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흔여드레째 점심, 태오는 이준의 그림에서 의자 다리를 먼저 셌다. 하나, 둘, 셋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약속했던 농담을 실제로 하는 얼굴이었다. 이준은 밥그릇을 자기 쪽으로 조금 당겨 종이에 국물이 닿지 않게 했다. 센터 식당의 점심시간이었고 둘이 쓰는 탁자는 금방 다음 사람에게 돌아갈 자리였다. 그는 그림을 자랑하려고 밥을 오래 붙잡지는 않기로 했다.
“네 번째는 아직 퇴근 안 했어요?”
태오가 물었다. 이준은 자기가 앉으면 보이지 않는 쪽을 안 그렸다고 답했다. 그러자 태오는 그림을 돌려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 속 의자는 돌려 본다고 실제 밑이 생기지 않았다. 태오는 그럼 셋이라서 틀린 것이 아니라 자기가 네 개를 기대해서 세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준은 밥을 삼키고 그 정도로 자기 그림을 구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웃었다.
친구는 웃음을 거둔 뒤 의자의 빈 밑을 오래 봤다. 이준은 종이를 조금 당겨 숨기고 싶어졌다. 자기 눈으로는 이미 못 그린 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남의 눈이 같은 곳에 멈추면 또 달랐다. 태오는 집의 어느 쪽에서 그린 것이냐고 물었다. 이준은 식탁 옆에 앉아 바라본 모양이라고 답했다. 실물은 네 다리였고 종이에서는 셋이 남았다. 그 둘을 같은 검사표로 맞출 필요는 없었다.
태오는 자기가 전날 받은 질문이 아직 머리에 남아 있다고 했다. 왜 얼굴이 없느냐는 말이었다. 이준은 얼굴을 넣을지 결정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친구는 넣어 보니 그림이 자꾸 자기 아는 사람이 되어 일단 지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손을 대 본 뒤 내린 판단이었다. 그는 자기 의자의 네 번째 다리를 그려 넣어 본 적은 없다고 답했다. 지금은 그 빈자리를 종이 밖에 두고 싶었다.
윤단이 물을 받으러 왔다가 둘의 탁자를 봤다. 이준은 그림을 급히 접지 않았다. 반장은 의자가 자기 몸을 받치는 물건인지 묻고, 실제 것은 괜찮다는 답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늘 오후 정리할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자기 식판을 들었다. 취미를 본 상사가 농담을 해야 할 의무도 없었다. 태오는 윤단이 지나간 뒤에야 자기 물을 마셨다.
식사를 마치며 이준은 그림을 다시 상자에 넣었다. 태오는 사진으로 남겨도 되는지 물었다. 그는 오늘은 원본만 가지고 있고 싶다고 답했다. 친구는 알겠다고 했다. 이준은 거절했으니 다른 보상을 줘야 할 것처럼 다음 그림을 먼저 약속하지 않았다. 종이 한 장이 다른 사람에게 보인 것만으로도 오늘 바뀐 일이 있었다. 사진이 없다고 읽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오는 그림 뒤에도 날짜가 있는지 물었다. 이준은 앞 모서리에만 적었다고 답하고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식탁을 그리려다 멈춘 희미한 선이 하나 있었다. 그는 그쪽은 아직 그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러면 앞면만 본 셈이냐고 물었다. 이준은 오늘은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종이에 있어도 아직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쪽을 남길 수 있었다. 태오는 다시 앞면으로 돌려 놓았다.
오후에 윤단은 쉼터 후속을 함께 정리했다. 운영 담당이 받은 안내와 다음 교대의 실제 사용 경과가 들어와 있었다. 이번 배정은 정한 후속까지 마쳤고 이후 물리 변화나 새 민원은 별도 접수로 받는다고 했다. 이준은 자기 손을 다시 대야 하는지부터 묻지 않았다. 지붕 아래에서 기다리는 모든 사람을 평생 확인하는 일은 맡지 않았다. 오늘 닫힌 것은 이번 작업의 범위였다.
운영 담당이 남긴 마지막 말에는 의자가 없는 쪽에서 서서 기다린 사람도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현재 안내를 듣고 자기가 고른 자리였다는 설명이 붙었다. 이준은 고친 의자에 모두 앉아야 수리가 끝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앉을 수 있는데 서 있는 것과 앉을 곳이 없어 서 있는 것은 달랐다. 그는 그 차이가 실제로 전달된 범위까지만 읽고 다음 접수로 넘어갔다.
그가 기록 끝에 이름을 적자 윤단은 다른 접수 하나를 내밀었다. 북서 생활관의 장비 반납실 출입문이었다. 빌린 물건을 손수레에 싣고 오면 문을 지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문을 세게 밀어야 한다는 말과 열어 놓으면 담당이 화를 낸다는 말이 같은 접수에 있었다. 담당자는 문이 고장 난 적 없다고 썼다. 반장은 내일 낮에 시설 담당과 같이 보자고 했다.
이준은 누군가 한 말을 원인으로 고르지 않고 접수 시간을 봤다. 물건을 가져온 사람은 오후 늦게 왔고, 직원 답은 다음 날 오전에 적혔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문을 본 말인지 아직 모를 일이었다. 사진에는 닫힌 문과 바닥의 넓은 회색 자국이 찍혀 있었다. 이준은 그 자국을 밤의 금으로 부르지 않았다. 일반 카메라에 보이는 것은 실제 바닥과 닳은 흔적이었다.
“문만 보면 됩니까.”
그가 묻자 윤단은 문에 닿기 전 어떤 물건이 어디로 오는지도 보겠다고 답했다. 지금 접수는 전체 생활관을 조사하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이준은 빌리는 장비 중에 무엇이 가장 큰지 물었다. 반장은 휴대용 전시판과 접이식 받침이 자주 돌아오지만 이번 물건이 무엇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모르는 이름 하나를 알아내면 당장 해결되는 종류의 일은 아니었다.
태오는 접수 사진의 시간을 확인하고 담당이 보관한 원본 경로를 정리했다. 그는 이준에게 식당의 그림은 다른 업무 파일에 넣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준은 고맙다고 답했다. 친구가 기록 담당이라는 이유로 사적인 종이도 전부 맡길 필요는 없었다. 이번 문 사진은 시설의 자료이고 자기 의자는 집에 둘 물건이었다. 두 종이를 나누는 일은 서로를 덜 믿어서 생긴 것은 아니었다.
퇴근 전 이준은 일반 업무 창고에서 작은 이동 받침을 옮겼다. 문을 지나며 손수레보다 자기 어깨가 먼저 돌아갔다. 무심코 할 수 있는 동작이 사진 속 민원인에게도 가능했는지는 몰랐다. 손에 어떤 물건을 들었는지, 문 앞에 누가 있었는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는 내일 현장에 가져갈 질문만 짧게 남겼다. 자기 몸으로 한번 통과했다고 모든 몸이 지나갈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센터 밖에서는 비 냄새가 났다. 이준은 우산을 펴지 않고 하늘을 봤다.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돌려줄 날이 가까워 현재 반납 시각을 확인했다. 내일 현장 뒤에 갈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붙였다가 오늘 돌아가는 길에 들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읽고 싶은 책이 남았지만 빌린 한 권을 다 읽기 전까지 새 책을 볼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료실 창구에서 그는 반납할 책을 건넸다. 직원은 표지를 보고 재미있었느냐고 물었다. 이준은 마지막 사람이 문을 연 뒤까지는 좋았다고 답했다가 뒤도 읽었다고 덧붙였다. 결말의 누군가는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그 장면이 아직 머리에 남는다고 말했다. 직원은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이 있다며 서가 위치만 알려 줬다. 오늘 꼭 빌리라는 권유는 아니었다.
그는 책을 한 권 꺼내 앞부분을 봤다. 이번에는 집이 아니라 넓은 강가에서 시작했다. 이준은 앞 책의 사람을 찾듯 이름을 훑다가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알았다. 같은 사람이 썼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문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는 몇 장 읽고 책을 다시 넣었다. 오늘은 그 책을 빌리지 않기로 했다. 빈 가방으로 나오는 길도 자료실을 쓴 시간이 될 수 있었다.
밖에 나오니 가는 비가 시작됐다. 그는 지붕 아래에서 우산을 폈다. 한 손에 책이 없어서 동작이 단순했다. 반납실 민원도 물건의 크기만이 아니라 손 하나가 모자라는 문제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접수 답으로 적지는 않았다. 자기 우산을 편 동작과 다른 사람이 빌린 전시판을 가져오는 일은 달랐다. 내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범위를 먼저 받으면 됐다.
집에서는 의자 그림을 상자에서 꺼냈다. 태오가 물었던 자리에서 다시 보려고 자기 의자를 조금 옮겼다. 안 보이던 네 번째 다리가 실물에서는 바깥으로 나왔다. 이준은 그것을 바로 그리지 않았다. 의자를 돌리면 처음 그림의 다른 면이 사라졌다. 한 장에 자기가 아는 모든 부품을 넣으면 의자가 더 정확해질지, 그냥 분해도처럼 보일지는 아직 몰랐다. 그는 종이의 모서리를 반듯하게 눌렀다.
저녁을 먹고 태오에게 오늘 질문이 좋았다고 보냈다. 그림을 구해 주려던 말보다 어디에서 봤느냐고 물은 말이 오래 남았다는 내용이었다. 태오는 자기도 의자의 위치를 생각하니 다리 개수로만 볼 필요가 없어졌다고 답했다. 이준은 친구에게 다음 모임에 자기도 그림을 가져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오늘 식탁에서 한 사람에게 보인 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독자를 만날지는 다음에 고를 수 있었다.
윤단에게서는 내일 담당을 만날 시각과 실제 반납이 있는지 확인한 답이 왔다. 늦은 오후에 전시판 한 벌이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문 시설 점검은 낮에 하고 필요하면 그 장면을 현장 담당과 같이 보기로 했다. 이준은 야간 봉합 배정이냐고 물었다. 윤단은 아직 아니라고 답했다. 물리 원인도 모르고 운영 상황도 모르는 문에 먼저 맨손을 댈 일정은 없었다.
이준은 그 답을 받고 내일 출근을 준비했다. 밤일이 없다는 말이 내일 현장이 가벼울 것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큰 물건이 지나가는 길에서 작은 문이 하는 일은 직접 봐야 했다. 그는 가방 속 장갑 상태를 확인하고 물병을 씻었다. 현실의 안전 절차를 자기 눈으로 줄일 수는 없었다. 대신 실제로 쓸 물건 하나를 오늘 준비하면 내일의 질문을 조금 덜 서두를 수 있었다.
미서에게 오늘 새 사용 건이 없다는 확인도 받았다. 백일흔엿새째 한 건은 전날 실제 수면에서 사십 분을 상환했고 남은 미상환 건은 없었다. 이준은 내일도 쓰지 않으면 몸이 계속 좋아지는지 묻지 않았다. 능력을 쓰지 않는 날에도 일과 잠이 필요했다. 그는 오늘 저녁의 피로를 이상한 빚으로 더 세지 않았다. 비 오는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살아온 몸의 무게도 있었다.
잠들기 전 식탁 위에는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서랍에서 연필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태오가 본 뒤부터 자기 그림을 고쳐야 할 물건처럼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줘도 어제 그대로 둘 수 있었다. 이준은 그린 날짜만 다시 읽고 종이를 상자에 넣었다. 다음 질문이 생겼다는 이유로 오늘 선을 모두 다시 만들 필요는 없었다.
바깥에서는 빗소리가 굵어졌다. 그는 내일 반납할 전시판이 젖을지 잠깐 생각했다. 아직 그 물건을 가져오는 사람도, 포장도 보지 못했다. 자기 걱정으로 미리 젖은 물건을 만들지는 않기로 했다. 이준은 알람을 맞추고 불을 껐다. 내일 보러 갈 문에는 지금 모르는 사람이 서게 될 것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손으로 문을 잡는지 보는 일이 이번 현장의 첫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