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대장에는 세 사람의 이름만 있었다.
이서린. 곽도운. 남기준.
그런데 모니터 속 복도에는 네 번째 사람이 서 있었다.
서린은 펜을 내려놓았다. 여자였다. 회색 작업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었고, 고개를 숙인 채 벽에 등을 붙이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관리인님. 서관에 누가 남아 있나요?”
남기준이 열쇠판 앞에서 돌아봤다.
“비었습니다. 어제 확인했어요.”
“지금 화면에 사람이 있는데요.”
기준의 손에 들린 열쇠 세 개가 부딪쳤다. 맑은 소리였다. 그가 모니터를 보러 다가오는 동안, 화면 속 여자는 오른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한 번. 쉬고 두 번.
서린은 작업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구 은담생활관. 철거 전 잔류 위험 확인.
오늘 받은 업무 제목은 그것뿐이었다. 바닥이 꺼졌는지, 가스가 남았는지, 사람이 있는지. 인계서 마지막 칸의 '잔류자 없음'에 체크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 칸에 체크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이분 누군지 아세요?”
“글쎄요. 서관은 잠가 놨는데.”
기준이 화면 아래 스티커를 짚었다.
서관 2층. 214호 앞.
지금 시각은 오후 여섯 시 사십칠 분이었다. 관리실 벽시계는 여섯 시 사십오 분을 가리켰다. 서린은 벽시계부터 믿지 않기로 했다.
“도운 씨. 외부 비상계단으로 2층 올라갈 수 있어요?”
장비 상자를 내려놓던 곽도운이 창밖을 봤다.
“오를 수는 있는데, 난간부터 봐야죠. 저거 사진에서는 멀쩡해 보여도 볼트가 절반은 떠 있어요.”
“그럼 안쪽 계단으로 가요. 관리인님은 여기 계세요. 화면에서 움직이면 전화 주시고요.”
기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자가 아니라 화면 오른쪽 아래를 보고 있었다.
서린도 그쪽을 봤다.
18:34:00.
휴대전화는 막 18:47:00으로 바뀌었다.
열세 분.
“녹화 영상인가요?”
“실시간으로 해 놨습니다.”
기준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화면 구석에 'LIVE'가 떴다. 서린은 그 네 글자를 보다가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화면과 휴대전화 시각을 한 장에 담으려다, 두 물건을 동시에 찍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도운에게 부탁했다.
“제 휴대전화하고 이 화면 같이 찍어 주세요. 편집하지 말고 그대로요.”
도운이 자기 전화로 촬영했다.
“시계가 틀린 걸 수도 있어요.”
“네. 그래서 확인해 보려고요.”
서린은 관리실 창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동관 입구와 그 위의 둥근 카메라가 보였다. 관리실 모니터의 1번 채널도 같은 입구였다.
서린이 손전등을 세 번 켰다.
1번 화면은 곧바로 세 번 밝아졌다.
“이쪽은 현재예요.”
“4번만 늦는다는 뜻이네요.”
“아직은 시계 오류인지 영상 지연인지 몰라요.”
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섣불리 한쪽으로 몰아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서린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화면 속 여자가 몸을 옆으로 밀었다.
문에 기대 있던 어깨가 내려앉았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뒤, 들고 있던 흰 봉투로 무릎을 두드렸다.
서린은 촬영을 멈추지 말라고 손짓했다.
“일단 찾아요. 지금도 안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요.”
기준이 열쇠를 내밀었다.
“214호는 문이 조금 빡빡합니다. 밀지 말고 들었다가 당기세요.”
“영상에서는 안으로 여는 것 같은데요.”
“뭐라고요?”
“아뇨. 확인할게요.”
서린은 열쇠에 붙은 누런 딱지를 봤다. 214. 마지막 숫자 아래에는 다른 글씨를 뜯어낸 듯한 네모 자국이 있었다.
관리실 문 옆에는 새 테이프로 붙인 안내문이 있었다.
안전점검 담당 이서린. 방문 예정 18:30~19:30.
서린은 자신의 이름 아래 적힌 개인 번호가 아니라 회사 대표 번호부터 확인했다. 어제 전송한 작업안내와 같았다. 적어도 낯선 방문은 아니었다.
“잔류자 확인도 부탁드린다고 전달받으셨죠?”
“사람은 다 나갔어요. 물건만 몇 개 남았습니다.”
기준은 답하면서 출입대장 모서리를 접었다 폈다.
“물건이 남으면 다시 가지러 오는 분이 있어요. 오늘 열쇠를 받아 간 사람이 있었나요?”
“정리 업체가 오후에 왔지요.”
“인원은요?”
“둘. 아니, 차는 두 대였고 사람은 셋이었나.”
서린은 질문을 멈췄다. 기억을 다그친다고 정확해지지는 않았다. 대신 오후 출입 기록도 그대로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도운이 출입문을 고정해 둔 나무쐐기를 발로 더 밀려다가 멈췄다.
“방화문이네요.”
그는 쐐기를 주워 관리실 책상에 올렸다. 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편하게 열어 두는 것과 나갈 길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돌아올 길은 안에서 열리는지 확인하면서 가요.”
“저도 문에 갇히는 취미는 없어요.”
가벼운 대답이었지만 도운은 손잡이를 양쪽에서 시험했다.
서린은 자신의 가방 옆 주머니를 눌렀다. 호루라기, 여분 전지, 종이 도면. 휴대전화만 믿고 들어갔다가 배터리와 신호를 한꺼번에 잃은 현장을 겪은 뒤 생긴 습관이었다.
그때도 보고서에는 '점검 완료'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가 작성한 보고서였다.
그날 사람을 놓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잠긴 지하 문 앞에서 스무 분 동안 자기 이름을 부르던 동료의 목소리는, 지금도 완료라는 단어 옆에 붙어 있었다.
서린은 관리실 전화번호를 종이 도면에 옮겨 적었다.
이번에는 화면 속 사람부터 확인할 차례였다.
관리실을 나오자 건물이 조용해졌다.
복도 형광등 세 개 중 하나만 켜져 있었다. 손전등을 바닥에 비추니 모래와 젖은 신발 자국이 드러났다. 둘의 것이 아니었다. 자국은 계단 쪽으로 이어지다가 마른 바닥에서 끊겼다.
“관리인님은 계속 여기 계셨대요?”
도운이 물었다.
“그렇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한 것하고, 계속 있었던 건 다르죠.”
서린은 답하지 않고 신발 자국 옆에 접이자를 놓아 사진을 찍었다. 크기나 방향은 나중에 기억하려 하면 꼭 틀렸다.
그는 말끝에 웃지 않았다.
서린은 자기 안전모 턱끈을 조였다. 끈이 손가락 두 개 들어갈 만큼 남았다. 사람의 위치가 불분명한 건물에서 서두르는 일은 필요했지만, 머리를 다쳐 구조 대상이 하나 더 늘어나는 일은 필요하지 않았다.
“소리 나면 서로 먼저 부르기예요. 혼자 확인하러 가지 말고.”
“알았어요. 저도 이서린 씨 놓치면 오늘 운전비 못 받으니까.”
“돌아가면 출발 시간부터 다시 적어 드릴게요.”
둘의 대화가 계단실에서 한 차례 메아리쳤다. 그 뒤로는 운동화 밑창이 모래를 미는 소리만 났다.
2층 계단참에는 공실 확인표가 붙어 있었다.
209호부터 218호까지, 모든 칸에 같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확인 시간은 오후 세 시. 서명은 남기준이었다.
214호 앞에 섰을 때 서린은 손전등을 낮췄다.
문 밑에 먼지가 이어져 있었다.
문을 조금이라도 열면 끊길 가느다란 회색 선이었다. 발자국은 없었다. 조금 전 누군가 주저앉아 있었다면 무릎이나 발뒤꿈치가 스쳤을 자리에도 먼지는 고르게 놓여 있었다.
“계세요?”
서린이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도운은 복도 끝을 살폈다. 서린은 도망갈 길을 찾는 사람의 습관인지, 들어올 사람을 보는 습관인지 알 수 없었다.
열쇠를 꽂았다. 잠금장치는 한 번에 돌아갔다.
서린이 손잡이를 들어 당기자 문이 바깥으로 열렸다.
안은 비어 있었다.
가구가 빠져나간 바닥에 직사각형 얼룩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창문은 빗장으로 잠겼고 천장에는 짧은 전선만 매달렸다. 사람이 숨을 만한 곳은 없었다.
서린은 안으로 발을 넣지 않고 문틀과 바닥을 찍었다.
“여기가 맞아요?”
도운이 물었다.
서린은 휴대전화로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다.
“문 열었어요. 화면에 저희 보여요?”
수화기에서 기준의 숨소리가 났다.
“아니요.”
“여자는요?”
“그대로 있어요.”
서린은 손전등을 위아래로 두 번 움직였다.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다면, 시계만 틀렸을 경우에는 이 빛이 지금 보여야 했다.
“빛도 안 보여요?”
“안 보입니다.”
“촬영 계속해 주세요. 도착 시각은 열여덟 시 오십이 분이에요. 열아홉 시 오 분까지는 화면에서 눈 떼지 마세요.”
그녀가 통화를 끝내자 도운이 복도 천장을 가리켰다.
“카메라는 저기 있어요.”
검은 반구형 카메라였다. 서린은 렌즈를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화면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터였다.
“영상이 늦거나, 다른 곳을 보여 주거나.”
서린이 말했다.
“둘 다일 수도 있죠.”
도운이 문턱을 발끝으로 가리켰다.
금속 턱에는 빗물에 닳은 것처럼 가로 홈이 세 줄 나 있었다.
서린은 촬영된 모니터 사진을 확대했다. 여자의 운동화 앞에 보이던 턱은 매끈했다. 중앙에 검은 고무띠가 있었고, 문 아래에는 은색 환기구가 붙어 있었다.
214호 문에는 환기구가 없었다.
“다른 곳이에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자 바람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복도 끝 창문은 닫혀 있었다. 계단 방화문도 닫혔다. 그런데 바람은 문틈이 아닌 벽에서 불어오는 것 같았다.
서린은 건물 도면을 꺼냈다.
서관은 직사각형. 동관도 직사각형. 두 건물을 잇는 부분은 두꺼운 검은 선이었다. '기존 구조체, 출입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운이 도면을 손으로 눌렀다.
“이거 언제 받은 거예요?”
“오늘 오후요.”
“옛날 도면을 다시 출력한 것 같은데.”
그는 연결부 검은 선을 보다가 손을 뗐다.
“여기 바닥 높이가 안 맞아요. 바깥에서 보면 서관 창문이 반 칸쯤 높거든요.”
서린은 복도 길이를 눈으로 재 봤다.
도면에 적힌 길이보다 짧았다.
줄자를 꺼내 벽에서 벽까지 재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기준이었다.
“영상에 누가 지나갔어요.”
“누가요?”
“작업복 입은 사람. 얼굴은 안 보였습니다. 여자가 그 사람한테 뭘 내밀었는데, 그냥 갔어요.”
“화면 시간요.”
“열여덟 시 사십이 분.”
서린은 휴대전화 시각을 확인했다.
18:55.
이번에도 열세 분이었다.
열여덟 시 사십이 분에 서린은 관리실 문을 들어섰다. 도운은 차에서 장비를 내렸고, 기준은 출입대장을 펼쳤다. 셋이 모두 그 장면에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도 저 복도에 갔다 왔다고 하지는 않았다.
서린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의심을 먼저 꺼내면, 다음 대답은 모두 의심에 맞춰질 테니까.
“그 여자가 지금도 보여요?”
“봉투를 펼치고 있어요.”
“거기 쓰인 게 있으면 읽어 주세요.”
수화기 너머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잠시 뒤 기준이 말했다.
“이름이 있어요.”
서린은 창백한 벽에 등을 붙였다. 먼 곳에서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화면에서 여자가 두드리던 간격과 같았다.
한 번. 쉬고 두 번.
“무슨 이름인데요?”
기준이 대답하기 전에 도운이 손전등을 껐다. 어둠 속에서 서린은 그가 귀를 벽에 가까이 대는 걸 봤다.
수화기에서 기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서린.”
화면 속 사람은, 아직 만난 적도 없는 서린의 이름을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