서린이 은담에 매달린 동안 그 시간을 메워야 했다.
서린은 책임자가 비용을 말한다고 화내지 않았다. 이번 달 업무표의 빈 자리에 자기 이름이 있었다. 옳은 질문을 계속하는 데에도 회사의 시간이 들었다. 그 시간을 없는 것처럼 말하면 협조를 부탁할 다음 사람도 사라졌다.
“실제 업무비는 근거대로 협의해 주세요. 제가 하지 않은 결론에 서명해서 받는 조건은 수락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책임자는 계약 검토 담당에게 문장을 넘겼다. 법적 효력을 서린 개인이 통화로 결정하지 않았다. 담당은 비용 정산의 대상과 사건 사실에 대한 확인, 자료 보존 의무를 구별해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오늘 제안서를 받았다는 회신이 곧 수락은 아니라는 상태도 함께 보냈다.
은경은 목소리를 낮췄다.
“누구를 보호하려고 이 조건을 넣은 건 아닙니다. 계속 열려 있으면 저희 직원들도 다음 일을 못 합니다.”
서린은 정우가 작업복을 접던 손을 떠올렸다. 그러나 다른 직원의 사정을 모두 거짓말로 밀어낼 근거도 없었다. 일하는 사람의 부담과 사실 확인의 범위를 줄이는 문장은 서로 다른 줄로 답해야 했다.
“직원에게 같은 자료를 거듭 요청하지 않도록 담당 창구를 맞출 수는 있습니다. 이미 보존한 자료를 더 내지 않겠다는 확인은 못 합니다.”
은경은 최종 권한을 가진 회사 쪽 답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통화가 끊기자 회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서린은 방금 자기 목소리가 업무비를 받지 않겠다는 말로 들렸을까 걱정했다. 책임자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실제 일한 비용은 따로 청구하겠습니다. 대신 다음 주 조사 범위를 다시 정해야 해요.”
그가 업무표를 돌려놓았다. 서린이 원하는 자료를 모두 직접 쫓는 시간은 회사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점심 전까지 두 사람은 남은 업무를 나눴다. 구조 변경 확인은 서린의 업무였다. 주민 지원 연락은 기관 담당이 이어 갔고, 장치 분석은 전문 창구가 맡았다. 같은 문서를 회사와 서린이 두 번 요청하던 부분도 하나로 모았다. 서린은 자기 이름을 더 많은 줄에 적는 대신 실제로 필요한 현장 두 곳에 남겼다.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 무엇을 미루는지도 썼다. 내일 구조 자료를 보려면 오늘 오후 추가 통화를 줄여야 했다. 회사 책임자는 그 결정에 동의했다. 조사를 계속한다는 말이 매일 모든 사람에게 연락한다는 뜻일 수는 없었다.
책임자는 표를 닫기 전에 동료에게 일정 변경을 실제로 전달했다. 대신 나가기로 했던 현장에는 다른 자격 있는 담당이 배정됐고, 서린이 미리 적어 둔 위험 항목도 넘겼다. 도와준다는 말만 남기면 내일 아침 누군가는 두 현장에 동시에 있을 예정이었다.
서린은 동료에게 미안하다는 긴 메시지를 쓰다가, 내일 맡길 자료의 위치와 질문받을 시각을 먼저 보냈다. 동료는 교통비 정산을 어디에 붙이느냐고 답했다. 서린은 회사 담당을 연결하고 자기 업무 기록에도 그 이동이 생긴 이유를 남겼다. 이번 조사의 필요가 다른 사람의 비용을 사적인 호의로 바꾸어서는 안 됐다.
책임자가 마지막 빈 줄을 가리켰다.
“여기 추가 확인은 누가 합니까?”
서린은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다. 장치 기록의 후속 질문이었다. 지정 창구의 회신 경로와 예정 확인일을 적었다. 다른 사람이 맡았다는 말이 실제 인계가 되는지 수신 확인까지 받고 표를 닫았다.
도운이 서류 운반 받침을 가져왔다. 종이집게 하나가 벌어져 있었다. 그는 손으로 펴려다 새 집게를 쓰고 낡은 것은 수선할 칸에 넣었다.
“오늘은 잡는 힘이 부족하네요.”
그가 말했다.
서린은 자기 일정표를 접었다.
“저도 두 손으로 다 들려고 했어요.”
두 사람은 받침의 무게를 나눠 들었다. 회사 밖으로 가져갈 자료는 지정 창구에 정식 인계할 사본과 회사 설명이었다. 장치 원본이나 주민의 개인 원본은 이 받침에 없었다.
오후 인계실에서 담당자는 제출 목록부터 대조했다. 서린은 세 묶음을 순서대로 설명했다. 사전 검토서의 서명부가 완료서에 전용된 비교 자료, 승인 범위를 달리한 폐기 시행과 결과 확인, 지연 설정 및 실제 현장 사용을 대조한 관련 기록이었다.
하은 어머니의 선택 자료는 기관이 별도 제출했다. 서린은 자기 받침에 없다는 이유로 누락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른 권한과 다른 공개 조건으로 같은 사건에 들어가는 자료였다. 이름과 부호를 연결하는 제한 목록은 지정 담당이 관리했다.
담당자가 한 면을 돌려놓았다.
“이건 제출 사본이 아니라 업무 중 사용한 메모입니까?”
서린은 종이 위 자기 손글씨를 보았다. 장치 오류만으로 불가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너무 급히 줄인 문장이었다. 오류가 없다고 증명한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경로로 확인한 서명 전용과 명부 통합까지 장치 오류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원래 메모를 버리지 않고 별도 설명을 붙였다. 제출물의 결론 칸에는 문장을 풀어 썼다. 남의 제안서에서 범위가 넓어진 말을 지적하고 와서 자기 종이의 같은 잘못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도운도 자기 일지의 임시선 경로가 기억에 따른 그림임을 확인했다. 현재 현장에서 실제로 확인한 부분과 아직 재확인이 필요한 끝을 다른 선으로 표시했다. 미신고 선을 남긴 과실은 그대로였고, 그 선을 누가 이후 어떻게 이용했는지는 추가 확인으로 남았다.
접수 담당은 자료를 받은 뒤 보존 번호와 제출 범위를 읽어 주었다. 서린은 자기 이름이 적힌 접수 확인서를 받았다. 직접 서명한 것이 무엇인지 이번에는 첫 면에 보였다. 자료 제출, 내용 설명. 사건 전체의 결론이나 주민 전원의 인계 완료는 없었다.
“이제 끝난 겁니까?”
도운이 물었다.
“우리 손에 있던 관련 자료는 이 범위로 정식 인계했습니다. 필요하면 보완 요청이 옵니다.”
서린이 답했다. 이곳 문을 나간 뒤에도 원본이 어디 있는지와 다음 연락 경로를 알 수 있었다. 그 정도의 끝은 오늘 만들어도 됐다.
복도에서 하은의 연락을 받았다. 지원 담당이 업체 제안을 가족에게도 알려야 하는지 확인해 줬다고 했다. 하은은 회사가 자기 대신 거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온 조건이 있는지부터 알고 싶다고 했다.
“오늘 회사가 받은 제안은 회사 업무비와 확인 문장에 관한 것입니다. 하은 씨가 받아야 할 제안으로 전달한 것은 아닙니다.”
서린이 말했다.
하은은 잠깐 침묵했다가 알았다고 답했다. 어머니는 오늘 병원 약속에 갔고 자기는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발목 받침을 다시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거절했다는 제목만으로 가족에게 새 의무가 생기지 않게 해야 했다.
“제가 원하면 제 조건도 따로 물을 수 있죠?”
“지원 담당과 조력 경로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회사 답이 그 선택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서린은 전화를 끊고 자기 보고의 제목을 바꾸었다. 피해자 합의 거절이 아니라 회사 제안의 확인 조건 수락 거절이었다. 누가 무엇을 거절했는지 정확히 쓰면 제목은 길어졌지만, 남의 선택은 덜 빼앗았다.
오후 늦게 회사의 공식 회신이 정리됐다. 비용의 실제 근거는 별도 검토하되, 개별 장치 오류를 전체 원인으로 확인하고 추가 자료 제출을 끝내는 조건은 받지 않겠다는 답이었다. 계약 검토 담당이 문장을 확인했고 회사 창구가 발송했다. 서린은 개인 계정에서 은경에게 다시 감정 섞인 설명을 보내지 않았다.
곧 업체의 답이 왔다. 조건 수정 가능 여부를 내부 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서린은 그 답을 사건 책임 인정으로 표시하지 않았다. 오늘 거절은 상대가 자기 범위를 새로 정하게 했을 뿐, 수사 결과를 대신하지 않았다.
퇴근 준비를 하던 회사 책임자가 다음 조사 일정표를 가져왔다. 구조 검토 자료의 열람이 허용됐다. 다만 장치와 명부에 관한 일부 조사 자료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안내가 붙었다. 서린은 접수 담당에게 왜 자신은 못 보느냐고 전화할 생각부터 했다.
그리고 질문지를 내려놓았다.
자료를 정식 인계한다는 것은 그 뒤의 모든 확인을 자기가 지휘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다른 증언과 조사 계획을 서린에게 알려 줄 수 없는 사정도 있었다. 그녀는 자기 업무에 필요한 자료가 어디서 막히는지와 대체할 수 있는 확인만 묻기로 했다.
도운은 차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오늘 회사 차를 쓰지 않고 왔다는 사실을 잊었다고 했다. 서린은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걸었다. 두 사람은 건물 문이 자동으로 닫힐 때까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정류장 전광판에서 다음 버스의 남은 시간이 바뀌었다. 도운은 그 숫자를 보고 웃었다.
“여긴 늦어지면 늦어진다고 써 주네요.”
“그래도 실제 오는지는 봐야죠.”
서린이 답했다. 농담 끝에 다시 확인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오늘은 서로 웃을 수 있었다. 모든 확인을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버스가 도착하기 전 업무 창구에 짧은 회신이 더 왔다. 내일의 조사실 출입 일정은 취소됐다. 대신 건물 외부 구조 자료와 제한 구역의 안전한 추가 관찰을 협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린은 닫힌 문을 설명하는 문장 아래에서 제공 가능한 도면 번호를 읽었다. 처음 제출한 도면과 다른 수정 번호였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건물의 문은 제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 문이 어느 도면에서 시작됐는지는, 그녀가 아직 맡아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