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란은 장부의 맨 뒤에 있었다.
미서가 빈 종이를 창구에 놓았다. 강이준은 앉기 전에 그 제목을 읽었다. 수리자 사유에 의한 미수행.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의 보고서처럼 보였다.
“제가 받기 전인데 미수행입니까?”
그가 물었다. 미서는 제목과 작업표를 번갈아 봤다. 잠시 뒤 펜을 들어 접수 전 거절이라고 정정했다. 옛 문구는 가느다란 선 하나로 남겨 뒀다. 이준은 그 옆에 자기 이름을 썼다.
밤 열한 시 십 분이었다. 손목에는 흰 선만 있었고 봉합 대가는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쓴 세 건은 이틀 넘게 지났다. 낮에 잠을 자고 식사도 했다. 못 한다는 핑계를 고를 수 없는 밤이었다.
윤단은 창구 옆에 서서 작업 범위를 읽었다. 태오는 바깥에서 통신과 보존 기록을 맡았다. 오늘은 먼저 점검받은 의자를 선재에게 전달했다. 노인은 등받이에 등을 댄 뒤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이준은 그 침묵을 재촉하지 않고 나왔다.
이제 자기 답을 남길 차례였다.
“시범 구역 분기 보강, 오늘 작업 건을 거절합니다. 시민 대상 부담의 범위와 동의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준은 길게 준비한 설명을 줄였다. 도겸의 전체 사업이 불법이라고 입증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기가 알지 못하는 대가가 남에게 붙을 수 있는 일을 맡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미서는 그 문장을 받아 적고 물었다.
“현장 확인과 긴급 안전 지원도 모두 거절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 작업의 봉합을 받지 않는 겁니다. 다른 실제 사고가 생기면 별도 접수와 원인부터 보겠습니다.”
윤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거절한 사람이 앞으로 아무도 돕지 않을 것처럼 만드는 문구는 필요 없었다. 반대로 돕겠다는 마음을 모든 작업에 대한 동의로 쓸 수도 없었다.
미서는 두 범위를 분리해 썼다. 다음 줄에는 거절에 따른 수면 채무 부과 없음이라고 적었다. 이준은 그 부분을 두 번 읽었다.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기분이 들었다가, 왜 처음부터 벌금을 예상했는지 생각했다.
“이 종이를 제가 한 장 받습니까?”
그가 물었다.
미서가 수령용 사본을 만들었다. 등록번호가 찍힐 때 작은 소리가 났다. 번호표 기계에서 듣던 평범한 소리였다. 이준은 오래 기다렸던 문이 조금 열린 것처럼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창구 옆의 작업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기 이름만 옅어졌고 보강 대상 시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준은 그 종이를 가리켰다.
“제 거절로 작업도 보류되는 건 아닙니까?”
“수리자의 선택과 발주 부서의 결정은 다릅니다. 중지 권한이 있는 부서가 별도 판단해야 합니다.”
미서가 대답했다. 이준은 그 말을 알고도 들어야 했다. 자기 손을 빼면 잘못된 일이 멈출 거라고 조금 기대했다. 그러나 도시에는 자신의 손 말고도 다른 손이 있었다.
윤단이 중지 검토 요청의 담당을 확인했다. 이유는 그대로였다. 시민 대상 부담과 실제 보강 범위의 설명 누락. 미서는 그 요청을 수리자의 거절 기록과 따로 접수했다. 무슨 일이든 한 번호에 몰아넣으면 무엇이 처리됐는지 알기 어려웠다.
태오에게서 연락이 왔다. 낮의 집계 자료 수정본을 받았다고 했다. 무사고라는 제목은 바뀌었고 작업자 사고 별표가 붙었다. 과거 누락 전부가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 영이라는 말 옆에 누군가 다친 손이 들어갈 자리가 있었다.
이준은 사본을 파일에 넣었다. 오늘 작은 문장 하나는 바뀌었다. 그것을 이유로 다른 질문까지 접을 수는 없었다.
창구 밖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도겸은 밤의 통로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출입 확인을 받고 그대로 걸어 들어왔다. 이준은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 손을 멈췄다.
도겸이 먼저 말했다.
“거절 접수 내용을 받았습니다.”
윤단은 남자의 출입증을 확인했다. 미서도 허용 범위 안의 방문이라고 설명했다. 도겸이 정산 장부 전체를 볼 수 있는지는 별개였다. 그는 창구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사고 집계는 고치고 있습니다. 그와 오늘 보강을 분리해서 보셨으면 합니다.”
도겸은 이준에게 말했다. 낮과 같은 목소리였다. 밤의 배관 소리보다 작았지만 문장이 흐리지 않았다.
“그래서 따로 적었습니다.”
이준이 대답했다.
“이 작업에서 누가 무엇을 내는지 설명해 주세요.”
도겸은 접힌 도면을 펼쳤다. 이준이 처음 보는 전체 중앙망은 아니었다. 시범 구역의 관리 범위와 보강 일정만 그린 일반 도면이었다. 붉은 표식은 시설 번호 옆에 있었다. 도겸은 설비 안정과 야간 대기를 줄이기 위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필요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사람 쪽 부담은요?”
그가 다시 물었다. 도겸은 잠깐 손가락을 거뒀다.
“중앙 유지 항목은 개별 시설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오늘 현장에 주민의 기록을 가져오는 방식은 아닙니다.”
“분리돼 있다는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니잖습니까.”
“현장 수리자에게 모든 운영 항목을 해석할 책임을 지우는 것도 무리입니다.”
그 말에 이준은 순간 대답을 놓쳤다. 혼자 모두 알 필요 없다는 말은 윤단도 했다. 그러나 윤단은 그래서 다른 사람과 확인하자고 했고, 도겸은 그래서 진행하자고 했다. 같은 출발점에서 길이 갈라졌다.
도겸이 손을 모았다.
“당신이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더 오래 기다릴 겁니다. 지난번 정류장에서도 그랬지요.”
이준은 버스에 탄 노인의 빈 장바구니를 떠올렸다. 그 젊은 남자가 다시 출근하기 전 얼마를 잤을지도 몰랐다. 지금 자기가 거절한 봉합이 누군가의 늦은 귀가가 될 수 있었다.
입이 먼저 열리려 했다. 한 번만 하겠다고 말하면 이 불편함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윤단이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준 쪽으로 돌아서 서 있었다. 미서도 펜을 내려놓았다. 이준은 아무도 자기 말을 빼앗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가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기다림을 줄이는 동안 누가 더 내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 답 없이 제 잠만 내는 일이라고 받지 않겠습니다.”
도겸은 고개를 조금 숙였다. 성난 얼굴은 아니었다. 잠깐 뒤 그는 오늘 작업의 지연 위험을 현장에 다시 평가시키겠다고 했다. 이준의 거절을 취소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찜찜했다. 손을 붙잡는 사람이 없는데도 마음은 자꾸 문 쪽으로 끌려갔다. 자기 거절 때문에 남이 다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은, 대답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도겸은 도면을 접고 윤단에게 실제 안전 대응은 센터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그 부분은 반장도 수락했다. 정식 출동과 초능력 봉합을 같은 약속으로 만들지 않은 채 현장 연락 경로를 맞췄다.
남자가 떠난 뒤 미서가 장부를 돌렸다. 이준의 서명은 그대로였다. 마음이 흔들린 동안에도 기록은 지워지지 않았다.
“수락으로 정정된 부분 없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본을 다시 확인했다. 안쪽 창구에서 작은 물방울 소리가 났다. 미서가 주전자 밑을 닦았다. 종이 사이에 생긴 긴 침묵이 그 소리로 풀렸다.
“저 차 한 잔만 마셔도 됩니까?”
이준이 물었다.
“물입니다. 차는 떨어졌습니다.”
“설명부터 해 주시니 좋네요.”
미서의 입가가 잠깐 움직였다. 윤단이 먼저 종이컵을 잡았다. 이준은 따뜻한 물을 마시며 손의 힘을 풀었다. 거절은 큰소리를 내는 장면일 줄 알았다. 실제로는 컵을 쥔 손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일이었다.
계단 아래에서 선재가 불렀다. 미서가 먼저 내려가 상태를 확인한 뒤, 대화가 가능한 짧은 시간만 허락됐다. 이준은 거절 사본을 보여 주지 않고 문가에 섰다. 노인은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떴다.
“일 받았나?”
“오늘 건은 안 받았습니다.”
“손이 안 좋아?”
“손은 괜찮습니다. 모르는 걸 남한테 내게 할까 봐서요.”
선재는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이준은 그 침묵에서 칭찬을 기다리지 않으려고 했다. 자기 선택을 노인이 옳다고 해 줘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옷은 안 가져가도 된다고 전해라.”
선재가 말했다.
“효선이가 보관하는 게 맞아. 내가 그 옷 돌려보낸 건 맞지만, 내가 나간 건 아니니까.”
이준은 고개를 들었다. 노인은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 그날 누가 답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옷을 먼저 보낸 선택은 자신이 기억한다고 했다. 자신이 한 행동과 남이 붙인 해석을 처음으로 직접 갈랐다.
이준은 기록해도 되는지 물었다. 선재가 허락했다. 가족에게 전할 범위도 그 문장까지라고 했다. 과거에 스스로 남은 날의 이야기는 열리지 않았다. 이준은 더 묻지 않고 의자의 흔들림이 없는지 확인한 뒤 돌아섰다.
창구 위의 작업표가 바뀐 것은 그때였다.
강이준이라는 이름이 있던 곳에 외부 수리자 배정이라는 글자가 찍혔다. 도겸의 현장 재평가 요청 아래에는 일정 유지가 표시됐다. 이준은 물컵을 내려놓았다. 자기 거절은 접수됐지만 작업은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누구입니까?”
미서는 별도 배정 부서에서 온 결과라 상세 신원은 아직 받지 못했다고 했다. 다른 수리자의 장부를 이준이 임의로 열 수는 없었다. 그는 신원을 캐묻는 대신 안전 조건과 대가 고지가 전달됐는지 확인 요청을 남겼다.
이준은 그 사람이 처음인지 오래 일한 사람인지 몰랐다. 선재가 장갑 크기를 먼저 물으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지금 자신과 같은 첫날일 수 있었다. 대신 선택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이 오늘은 더 어렵게 느껴졌다.
윤단이 복귀 시간을 확인했다. 밤 열한 시 사십 분이 조금 넘었다. 두 사람은 같은 문으로 나왔다. 바깥에서 태오가 통신 기록을 닫고 빈 파일을 받아 들었다. 별관의 유리문에는 밤의 형광등이 평범하게 비쳤다.
“내가 안 해도 돌아가네요.”
이준이 말했다. 윤단은 차를 열지 않고 센터 무전기를 먼저 들었다.
“네가 안 하는 것과 우리가 안 보는 건 달라.”
그때 정식 출동 요청이 들어왔다. 시범 구역의 두 시설에서 물이 샌다는 연락이었다. 북쪽 공용 급수실과 남쪽 지하 보행로. 서로 떨어진 위치였다. 출동은 동시에 필요했고 같은 센터 차량 한 대로 둘 다 먼저 갈 수는 없었다.
태오가 지도를 켰다. 윤단은 물리 안전 대응 인력을 나눠 요청하고 두 현장의 실제 피해를 다시 확인했다. 이준은 휴대폰 화면에서 두 점 사이를 봤다. 어느 쪽이 새 보강과 관련됐는지는 아직 몰랐다.
미서에게서 마지막 전화가 왔다. 두 시설의 연계표가 야간 장부에도 열렸다고 했다. 이준의 거절 기록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새 사고 접수였다.
그는 손목을 내려다봤다. 여력은 세 건이었다. 그러나 두 곳의 원인도 아직 모르고 사람도 다 세지 못했다. 수락부터 말하면 다시 누군가의 일을 자기 손 하나에 묶게 된다.
윤단이 그를 불렀다.
“이번엔 먼저 나눌 거야. 네가 갈 곳 말고, 네가 없어도 갈 사람부터.”
지도 위의 두 점이 번갈아 깜빡였다. 북쪽 현장에서 첫 음성 답변이 들어왔다. 물소리 뒤로 누군가 젖은 신발을 끌며 걸었다.
“여긴 밸브는 잠갔는데요. 아래 보행로 쪽 물은 더 불어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