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준은 자명종보다 먼저 눈을 떴다.
천장은 멀쩡했다. 노란 금도 떠 있는 숫자도 없었다. 낮이었고, 손목의 백이십은 사라져 있었다. 그는 그 자리를 문지르지 않고 물을 마셨다. 몸이 무겁다는 것과 다시 일을 해도 된다는 것은 다른 판단이었다.
휴대폰에는 윤단의 문자가 와 있었다. 오후 세 시, 센터. 운전하지 말 것. 답장은 일어나서 할 것.
이준은 마지막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답장을 보내려고 일어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물을 한 모금 더 마신 뒤 연락했다.
어제 현장은 세 건 모두 임시 조치로 남았다. 정류장의 첫차 안내는 교통 담당자가 확인했고, 배송장 대피 통로는 낮 점검을 위해 통제 중이었다. 선재는 중앙 연결구에 있었다. 이준이 자는 동안에도 그 위치가 지워지지는 않았다.
그는 커튼을 열었다. 맞은편 집 베란다에서 누군가 이불을 털고 있었다. 도시의 오후는 밤새 무슨 일이 있었든 다음 일을 시작했다. 이준은 침대 끝에 한동안 앉아, 그 속도를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센터에는 자기 자리 대신 휴게실 책상이 준비돼 있었다. 태오는 모니터를 밝게 켜지 않고 종이를 두 묶음으로 나눠 뒀다. 한쪽은 실제 현장 기록, 다른 쪽은 미서가 전날 확인한 장부의 열람 메모였다. 시민 이름은 가려져 있었다.
윤단이 국이 든 종이 그릇을 밀었다.
“밥부터.”
“서류에 흘리면요?”
“그래서 네 책상 안 쓰는 거야.”
이준은 웃으면서 숟가락을 들었다. 뜨거운 것을 삼키자 배가 빈 것을 뒤늦게 알았다. 첫술 뒤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술을 더 먹었다. 태오도 그동안 종이를 펼치지 않았다.
그릇을 치운 뒤 이준은 배송장 보고서를 봤다. 새벽에 남아 있던 반장의 이름은 별도 구조 확인서에는 있었다. 설비 운영 보고의 체류 인원은 여전히 영 명이었다. 같은 사건이 다른 서류에서 다른 크기가 됐다.
“정정 요청은 했어요?”
“했습니다. 자동 집계 기준을 확인해야 한답니다. 구조 기록은 따로 보존 요청했고요.”
태오가 말했다. 이번에는 그 대답이 변명처럼 들리지 않았다. 무엇이 멈췄고 무엇이 움직이는지 분리해 두고 있었다.
정류장 쪽은 조금 달랐다. 지도 수정과 실제 안내가 확인됐다. 기다린 여섯 사람 가운데 연락에 동의한 세 사람이 지연 내용을 남겼다. 막차를 놓친 시간, 실제 귀가 시각, 다음 출근. 아무도 초능력 이야기를 듣지는 않았다.
“잠이 줄었다는 말을 먼저 물으면 거기에 맞춰 대답할 수 있잖아요.”
태오가 말했다. 질문지에는 그래서 이동과 생활에 생긴 변화라는 넓은 질문만 적혀 있었다. 이준은 자신이라면 곧바로 잠을 얼마나 잃었느냐고 물었을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장부하고 안 맞을 수도 있겠네요.”
“안 맞는 것도 남겨야죠.”
이준은 숟가락 대신 펜을 들었다. 맞지 않는 줄을 버리기 시작하면 보고서가 아주 편해질 것이다. 현장의 사람이 먼저 사라지는 편리함이었다.
오후 늦게 온별 세탁소에 갔다. 효선은 오늘도 다리미를 들고 있었다. 이준을 보자 세탁물 대신 의자를 가리켰다. 어제는 자기에게 놓였던 자리였다.
“얼굴이 세탁 덜 된 걸레 같아.”
“밤새 여러 번 썼습니다.”
“사람은 헹궈서 다시 못 써.”
이준은 말없이 앉았다. 효선은 선재가 새 작업복을 밖에 나가서 입겠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깃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폈다. 거기에는 다른 손님의 교복이 걸려 있었다.
“말투는 어땠어.”
“덜 늙게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효선이 작게 웃었다. 웃음이 끝난 뒤에도 눈가의 주름은 오래 남았다.
그녀는 카운터 한쪽의 공책을 밀었다. 오빠를 기다리며 가게 문을 닫은 시각이 적혀 있었다. 누구를 위해 쓰던 기록인지 따로 말하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밤새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다섯 시쯤 먼저 깬다는 메모가 있었다.
이준은 즉시 시민 장부의 이름을 찾으려다 손을 멈췄다. 효선이 스스로 전해 준 기록이었다. 그 안에 적힌 하루를 자신이 생각한 원인 하나에 끼워 넣을 수는 없었다.
“이 부분을 센터 생활 변화 기록하고 비교해도 됩니까? 다른 분께 보여 드릴 때는 이름을 빼고요.”
효선은 사용 범위를 두 번 물었다. 오빠의 사건이 어디까지 나가는지, 가게 손님에게도 보이는지. 이준은 공개하는 자료가 아니며 더 필요한 경우 다시 묻겠다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잠을 못 잔 건 오래됐어. 그거 전부 저기 종이 탓이라고 하면 안 돼.”
“네. 지금 달라진 부분만 구분하겠습니다.”
효선은 그 대답을 듣고 자기 공책의 오래된 페이지를 덮었다. 최근의 몇 줄만 복사하도록 내줬다. 원본은 가게에 남았다.
옆에서 세탁물을 찾던 여자가 이야기를 듣다가 빈 가방을 품에 안았다. 최근 새벽에 일어나도 몸이 하나도 가볍지 않다고 했다. 교대 시간이 바뀌었느냐는 이준의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다만 가게 앞 승강기가 고장 나지 않아 짐 나르기는 편해졌다고 덧붙였다.
“그건 좋잖아요. 맨날 서는 것보다는.”
이준은 그 말을 지우지 않았다. 편해진 사실도 있었다.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는 방식이 의심된다고 해서, 실제로 멎지 않은 승강기까지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 여자는 연락을 남기지 않았다. 이준은 억지로 기록을 받지 않았다. 말해 준 것만 익명 관찰로 적어도 되겠느냐고 묻고 허락받은 범위만 썼다. 다섯 개의 빈칸이 두 개로 줄었고 나머지는 비어 있었다.
해가 기울자 효선이 작은 봉투를 건넸다. 선재에게 줄 물건이 아니라 이준의 장갑이었다. 찢어진 손가락을 임시로 기워 뒀다고 했다.
“이걸로 위험한 데 손 넣지 마. 새거 받을 때까지 보관용이야.”
이준은 장갑 안쪽의 파란 실을 봤다. 이번에는 자신을 입증할 흔적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그는 봉투를 새 작업표와 따로 넣었다.
센터로 돌아와 자료를 맞추자 선이 하나 나타났다. 밤의 시야가 아니었다. 날짜가 이어지는 가느다란 연필선이었다. 몇 구역에서 시설의 고장 보고가 줄어든 때와 주민의 생활 변화가 겹쳤다.
전부 겹치지는 않았다. 정류장 지연처럼 직접 이유가 있는 것도 있었고, 기록 날짜가 드문 공책도 있었다. 태오는 같은 사람의 메모 두 장을 두 사람으로 세지 않도록 번호를 묶었다. 이준이 그은 선 가운데 두 개가 사라졌다.
“이 정도로는 잠을 걷어 갔다고 못 하죠.”
이준이 말했다. 윤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디를 더 봐야 할지는 정해지지.”
전산의 고장 건수가 줄었다는 사실. 정산소에서 시민 대상 시간 부과를 확인했다는 관찰. 일부 주민이 같은 시기 더 피곤해졌다는 진술. 세 가지는 나란히 놓였지만 아직 하나의 원인으로 묶이지 않았다.
이준은 자기 수면 기록도 맨 아래에 놓았다. 봉합과 대가를 직접 선택한 자신조차 정확한 차감 분량을 시계만으로 재지는 못했다. 타인의 피로를 한 번 듣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다음에는 대가를 고지한 문서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때 센터 사무실 문이 열렸다. 깔끔한 점퍼를 입은 남자가 윤단에게 인사했다. 손에는 두꺼운 보고서 대신 얇은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이준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태오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안정총괄국 백도겸입니다. 새벽 현장 확인 때문에 왔습니다.”
남자가 먼저 명함을 내려놓았다. 목소리는 작았고, 문장은 끝까지 고르게 갔다. 윤단은 이준의 앞에 펼쳐 둔 주민 메모를 자연스럽게 덮었다.
“무슨 확인입니까?”
“정류장 이전과 배송장 통로의 보고 차이를 받았습니다. 현장 기록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겸은 태오에게 정정 요청 접수번호를 물었다. 태오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확인된 번호를 말했다. 도겸은 바로 전화해 담당 부서의 답변 기한을 확인했다. 거절이나 호통은 없었다. 그 덕분에 일이 실제로 하나 빨라졌다.
이준은 남자의 손을 봤다. 손톱은 짧았고 서류철의 모서리는 닳아 있었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고 느꼈다. 미리 정한 악당 얼굴을 찾다가는 실제로 한 일을 놓칠 수 있었다.
도겸은 자기 자료를 펼쳤다. 제목은 야간 유지 효율 개선이었다. 시설 정지 시간과 민원 건수, 투입 인원이 표로 정리돼 있었다. 일부 구역의 고장은 확실히 줄어 있었다. 방금 세탁소에서 들은 승강기도 표 안에 있었다.
“강이준 씨가 현장에서 큰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여럿이 했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래서 체계로 남기려는 겁니다. 개인의 헌신에 의존하는 운영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 문장에는 이준도 동의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추지 않았다. 맞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나머지까지 모두 맡기는 것은 달랐다.
“여기 투입 시간에는 누가 들어갑니까?”
그가 물었다. 도겸은 표의 작은 글씨를 짚었다.
“등록된 유지 인력입니다. 관련 부서가 제출한 기록을 합칩니다.”
“등록이 안 된 사람은요.”
“먼저 누락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도겸은 흔들리지 않았다. 미서에게 들은 답과 닮았지만 끝의 방향이 달랐다. 이준은 선재의 이름을 바로 꺼내지 않았다. 아직 그 사람의 상태와 시민 기록을 이 남자에게 보여 줄 동의가 없었다.
윤단이 대신 새벽 구조 확인서를 놓았다. 도겸은 위층 작업자의 이름을 읽고 특이사항 표시를 더했다. 그가 보고서 전체를 덮어 버리지는 않았다. 이준은 그 장면을 주의 깊게 봤다.
“이런 차이는 집계 방식의 문제일 수도 있고 실제 누락일 수도 있습니다. 확인해서 고치겠습니다.”
도겸이 말했다.
“그동안 개선된 부분도 같이 보셨으면 합니다. 끊긴 설비 때문에 밤을 새우던 주민이 줄었습니다.”
이준은 덮인 공책을 보았다. 바로 그 주민이 새벽에 너무 일찍 깬다고 적었다. 같은 하루의 앞면과 뒷면을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른 비용도 같이 세야 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항목을 주시면 검토하겠습니다.”
도겸은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준은 밤에 본 노란 종이 대신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골랐다. 대기 시간, 누락된 체류 인원, 다음 근무 전 쉴 수 있었던 시간. 태오가 그 단어들을 별지에 적었다.
모든 원인이 입증된 것처럼 쓰지는 않았다. 무엇을 세야 하는지 묻는 것부터 시작했다. 도겸은 별지를 읽고 다음 날 시범 구역을 방문해 보라고 제안했다. 공식적으로 진행 중인 사업이라 현장 기록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윤단은 출입 범위와 열람 가능한 자료를 물었다. 도겸은 담당자를 통해 정식 안내를 보내겠다고 했다. 이준 혼자 오라는 조건도, 주민 메모를 미리 달라는 요구도 없었다.
남자가 떠난 뒤 태오가 긴 숨을 내쉬었다. 이준은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다시 펼쳤다. 잘 정돈된 숫자 아래에 작은 빈칸이 있었다. 전체 체류 인원을 적는 곳이 아니라 집계 대상의 범위를 적는 칸이었다.
그는 그 옆에 배송장 구조 확인서를 놓았다. 사진 속 창문에는 손바닥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보고서에는 그 손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방문 안내가 도착했다.
시범 구역 운영 자료 열람 가능. 안전 사고 현황은 별도 소관.
이준은 별도라는 두 글자에 동그라미를 그었다. 내일은 고장이 없는 곳에 가서, 그 숫자 밖에 무엇이 남았는지 보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