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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 빛의 답장

본문 5,374자 · 공백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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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멈춘 것은 아니었다.

돛은 바람을 받았고 선체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등대 창에서 보이는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누메의 배가 한 자리를 달리는 벌레처럼 보였다.

길이 풀리고 있었다.

세라는 창틀을 잡았다.

“빛을 더 세게 하면 안 되나요?”

바렌은 대답 대신 빛돌 아래를 보여 주었다. 투명했던 돌의 삼분의 일이 흐렸다. 세게 비추면 더 빨리 탁해질 뿐이라고 했다.

“저쪽에서 봐 줘야 해. 빛은 길을 잡고, 눈이 자리를 정해.”

마루섬의 반사판이 꺼졌다. 두 곳에서 같은 것을 보아야 한다는 규칙이 배를 놓아 버리고 있었다.

세라는 지도 위에 손가락을 놓았다.

등대와 소금계단.

소금계단과 마루섬.

배가 지나던 길을 따라 점을 짚었다. 그중 자기 관측점은 물속에 잠겼다. 비싼 관측대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 물건을 버린 순간을 떠올렸다.

발판에서 본 것은 종루 지붕이었다. 하지만 종이 울릴 때 잠깐 멈춘 것은 지붕만이 아니었다. 그 아래 창고의 하얀 벽도 함께 멈췄다. 해안선보다 조금 높은 벽이었다.

“저쪽 반사판이 낮아졌을 수도 있어요.”

바렌이 그녀를 보았다.

“빛이 부서졌는지 사람이 쓰러졌는지 모르잖아요. 지붕이 무너졌다면 밑으로 내렸을 수도 있죠.”

“여기서는 해안 절벽에 가린다.”

“그러면 낮은 곳에서 봐야 해요.”

바렌은 탑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소금계단은 사라졌다. 물이 들이치며 하얀 거품을 만들고 있었다. 거기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티오가 젖은 머리를 털며 계단을 올라왔다.

“배가 이상해요. 선장님이 종을 치는데 돌아오는 소리만 나요.”

세라가 소년에게 물었다.

“부두 옆에 물 가까운 창이 있어? 마루섬 방향으로.”

“물창고. 벽이 반쯤 없는데.”

바렌의 고개가 돌아갔다.

“거긴 파도가 들어온다.”

“그래도 천장이 남았어요. 내가 들보 갈아 놨어요.”

티오는 자기가 왜 혼날 말을 보태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세라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거기까지 길 좀 알려 줘.”

바렌이 그녀를 불렀다.

멈추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대신 바렌은 작은 반사판을 건넸다. 종루를 향해 처음 답장을 보낼 때 썼던 것이었다.

“이걸로 배에 신호해. 돌아올 길부터 잡아. 저 섬까지 가겠다고 하지 마.”

세라는 반사판을 받았다. 손바닥보다 조금 컸지만 무거웠다.

바렌은 마지막 예비 빛돌 상자를 닫았다.

“지금 돌을 더 쓰면 오늘 밤 등대가 어두워진다. 이 돌로 할 수 있는 데까지만.”

세라는 뛰지 않기로 했다.

무릎이 아직 아팠고 젖은 신발은 계단에서 미끄러웠다. 손잡이를 잡고 한 계단씩 내려갔다. 마음은 이미 부두 아래에 있었지만 발은 몸이 있는 곳에 뒀다.

티오가 앞에서 길을 비췄다.

물창고는 부두 동쪽 바위에 붙어 있었다. 예전에 작은 배를 끌어 올리던 곳이었다. 반쪽 벽이 없어 바다가 곧바로 보였다. 천장을 받친 들보 하나만 새 나무였다.

파도는 바닥을 덮었다가 빠졌다.

“줄을 어디에 묶어?” 세라가 물었다.

“저기.”

티오가 새 들보를 가리켰다. 밑둥은 바위에 깊이 박혀 있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허리에 밧줄을 묶었다. 줄 길이는 창고 밖으로 몸이 넘어가지 않을 만큼만 남겼다.

세라는 반사판을 들고 몸을 낮췄다.

마루섬 해안이 보였다.

종루 꼭대기는 안개 속에 있었지만, 창고의 하얀 벽은 아직 드러나 있었다. 그 앞에서 작은 빛이 흔들렸다.

세라가 숨을 삼켰다.

“있어.”

티오도 무릎을 꿇었다.

“정말 있네.”

세라는 반사판으로 햇빛을 보냈다. 낮은 해가 창고 옆 바다에 비쳐 눈이 부셨다. 반사판의 각도를 조금 틀자 먼 반짝임이 사라졌다.

그녀는 다시 돌렸다.

한 번.

잠깐 쉼.

두 번.

저쪽 빛이 같은 리듬으로 응답했다.

세라는 소리를 질렀다. 아무 말도 아닌 소리였다. 오랫동안 물속에 있던 사람이 수면 위로 나온 것처럼 폐가 열렸다.

티오가 등대 쪽으로 표시판을 들었다.

바렌의 빛이 천천히 아래로 움직였다. 한 번에 많이 돌리면 기존 길이 끊어진다. 세라는 빛이 자리를 옮기는 동안 마루섬 신호를 계속 받았다.

하지만 숫자를 읽을 관측대가 없었다.

물속에 버린 것을 이제 와 되찾을 수는 없었다.

세라는 등대에서 쓴 자를 꺼냈다. 표준 관측에는 모자랐지만, 두 끝의 눈금을 눈앞에 맞추면 넓은 방위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먼저 수평을 잡으려 했다.

바닥이 흔들렸다.

물창고 바닥은 파도에 잠길 때마다 발밑의 진동이 달라졌다. 손으로 자를 들면 오차가 더 커졌다. 가는 선을 그을 수 없었다.

티오가 반사판 받침을 보았다.

“고정할까?”

“나무를 자르면 시간 많이 걸리지?”

“자르는 건.”

그가 망치를 들었다.

“쪼개는 건 빨라.”

소년은 마른 쐐기 둘을 들보와 받침 사이에 밀어 넣었다. 망치를 세 번 두드리자 받침이 단단히 섰다. 세라는 자를 그 위에 얹었다.

눈금은 여전히 흔들렸지만 손떨림은 줄었다.

종소리가 왔다.

그녀는 울림이 가장 낮아지는 순간의 값을 읽었다. 숫자를 티오에게 말했다. 소년은 큰 표시판을 들어 등대에 알렸다.

다음 종.

다음 값.

둘은 비슷했다.

바렌이 확인 빛을 보냈다. 물 위의 은빛 띠가 낮은 창고 쪽으로 꺾였다. 기존 항로의 끝이 조금씩 움직이며 배 옆으로 붙었다.

누메의 배가 비로소 앞으로 나아갔다.

세라는 두 손을 꽉 쥐었다. 아직 돌아오지는 않았다. 길이 닿았다고 배를 옮겨 오는 건 아니었다.

마루섬 해안에 사람들이 나타났다.

작은 점들이 움직였다. 한 점이 다른 점을 부축했다. 세라는 몇 명인지 세려다 그만두었다. 지금은 반사판에서 눈을 떼면 안 됐다.

누메가 해안 가까이 배를 댔다.

한 사람이 반짝이는 판을 높이 들고 있었다. 팔을 오래 들기 힘든지 다른 팔로 바꿨다. 그 자세 하나로 세라는 저쪽에서도 누군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길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파도가 창고 안으로 밀려왔다. 티오가 세라의 허리줄을 당겼다. 둘은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물이 무릎을 때렸고 반사판의 아래쪽이 젖었다.

빛이 꺾였다.

세라는 이를 악물고 판을 다시 돌렸다.

저쪽 사람이 응답했다.

같은 리듬.

누메의 배가 돌아섰다.

그러나 선체가 왼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급류였다. 아까 소금계단에서 봤던 원형 그림자가 배 아래로 붙고 있었다.

세라는 빈손으로 세모 표시를 만들었다. 멀어서 보일 리 없었다.

티오가 표시판을 뒤집었다. 뒷면에 붉은 세모가 있었다. 출발 전에 세라가 그린 것이었다.

소년이 판을 높이 들었다.

누메가 돛줄을 놓았다. 돛의 절반이 풀리며 배가 기울어지는 속도가 늦어졌다. 짐을 하나 바다에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물통이었다.

선장이 무게를 버린 것이다.

세라는 관측대를 놓던 자기 손을 떠올렸다.

배가 원의 가장자리를 벗어났다.

돌아오는 길이 아주 조금 넓어졌다.

해가 내려갔다. 반사판에 닿는 햇빛도 낮아졌다. 세라는 티오에게 종 신호를 맡겼다. 햇빛이 사라지면 저쪽에서 관측을 끝낼 때를 함께 알 수 있어야 했다.

종은 녹이 슬어 첫 타격에는 둔한 소리만 냈다. 티오가 망치 각도를 바꾸었다. 세라는 반사판을 붙든 채 기둥에 등을 댔다. 파도에 흔들리는 기둥을 둘의 무게로 버텼다. 이번에는 맑은 소리가 났다.

소년은 허리의 작은 쇠망치로 기둥의 종을 쳤다.

한 번.

잠깐 쉼.

두 번.

저쪽 큰 종이 같은 울림으로 돌아왔다.

해안에 남은 사람이 있었다. 판을 들고 있는 사람 옆으로 작은 그림자 둘이 보였다. 누메는 배를 다시 돌리지 않았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세라는 더 넓힐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기가 할 수 없는 말을 바다에 던지면, 저 사람들까지 돌아오지 못할 터였다.

배가 부두에 닿았을 때 빛돌은 거의 하얗게 변했다.

세라와 티오는 창고에서 빠져나와 밧줄을 잡았다. 누메가 던진 줄이 물 위에 떨어졌다. 둘이 함께 당겼다. 배 옆의 물이 유리처럼 매끈해졌다가 갑자기 평범한 물결로 돌아왔다.

항로가 풀렸다.

마지막 승객의 발은 이미 부두 위에 있었다.

승객 하나가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난간을 붙들고 있었다. 흰 머리의 여인이었다. 부두와 배 사이 틈을 내려다보며 발을 떨었다. 세라는 손을 내밀었다가 거두었다. 자기도 다리에 힘이 풀려 있었다.

티오가 널빤지 하나를 가져왔다. 누메가 배 쪽 끝을 잡고 소년이 부두 쪽을 고정했다. 틈이 가려지자 여인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가 품에서 꺼낸 보따리 안에는 작은 신발 한 켤레가 있었다. 해안에 남은 손자의 것이라고 했다.

“다음 배에는 꼭 신겨야지.”

여인은 누구에게 약속을 요구하지 않았다. 신발의 흙을 손으로 털었을 뿐이었다. 세라는 그 손을 보고 자기 무릎을 내려다봤다. 지금 아픈 것과 내일 다시 걸을 수 없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세라는 주저앉았다.

누메가 젖은 담요를 그녀의 어깨에 둘렀다.

“나한테 먼저 돌아오랬지?”

“돌아왔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말할 수 있는 거야.”

선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부두에는 떠나온 사람보다 남겨 둔 사람의 수를 세는 목소리가 먼저 퍼졌다.

열한 명이 돌아왔다.

마루섬에는 아직 아홉 명이 남았다.

반사판을 들고 있던 사람은 오르라는 종루지기였다. 주민을 먼저 태우고 자신은 종 곁에 남았다고 했다. 지붕이 무너져 비상 판을 낮은 창고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세라의 추측은 반쯤 맞았다.

반쯤 맞은 것만으로도 오늘은 배 한 척이 돌아왔다. 하지만 내일도 맞을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녀는 젖은 지도에 붉은 점을 남겼다. 기구 없이 잰 범위, 급류 위치, 남은 주민 수. 바닷물이 번져 숫자 하나가 흐려졌다. 세라는 종이를 바꾸지 않고 옆에 다시 적었다.

바렌이 내려왔을 때는 이미 해가 바다 끝에 닿아 있었다.

“돌 하나가 비었다.”

그가 말했다.

“하나는 남았지. 내일 어디에 쓸지 정해야 한다.”

세라는 마루섬을 보았다. 멀리서 작은 불이 켜졌다. 반사판은 쓸 수 없어도 사람은 아직 거기 있었다.

“돌아가야죠.”

바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면 오늘은 자.”

세라는 일어나려다 멈췄다.

부두 아래가 밝았다.

등대 빛이 물에 비친 줄 알았다. 그러나 로안의 빛은 이미 꺼졌고, 마지막 햇빛은 반대편에 있었다.

물 아래에서 둥근 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금날개 한 마리가 품은 것처럼 작았다. 곧 그보다 커졌다. 물속 깊은 곳에서 빛줄기 일곱 개가 천천히 펼쳐졌다.

누메가 세라의 어깨를 붙잡았다.

“뒤로.”

세라는 발을 물렸지만 눈을 떼지 못했다.

빛줄기 사이로 돌탑 꼭대기가 보였다.

바렌이 지팡이를 놓쳤다.

“저건…… 육지에 있어야 해.”

탑은 수면 아래에서 종을 울렸다.

물결이 소리 대신 은빛 원으로 퍼졌다.

세라는 지도 가장자리의 지워진 등대 기호를 보았다. 일곱 번째 등대. 석 달 전 절벽과 함께 무너져 바다에 가라앉았다고 배운 곳이었다.

그 빛이 마루섬 방향으로 길을 그리고 있었다.

3화 끝

현재 3화까지 공개했어요. 이후 공개 일정은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Written by Grapheme · Published by Aldus Libris

AI를 활용해 창작한 작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