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진 건물의 계량기는 숫자를 바꾸고 있었다.
서린은 유리 덮개 안의 작은 표시를 보았다. 한 칸이 바뀌었다. 지금도 전기를 쓴다는 뜻이었다. 사람이 산다는 뜻까지는 아니었다. 출입구 위 감시등과 보존 중인 장치가 여전히 켜져 있었다.
11월 9일 오전, 구 은담생활관 외부 계량함 앞이었다. 전기 담당자가 허가된 점검 범위를 설명했다. 함은 지정 담당이 열고, 서린과 도운은 바깥 표시선에서 분기 명칭과 현재 사진을 확인했다. 하층 안쪽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오늘 숫자로 지난달 사람을 세지는 못합니다.”
전기 담당자가 말했다.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창의 고지서는 회사에 보관된 동의 사본으로 남았다. 오늘은 거기 적힌 공동 계량함이 실제로 무엇을 재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담당자가 왼쪽 표찰을 비췄다. 3동 하부 보조. 조명과 공용 콘센트가 나뉜 옛 배치 이름이었다. 그 아래 다른 계량기가 있었다. 글씨가 바래 숫자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도운이 몸을 기울이자 담당자가 손을 들었다.
함 안쪽에서 낮은 떨림이 났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는 손전등을 빼고 외부 운영 담당에게 통로를 비워 달라고 했다. 덮개 아래 느슨한 금속판이 진동하고 있었다. 무엇이 울리는지 확인하기 전 서린의 자로 받쳐 놓을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열린 함에서 물러났다.
열린 문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몸은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서린은 발끝을 표시선 뒤로 돌려놓았다. 숫자를 잘 읽겠다고 새로운 사고의 시각을 적고 싶지는 않았다.
지정 전기 담당은 작업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임시 접근을 막았다. 표찰은 기존 사진과 현 보관 도면에서 먼저 대조하기로 했다. 오늘 실물을 못 읽은 칸에는 읽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 작은 실패 덕에 함의 안쪽과 바깥쪽을 분리한 사진이 새로 남았다.
“종이로 먼저 돌아가죠.”
도운이 말했다.
“계량기는 도망 안 가니까요.”
“정산 마감은 가끔 도망가더군요.”
서린은 차 안에서 웃다가 고지서 봉투를 열었다. 원본은 작은 창에게 있었다. 주민의 현재 주소와 납부 계좌는 가려져 있었고, 허락한 청구 기간과 사용량, 검침 위치만 보였다.
최종 이전 완료표 뒤로 두 번의 검침이 있었다.
청구서 발행일이 뒤라는 것만으로는 그때 쓴 전기가 아니었다. 서린은 공급 담당자가 제공한 검침 기간부터 읽었다. 이월된 지난달 요금과 기본요금을 옆으로 갈랐다. 남은 항목은 완료표 뒤 실제로 늘어난 사용량이었다.
그것도 건물 어딘가의 사용이지 작은 창 한 사람의 생활 전체는 아니었다.
지원기관 상담실에서 작은 창이 기다렸다. 그녀는 종이마다 작은 집게를 끼워 놓았다. 식사와 약속 시간을 기억하려고 색을 나눴다고 했다. 서린은 그 색으로 중요도를 정하지 않고 당사자에게 차례를 물었다.
“붉은 것부터요. 그건 제가 낸 겁니다.”
작은 창이 말했다.
붉은 집게 아래에는 공과금 분담 영수증이 있었다. 공동 계량기의 총요금을 주민과 임시 작업 사용자가 나눈 기록이었다. 전체 돈을 작은 창이 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녀의 칸에는 사용 구역과 정산 기간이 따로 적혔다.
“폐쇄 뒤에도 이 금액을 요청받았어요?”
“네. 그때까지 여기서 자는 날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매일은 아니었습니다.”
서린은 먼저 매일이라는 말을 빼고 썼다. 여자는 왜 그 문장을 자꾸 말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돈 내면 살았다고 되는 거 아닌가요?”
“다른 분 것을 대신 내셨을 수도 있어서요. 본인이 쓰신 기간과 맞추려는 겁니다.”
여자는 집게를 뺐다 끼웠다.
“대신 낸 적도 있어요. 그게 섞이면 제가 없었던 걸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서린은 다른 사람 몫을 가릴 수 있게 빈 종이를 내밀었다. 여자가 스스로 두 줄을 덮었다. 자기 몫은 남았다. 모든 돈을 한 사람의 생활로 만들지 않자 그 사람이 말할 수 있는 날짜가 오히려 늘었다.
작은 창은 마지막으로 자고 나온 날을 기억하지 못했다. 대신 밤에 세탁물을 말리다가 비가 와서 안쪽으로 옮긴 날은 기억했다. 다음 날 지원 담당과 통화했다고 했다. 그 통화의 관련 메시지를 제출하는 데 동의했다.
서린은 날씨 기억만으로 날짜를 골라 주지 않았다. 당사자가 보관한 메시지와 분담표의 정산 기간, 검침 구간이 겹치는 범위를 찾았다. 그 범위 안에서 시설을 사용했다는 진술이 외부 연락 자료와 맞았다.
“그럼 여기까지는 남는 거죠?”
작은 창은 손바닥으로 가려 놓은 자기 칸을 보았다.
“완료표 뒤에도 실제로 사용한 기간이 있었다는 자료가 됩니다. 매일 잤다거나 다른 분도 다 있었다고 적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집게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서린은 그 금속 소리가 계량함에서 났던 떨림보다 작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 돌아봤다. 아침 긴장이 아직 몸에 붙어 있었다.
큰 창은 별도 통화로 관련 기간의 기억을 설명했다. 자기 이사비와 작은 창의 요금을 한꺼번에 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무렵 건물 안에서 잠을 잔 날보다 짐을 정리하러 간 날이 더 많았다고 했다. 공과금 분담을 냈지만 대기실만 쓴 기간도 있었다.
둘이 같은 이름으로 낸 돈을 통합하면 또 한 사람의 너무 긴 생활이 됐을 것이다. 서린은 당사자 부호와 구역, 기간을 다른 줄로 남겼다. 납부 사실이 신원과 동선을 저절로 증명하지는 않았지만, 없는 사람이라는 표를 그대로 둘 수 없게 했다.
오후에 공급 담당의 설명이 왔다. 공용 감시 전원과 하층의 생활용 콘센트 분기는 완전히 같지 않았다. 제공된 옛 검침·정산 자료에는 분기별 기록이 일부 남았다. 이전 완료 뒤에도 하층 사용분은 발생했고, 임시 작업 장비를 쓴 날의 부하는 따로 표시돼 있었다.
도운은 높은 막대 하나를 가리켰다.
“이 날은 전기기구 많이 썼네요.”
“기록상 보수 장비를 쓴 날입니다.”
담당자가 답했다.
서린은 그 하루를 생활 증가의 근거에서 뺐다. 남은 여러 날에도 소량의 사용이 있었다. 전기만으로 취침이나 인원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작은 창의 분담 영수증과 직접 사용 진술, 공급 기록과 연락 날짜가 같은 기간을 가리켰다.
지금까지 모아 온 컵과 식권은 그 기간에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보탰다. 어느 한 장을 대표 증거로 세워 나머지를 버릴 이유는 없었다. 서린은 정리 담당에게 자료 번호끼리 연결하되 이름을 한 대표 행으로 합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모은경은 관련 질의에 답했다. 폐쇄 뒤 요금이 나온 건 장비와 경비 업무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서린은 그 가능성을 반영해 나눈 표를 보냈다. 보수 장비 날짜와 감시 전원을 제외한 사용분, 주민 분담표와 직접 진술이 대조돼 있었다.
“그 분담표는 관리인이 개인적으로 만든 것 아닙니까?”
“누가 어떤 근거로 비용을 걷었는지도 확인합니다. 그래도 실제 납부와 사용 진술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거주를 승인했다는 자료는 아닙니다.”
“승인 여부와 실제 사용 기간을 구분해 제출합니다.”
통화가 끝난 뒤 서린은 자기 표의 제목을 보았다. 거주 기간 입증이라고만 쓰면 누구의 어떤 방식의 체류였는지가 또 넓어졌다. 동의한 당사자들의 실제 생활·사용 기간 대조로 고쳤다. 쓸모를 줄인 것이 아니라, 증거가 버틸 수 있는 모양으로 바꾼 것이었다.
작은 창은 밖으로 나가며 자기 고지서를 가방에 넣었다. 복사한 부분이 원본보다 적었다. 그녀는 빠진 칸이 어디인지 확인한 뒤 가방을 닫았다.
“이걸 버리지 말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돈 나간 건 남겨 놓으라고.”
서린은 하은의 어머니를 떠올릴 뻔했다가, 지금 말하는 사람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아챘다. 같은 방의 기억을 받다 보면 가족도 같은 얼굴로 합쳐지기 쉬웠다. 그녀는 상대가 말하지 않은 가족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가져오셔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만 답했다.
작은 창은 오늘은 잊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서린은 그 말을 보고서에 인용해도 되느냐고 묻지 않았다. 여자가 엘리베이터에 타는 동안 문을 잡아 주었다. 손잡이 없는 복도에서는 그런 도움이 더 간단했다.
회사로 돌아온 뒤 기준의 추가 설명을 받았다. 그는 주민 분담표 작성에 관여했다고 인정했다. 짐을 맡겼다는 초기 설명과 달리 사람이 잠깐씩 머문 기간에도 비용을 나눴다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도와줬다는 말만 남길 수 없게 된 자료였다.
서린은 보호 의도가 일부 확인된 것과 허위 공실·미기록 출입의 책임이 남는다는 기존 요약에 이 설명을 연결했다. 그가 오늘 협조했다고 과거 기록을 대신 정정한 것은 아니었다.
전기 담당자는 오전의 계량함 조치를 인계했다. 위험 원인과 조치 범위는 전기 점검 기록으로 남았고, 잘 보이지 않던 표찰은 안전한 추가 확인을 거쳐 관련 분기와 맞았다. 서린은 첫 접근에서 멈춘 일을 불필요한 시간으로 빼지 않았다. 조사한 사람의 하루도 실제로 걸린 시간이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하은이 전화했다. 본인이 가진 옛 고지서도 찾아보겠다는 말이었다. 서린은 오늘 받은 자료만으로 당장 더 찾을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하은은 이미 어머니와 골라 놓은 것이 있다고 했다.
“돈 말고 물건 가져간 종이도요. 엄마는 자기 냄비가 아직 거기 있을 줄 알았대요.”
서린은 펜을 들었다.
“어떤 종이인가요?”
“반출 목록 사본이에요. 받은 적 없는 물건에 수령 표시가 돼 있어서 갖고 있었대요. 제 봉투 보인 날에 안쪽에서 그거 확인하려고 했어요.”
하은이 파란 문까지 들어간 이유는 이름과 주소만이 아니었다. 서린은 그날 봉투에 있었던 사진과 고지서를 떠올렸다. 하은이 아직 꺼내지 않은 종이가 더 있을 수 있었다.
그녀는 하은에게 현장에 오지 말고 동의할 부분을 지원 창구로 제출하도록 안내했다. 하은은 이번에는 자기 집 책상에서 고르겠다고 답했다. 목발은 여전히 옆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작은 사진이 도착했다. 하은 어머니가 열람을 허락한 목록의 관련 부분이었다. 개인 보관품 네 묶음이 반환이 아니라 잔재 반출로 옮겨진 수정 흔적이 있었다. 현장 확인란에는 정리반장의 서명이 남았다.
도운은 그 이름을 읽고 자기 차량 사진을 찾았다.
26일 오후 두 번째 반출차 옆, 보관함 너머로 같은 직무가 적힌 조끼가 보였다. 얼굴은 가려져 있었다.
서린은 그 사진을 하은에게 보내지 않았다. 누가 문을 닫았는지 물을 사람을, 누군가가 맞혀야 할 얼굴로 만들 수는 없었다.
대신 현재 현장 책임 창구에 해당 반출의 확인자를 연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짧았다.
그 반장은 물건을 옮긴 날보다, 파란 문을 잠근 날을 먼저 설명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