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흔이레째 아침, 이준은 눈을 뜨고도 바로 전화기를 들지 않았다. 실제로 잔 밤의 무게가 몸에 남아 있었다. 어젯밤 한 건의 봉합 뒤 붙었던 피로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어깨가 완전히 가볍지는 않았다. 그는 물을 마시고 밥을 먹었다. 미서와의 확인은 그다음이었다. 다음 수면 사십 분의 대가는 이번 실제 수면에서 상환됐다.
그는 백일흔엿새째 스물세 시 십육 분 한 건이라는 기록을 맞췄다. 날짜가 바뀌었기 때문에 지워진 빚이 아니었다. 미서는 오늘 새 봉합 접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준은 대가가 갚혔으니 마음대로 늦게 다녀도 된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수면 빚의 상환을 확인하는 일과 오래 밖에 있을 몸이 되는 일은 같은 확인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윤단에게는 현재 몸 상태를 알렸다. 오늘 현장 배정은 없었고 일반 업무도 현재 조정한 범위에 있었다. 쉼터 운영 담당은 첫 운행과 대기 안내를 실제로 받았다고 전했다. 수리한 의자에 추가 움직임은 이번 확인에서 없었고 안내를 묻는 사람에게는 직원이 설명했다. 이준은 그 소식을 잠정 봉합의 영구 성공표로 쓰지 않았다. 정한 후속 하나가 들어온 것이었다.
태오에게는 저녁에 짧게 가겠다고 오전 중 답했다. 지금 몸으로 이동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골랐다. 오래 남아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태오는 자기는 먼저 가서 그림을 펴겠다고 했다. 이준은 동행하는 차 시간을 맞추지 않고 모임의 현재 장소와 입장 방법을 받았다. 그 방에서는 수리공이 아니라 구경하러 온 사람으로 앉을 예정이었다.
오후에 잠깐 더 쉬고 일어나 자기 종이가 든 상자를 열었다. 다리 셋의 의자를 가져갈까 생각했다. 태오가 부탁한 것은 그림을 보러 오는 일이었고 누구나 자기 종이를 가져와야 하는 모임이라고 듣지는 않았다. 그는 들고 가서 불쑥 펼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태오가 나중에 물으면 보여 줄 수 있도록 작은 종이를 가방 안쪽에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쑥스러웠다.
밖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그는 우산을 들지 않고 물병을 챙겼다. 도착할 때쯤 피곤하면 돌아올 차도 현재 확인했다. 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춘다고 반드시 끝까지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버스 안에서 그는 책을 펴지 않았다. 창밖으로 저녁 준비를 하는 가게들이 지나갔다. 그중 고장 난 간판을 찾아보는 눈을 오늘은 거뒀다.
자료실 작은 방 앞에는 모임 안내가 있었다. 지난 보수 구획과는 다른 입구였다. 이준은 자기가 아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현재 표지를 따라갔다. 복도에서 직원이 이름을 물었고 그는 참가 안내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디를 고쳤는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직원은 방의 위치와 현재 나갈 수 있는 길을 알려 줬다. 그는 가방 끈을 고쳐 쥐고 들어갔다.
태오의 그림은 벽에 걸려 있지 않았다. 낮은 책상 위에 받침과 함께 놓여 있었다. 큰 식탁이 방 안의 실제 책상보다 길어 보였다. 태오는 그림 모서리를 누르려다가 받침 아래로 손을 옮겼다. 오늘 처음 가져온 물건처럼 조심스러웠다. 이준은 아는 얼굴을 보고 손을 들었다. 태오는 가까운 의자 하나를 가리켰지만 반드시 거기 앉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준은 앉은 뒤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면에서는 가까운 그릇이 크게 보였고 옆에서는 식탁 끝이 먼저 보였다. 태오는 왜 옮겼느냐고 물었다. 그는 먼저 보이는 것이 달라져서라고 답했다. 그 말만으로도 태오는 종이를 급히 돌리지 않았다. 보는 사람이 자리를 고르는 동안 그림을 만든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준은 그 짧은 침묵이 불편할 것이라고 미리 정하지 않았다.
진행자는 원하는 사람이 그림을 함께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전체가 박수를 치거나 태오가 앞에 서는 순서는 없었다. 다른 책상에서는 누군가 책의 한 줄을 작은 목소리로 읽었다. 이준은 자기 앞의 그림이 가장 주목받아야 친구가 덜 떨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태오는 옆에 놓은 물을 마시고 자기 종이에 시선을 돌렸다. 그도 방의 여러 사람 중 하나였다.
첫 번째로 다가온 사람은 그릇 안의 선이 무엇인지 물었다. 태오는 국수라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실처럼 보인다는 말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준은 자신이 먼저 했던 농담을 대신 설명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국수라면 혼자 먹기에는 너무 길게 늘어졌다고 말했다. 태오는 그게 음식 길이인지 식탁 길이인지 물었다. 둘이 웃었고 질문은 태오가 골랐던 것보다 옆으로 갔다.
그 사람은 식탁이 길어서 그릇이 멀리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태오는 가까이 있는 사람도 멀어 보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질문이 조금 빨라졌다. 진행자가 이쪽을 한번 봤지만 대화를 끊지는 않았다. 이준은 태오가 목을 가다듬는 것을 봤다. 그림을 설명하기 전에 다음 사람의 말을 받을 틈을 스스로 찾는 모양이었다.
두 번째 사람은 신발이 벗겨져 있는 자리를 오래 봤다. 그 사람은 누군가 급히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태오는 들어온 것인지 나간 것인지 생각하며 그렸다고 말했다. 신발을 그린 사람이 답을 하나로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준에게도 새롭게 들렸다. 자신과 이야기할 때는 들어온 사람일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것이 유일한 해석은 아니었다.
“저는 이 사람이 아직 안 앉은 것 같아요.”
그 말에 태오는 의자를 가리켰다. 앉을 자리는 있는데 왜 아직 안 앉았는지 물었다. 그 사람은 식탁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고 했다. 이준은 그릇 둘이 한 사람 몫으로 보였던 날을 떠올렸다. 같은 의자 하나가 오늘은 다른 사람의 부재를 만들었다. 태오는 그 말을 종이에 바로 적지 않고 먼저 그림을 봤다.
이준에게도 질문이 돌아왔다. 그는 어디 앉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자 자기가 처음 찍었던 모서리를 가리켰다. 태오는 그곳에 표시만 했다가 반대편 의자를 그렸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준은 자기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농담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자리에 의자가 없어서 오히려 보는 쪽이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 말도 전날과 달라져 있었다.
태오는 그 설명을 듣고 웃었다. 그림 안에 사람이 없는데 그림 앞에 앉은 사람들이 자꾸 식탁에 들어간다고 했다. 이준은 자기 다리가 실제 책상 아래에 있는지 한번 봤다. 종이 속 의자는 누구 몸도 받치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 앉을지 묻는 질문은 실제 사람의 자세를 조금 바꿨다. 그것이 밤의 이음 같은 힘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 종이는 마법 없이도 충분히 바빴다.
다른 참가자 한 명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림을 보고 좋다고 한 뒤 책상 건너편의 책으로 갔다. 태오는 더 설명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이준은 그 사람이 관심이 없었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짧게 보고 옮길 수 있는 자리였고 그 사람은 그렇게 썼다. 종이를 가져온 사람에게 모두 같은 길이의 감상을 줄 의무는 없었다. 태오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방 안의 소리가 조금 커지자 이준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는 자리에서 나와 복도 의자에 잠깐 앉았다. 태오에게는 몸을 쉬었다가 돌아오거나 오늘은 먼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태오는 알겠다고 했다. 친구의 그림 앞을 비운 일이 공연 도중 도망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체 발표가 아니었고 자신이 계속 그 자리를 지켜야 할 역할도 없었다.
복도 창 너머로 저녁빛이 길게 늘어졌다. 이준은 물을 마시고 현재 피로를 다시 봤다. 조금 더 앉아 있을 수 있었지만 귀가까지 생각하면 길게 남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는 방으로 돌아가 먼저 가겠다고 말했다. 태오는 그림을 아직 접지 않고 있었다. 자기보다 늦게까지 남아 다른 말을 받을 계획이었다. 두 사람의 저녁이 끝나는 시각은 같지 않았다.
나가기 전에 태오가 이준의 의자 그림을 물었다. 그는 가방에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같이 펼쳐도 되는지 되묻자 태오는 지금 자기 그림을 받는 시간이 끝난 뒤 따로 보고 싶다고 했다. 이준은 좋다고 했다. 종이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현재 책상 한가운데에 놓지 않았다. 보여 줄 장면을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었다. 자신에게도 그만한 선택은 남아 있었다.
진행자에게 인사하고 나왔을 때 이준은 의외로 배가 고팠다. 집에서 먹을 것을 생각하며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모임에서 받은 말을 머릿속으로 대신 정리해 태오에게 길게 보내지는 않았다. 태오는 남아 있었고 자기 귀로 다른 말을 듣고 있었다. 오늘 이준이 실제로 본 것은 국수 질문과 신발 이야기, 그리고 한 사람이 짧게 떠난 장면이었다. 그 뒤의 성공을 상상해 보고서처럼 쓰지 않았다.
집에서 밥을 데우는 동안 태오에게 사진이 왔다. 모임이 정한 시간에 끝나 그림을 받침에 다시 넣었다고 했다. 종이를 고친 것은 없고 들은 말은 나중에 적어 볼 생각이라고 했다. 이준은 어떤 말이 가장 좋았느냐고 묻다가 지금 쉬고 싶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오늘 신발 얘기가 새로 들렸다고 자기 감상을 하나만 보냈다.
태오는 자기에게도 그랬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모르는 질문이 오면 설명을 못 할까 봐 무서웠는데, 실제로는 자기가 안 정한 답을 듣는 일이었다고 했다. 모든 질문이 좋았다는 말은 아니었다. 한 사람은 왜 얼굴을 안 그렸느냐고 물었고 태오는 그 질문이 아직 불편했다고 덧붙였다. 이준은 얼굴을 그리면 되겠다는 답을 하지 않았다. 친구가 자기 종이를 접은 밤에 숙제를 더 얹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이준은 자기 종이를 식탁 위에 폈다. 태오에게 보이려고 꺼낸 그림은 여전히 비뚤었다. 그는 처음으로 제목을 붙여 볼까 생각했다. 지붕 아래 의자라고 쓰려다가 지웠다. 그 의자는 자기 집의 것이었고 쉼터의 저녁을 대신 그린 물건이 아니었다. 그는 이름 대신 그린 날을 작은 글씨로 남겼다. 오늘 본 것을 억지로 모두 종이에 넣지는 않았다.
밤에는 쉼터의 다음 경과가 정한 담당에게 전달됐다는 알림만 왔다. 윤단이 후속을 받아 정리할 것이고 이준에게 추가 출동 요청은 없었다. 그는 문자 하나로 현장을 전부 닫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늘 자신이 실제로 마친 일은 상환 확인과 약속한 범위의 그림 방문이었다. 그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한쪽을 쉬는 날의 낭비라고 줄일 이유는 없었다.
태오가 다음 근무 때 자기 그림 옆에서가 아니라 식당에서 의자 그림을 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이준은 그러자고 답했다. 잘 그렸다는 말을 준비하지 말라는 농담을 덧붙였다. 태오는 그럼 다리 개수부터 세겠다고 했다. 그는 웃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자기 그림 앞에서 받을 첫 질문이 조금 두려웠고, 그 두려움이 내일 출근을 전부 무겁게 만들지는 않았다.
잠들기 전 그는 빌린 책을 몇 장 읽었다. 앞권에서 문을 두드리던 사람이 마침내 다시 나왔다. 기다린 답은 전날 상상과 달랐다. 이준은 그 차이가 반가워 책갈피를 조금 더 뒤로 옮겼다. 오늘 자기 몸은 충분히 밖에 다녀왔고 책 속 사람이 다른 문을 열 차례였다. 그는 다음 장을 남겨 두고 불을 껐다. 식탁 위의 의자는 아무도 앉지 않은 채 자기 종이 안에서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