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순이틀째 아침, 이준은 다음 주 일정표를 펴 놓고 센터에 답했다. 백예순여드레째 낮에는 현재 잡힌 일이 없었다. 몸 상태는 그날 다시 알리고, 우선 가능한 시간으로 남겨 달라고 했다. 가능하다는 말 옆에 이미 했다는 도장을 찍을 사람은 없었다.
윤단은 답을 받고도 주소부터 불러 주지 않았다. 요청한 쪽과 작업 범위를 맞추는 중이라고 했다. 이준은 공구함 뚜껑을 닫았다.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생겼다. 반납한 장갑 안쪽의 거친 솔기를 펴고, 오른손 엄지에 닿는 자리를 살폈다.
태오는 점심에 진행자에게서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림을 함께 볼 수 있는 자리를 논의할 수는 있지만 장소가 아직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준은 그럼 전시하는 거냐고 물으려다 자기 말을 고쳤다. 태오는 아직 문의에 답이 온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둘 다 웃지 않았다. 자기 그림이 어딘가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태오에게 먼저 와 있는 듯했다.
“보여 줄 그림은 골랐고?”
“고르는 중이에요. 방이 없으니까 그림도 아직 작아도 될 것 같아서요.”
이준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지는 못했다. 책상을 창가로 옮기려던 소설의 주인공도 상자를 먼저 받았다. 놓을 자리가 정해지기 전에 물건의 크기를 재는 날이 있었다. 그는 이해한 척 대답하는 대신 태오가 들고 있던 종이를 한 번 보고 자기 밥을 받았다.
백예순여드레째가 됐을 때 배정표에는 북문 생활자료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출입구 바깥의 책 반납함과 안쪽 인수 공간을 잇는 문이었다. 접수에는 닫을 때 금속음이 난다는 말, 바람이 센 날 책 안에 끼운 신청 쪽지가 흩어진다는 말이 나란히 있었다. 이준은 두 증상이 한 원인이라는 설명은 받지 않았다.
오전에 몸 상태를 말하자 윤단은 오늘의 일반 배정을 확인했다. 밤 후속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태오는 원본 대조 때문에 뒤에 합류하고, 이준은 담당 시설기사와 먼저 만나기로 했다. 자료실은 주택가 뒤편의 낮은 건물이었다. 문 옆에는 비를 맞은 적 있는 종이 안내판이 처마 아래로 옮겨져 있었다.
안내판에는 예전 출입문을 가리키던 화살표 자국이 남았다. 그 위에 새 화살표가 붙어 있었다. 이준은 곧장 옛길을 따라가지 않고 접수된 문을 현재 담당에게 물었다. 직원은 본관으로 들어가 안에서 만나자고 했다. 바깥에서 반납하는 사람에게는 열리지 않는 작업 구역이었다.
그는 정한 인사를 하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방 안에는 누가 구경하러 왔다고 책을 다 멈출 사람이 없었다. 담당 직원이 책 수레를 비운 뒤 문 쪽으로 왔다. 금속음이 난다는 말을 하면서도 바로 여닫아 보이지 않았다. 방금 반납한 책들이 안쪽에 쌓여 있어 먼저 옮길 시간이 필요했다.
이준은 기다리며 바닥을 봤다. 금속함의 아래쪽에는 신발 끝으로 밀린 듯한 먼지 자국이 있었다. 책은 바깥에서 넣었는데 무언가를 안쪽에서 자주 발로 밀었다. 직원은 반납 책이 걸릴 때 바닥 받침을 움직인다고 말했다. 처음 쓰던 방법은 아니고, 함을 안쪽으로 옮긴 뒤 생긴 버릇이었다.
“누가 옮겼는지는 알아요. 그 뒤 왜 소리가 났는지는 몰라요.”
직원의 말이 먼저 갈라졌다. 이준은 그 사이를 억지로 메우지 않았다. 시설기사는 이동 요청과 완료 기록을 가져왔다. 외벽 빗물 수선 때문에 임시로 들였던 것을 같은 자리에 계속 쓰게 됐다고 했다. 외벽 공사는 끝났지만 원래 자리로 되돌릴지는 자료실 운영자가 따로 고르는 일이었다.
반납함을 비우자 금속음이 덜 났다. 직원은 역시 책 무게 때문이라고 했다가 시설기사가 손을 들자 말을 멈췄다. 빈 함에서도 닫힐 때 얇은 울림은 남았다. 무게가 한 가지 차이를 만들었다는 관찰과 원인을 찾았다는 결론은 같지 않았다. 이준은 귀에 남은 짧은 떨림을 수첩의 다른 줄에 적었다.
문은 반납함의 뒤에서 안쪽 인수실로 열렸다. 책을 받으려면 문을 지나고, 함을 비우려면 문 옆에 서야 했다. 둘이 겹치는 시간에 직원은 늘 문을 어깨로 받쳤다. 그 말을 들은 시설기사는 다음 동작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하던 불편한 일을 증거 때문에 다시 시킬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반납을 잠깐 다른 창구로 받고, 비운 함과 문을 따로 보기로 했다. 안내는 자료실 직원이 맡았다. 문 앞에서 돌아서던 첫 방문자는 생각보다 먼 길로 오게 됐다며 불평했다. 직원은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고 현재 받는 자리를 가리켰다. 안전한 우회도 누군가에게는 실제 수고였다.
이준은 그 사람이 지나간 뒤 안내판의 화살표가 지금 길에 맞는지 살폈다. 새 화살표를 또 붙이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직원의 손을 봤다. 직원은 낡은 판을 가져가고 현재 안내 한 장만 세웠다. 덧댄 방향이 여러 개 남아 있어 처음 오는 사람이 마지막 종이를 고를 수 없었다고 했다.
함을 움직이는 작업은 담당자들이 범위를 확인한 뒤 받았다. 이준은 혼자 들어 보지 않았다. 안쪽 받침 한쪽이 다른 높이의 바닥에 걸쳐 있었다. 문을 받치려고 임시로 끼웠던 얇은 조각도 나왔다. 누가 장난으로 넣은 물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조각이 없으면 안쪽 문이 바깥으로 밀린다는 직원의 설명이 뒤따랐다.
“함을 고정하려고 넣은 줄 알았는데요.”
시설기사가 말했다. 직원은 문 때문에 넣었지만 함까지 덜 흔들려서 그대로 뒀다고 답했다. 하나의 임시 조치에 두 개의 이유가 붙어 있었다. 어느 쪽을 고치고 뺐다고 할지 정하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다시 가져다 놓을 수 있었다. 이준은 조각을 정한 보관 자리에 옮기고 쓰임을 같이 남겨 달라고 했다.
점심 무렵 태오가 왔다. 그는 오래된 이동 기록을 받았지만 새 결론을 꺼내지는 않았다. 기록의 그림에는 반납함 아래의 빈 공간이 열려 있었다. 현재는 책 상자를 덜 밀어 넣으려고 나무판으로 가려져 있었다. 시설기사는 그 판을 누가 왜 달았는지 운영 쪽과 확인하겠다고 했다. 떼어 내는 순서부터 정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태오가 종이를 들여다보는 동안 이준은 창구에 선 아이를 봤다. 아이는 반납한 책 안에서 자기 그림을 꺼내 달라고 했다. 안내를 읽기 전에 평소처럼 함에 넣은 모양이었다. 직원은 지금 꺼내 줄 수 있는 범위를 보고,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아이는 자기 책이 아니라 도서실 책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림만 돌려받고 싶다는 뜻이었다.
일을 멈출 만큼 급한 위험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계를 보는 사람에게 작은 그림이 하찮은 물건인 것도 아니었다. 직원은 이미 비워 둔 책에서 해당 권을 찾았다. 이준은 그 손이 다른 사람의 책장을 함부로 넘기지 않고 제목과 끼운 자리를 먼저 묻는 것을 봤다. 아이가 말한 쪽에서 접힌 종이가 나왔다.
종이에는 버스가 아니라 물고기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는 비늘이 찢어졌는지 확인하고 품에 넣었다. 태오는 자기 가방을 한번 만졌다가 손을 내렸다. 이준은 무슨 생각인지 묻지 않았다. 누구의 그림이든 현재 주인에게 돌아갈 일이 먼저 끝났다. 직원이 책에 남은 다른 종이는 없는지 확인하고 반납을 마쳤다.
잠깐 비운 인수실에는 눅눅한 냄새가 남았다. 책에서 나는지 바닥에서 나는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이준이 말하자 직원은 비 오는 날이면 더 심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그랬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시설기사는 환기 쪽 담당에게 현재 공간의 쓰임과 최근 점검을 물었다. 문을 덜 닫아 두자는 손쉬운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준은 반납함 위에 놓인 바람개비를 봤다. 아이들 행사가 끝난 뒤 남은 것이라고 했다. 바람을 보려고 달아 둔 물건은 아니었다. 시설기사는 그것을 시험도구로 쓰지 않고 직원에게 옮겨도 되느냐고 물었다. 종이 날개 안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가지러 올 수 있다고 해서 다른 보관함으로 옮겼다.
물건을 비울수록 작업 자리도 넓어졌다. 그러나 이준은 방이 넓어졌다고 사용할 사람 수를 늘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반납함을 들여놓으며 줄어든 공간을 직원들이 얼마나 다른 용도로 써 왔는지는 아직 다 듣지 못했다. 오늘의 고장이 어제의 수납 방법 전체를 틀렸다고 만들지는 않았다.
직원은 그중 한 상자에 책갈피가 들어 있다고 했다. 손님이 놓고 간 것이 아니라 행사 때 자료실에서 나눠 주던 남은 분량이었다. 버릴 물건으로 분류해 둔 것은 아니었다. 태오는 이동 기록 옆에 그 상자의 현재 보관 위치를 적었다. 책갈피를 접수 증거로 가져갈 필요는 없었다. 종이는 제자리에 남고 위치만 기록으로 돌아왔다.
이준은 손바닥에 잡힌 장갑의 접힌 부분을 폈다. 도착했을 때는 문 하나를 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작업 자리에는 운영자의 수납과 방문자의 반납과 다른 담당이 살필 공기 흐름이 같이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자기가 맡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을 늘리는 것과 남의 일을 가져오는 것은 다른 방향이었다.
직원이 다음 창구 교대자를 불렀다. 오는 사람은 책 반납 임시 안내를 처음 들었다. 앞서 불평한 방문자 이야기까지 전하지 않아도 현재 길과 받는 자리는 설명할 수 있었다. 이준은 같은 말을 다시 하는 목소리가 조금 느려지는 것을 들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자기가 돌아간 뒤에도 안내판은 사람의 말과 같은 쪽을 가리킬 수 있었다.
오후에는 현재 바닥에 맞는 받침과 문 쪽 수선 범위를 따로 잡았다. 오늘 문을 다시 쓸 수 있는지는 물리 확인이 끝난 뒤 운영자가 판단하기로 했다. 이준은 그 결정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창구를 하나 더 여는 동안 원래 맡던 다른 일을 늦추는 직원이 있었다. 공구가 조용해도 자료실의 하루는 달라져 있었다.
잠깐 밖에 나가 물을 마셨을 때 바람이 처마를 쓸었다. 안쪽에서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뒤따랐다. 문은 닫힌 상태였다. 이준은 우연히 같은 때 난 소리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들어갔다. 직원은 신청 쪽지 하나가 받침 옆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자기 발로 찼는지는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시설기사는 비운 함을 고정한 상태에서 문을 현재 범위대로 확인했다. 금속음은 없어졌지만, 바깥에 바람이 불자 빈 함 안에서 낮은 울림이 났다. 책 무게는 지금 없었다. 이준은 문이 닫히며 낸 소리와 이것을 구분했다. 처음 들은 접수 문장 두 개가 이제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그는 담당에게 안쪽 바람길의 쓰임을 확인해야겠다고 말했다. 문만 고치면 종이도 가만있을 거라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태오가 가져온 그림에는 빈 공간 옆에 지워진 짧은 선이 있었다. 글자인지 접힌 자국인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이준은 종이의 끝을 누르려다 손을 멈췄다. 오래된 그림을 펴는 일도 원본 담당의 일이었다.
밖에서 책 한 권이 다시 창구에 도착했다. 반납함은 아직 열어 두지 않았다. 이준은 그 소리를 듣고 가방 속 장갑을 꺼냈다. 오늘 처음 온 소리가 오늘 다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다음 사람이 무엇부터 물어야 하는지는 남길 수 있었다. 문 아래 바람은 한 번 더, 아주 얇게 종이 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