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탁은 빈손으로 왔는데, 수현은 먼저 나무함을 찾았다.
백예순두째 낮이었다. 공방 주인은 함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현이 아침에 보낸 답을 읽었고, 오늘 방문은 새 수리를 맡기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품 안에는 종이 봉투 하나만 있었다. 그 속에 어제 말한 과자가 들어 있었다.
수현은 먼저 웃었다. 과자 수를 맞추겠다고 한 말을 문탁도 기억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공방 주인이 봉투를 열자 작은 것이 셋이었다. 조일은 자기 것이 포함됐는지 물었고 문탁은 함께 먹으려고 그 수를 샀다고 답했다.
그들은 탁자를 비웠다. 수현은 오늘도 손을 오래 쓰지 않았고 새 감정은 맡지 않았다. 짧게 만나기로 한 때가 있었다. 문탁은 나무함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수현은 자기 의견으로 수리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범위를 먼저 말했다.
함은 오래 쓴 주문함이었다. 문탁은 종이 묶음을 넣고 뚜껑을 닫으면 요즘 자꾸 맨 위 장이 찢어진다고 했다. 경첩을 새로 달아야 할지 몰라 함을 만든 성인 목공에게 문의해 두었다는 말도 했다. 오늘 여기서 그 사람의 답을 대신 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돈을 벌어 넣는 함이 종이부터 먹소.”
문탁이 말했다. 조일은 종이가 과자보다 싼 것은 아닐 거라고 답했다. 수현은 그 둘의 값에 사람의 이름이 들어 있으면 더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무슨 서류가 찢어졌는지부터 전부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문탁이 보여 준 것은 자기가 고른 빈 종이 한 장이었다. 원래 함에 넣는 폭으로 접었고 위끝을 조금 더 길게 남겨 두었다고 했다. 주문별로 찾기 쉽도록 글을 위로 내밀기 시작한 뒤부터 찢기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었다. 수현은 그 전후를 들었다. 함의 고장 원인을 판정하지 않았다.
조일이 자기 붓집의 받침을 잘못 끼운 일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문탁은 그럼 자기 함도 안 고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서로 다른 물건이었다. 수현이 대신 바로잡기 전에 공방 주인이 자기 말을 고쳤다. 목공에게 지금 쓰는 종이 모양도 함께 보여 줘야겠다고 했다.
그 빈 종이를 바닥에 가볍게 세워 보니 위끝이 휘었다. 문탁은 매일 빨리 찾으려고 조금씩 길이를 늘렸다고 말했다. 종이의 높이가 바뀌었어도 손은 옛 뚜껑의 높이로 닫았다는 것이었다. 조일은 함이 자라는 것보다 종이가 자라는 쪽이 빠르다고 웃었다.
수현도 웃었다. 손끝에서 진동을 듣지 않아도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관심이 기술 감정으로 둔갑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직접 함을 본 사람과 종이를 쓰는 사람이 함께 현재 모양을 보게 됐다는 사실이 좋았다.
문탁은 과자를 작은 접시로 옮겼다. 부스러기가 빈 종이에 떨어지자 얼른 종이를 들어 올렸다. 수현은 그 종이가 중요한 사본인지 잠깐 놀랐지만 공방 주인이 연습용이라고 다시 말했다. 세 사람은 웃으면서 접시와 종이 사이를 조금 벌렸다.
조일은 자기 몫의 과자를 반으로 나눴다. 오늘 모두 같은 크기를 먹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문탁은 나머지를 가져갈 봉투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견습은 지금 다 먹겠다고 답했다. 수현은 천천히 먹다가 부드러운 속이 남은 쪽을 접시 위에 뒀다.
함 이야기가 끝났을 때 문탁은 자기 공방의 다른 문의 하나를 꺼냈다. 새로 만든 안내 종이를 읽기 어려운 사람이 있어 글을 크게 베껴 달라는 일이었다. 조일에게 물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수현은 자기 가게가 새 일을 받았다고 답하지 않고 견습을 봤다.
조일은 원래 무엇이 적힌 종이인지와 어느 부분을 옮길지 먼저 듣겠다고 했다. 문탁은 물건 검사표가 아니라 공방의 주문 받는 시간과 돌려줄 때를 적은 안내라고 설명했다. 견습은 지금 본문이 없으니 품을 정할 수는 없고 보여 줄 수 있는 범위를 나중에 받겠다고 답했다.
문탁은 그 정도의 문의를 남기고 일어났다. 수현은 과자 값을 돈으로 돌려줘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오늘 먹을 것으로 주겠다는 뜻을 처음부터 들었고, 그 덕분에 견습의 다음 품이 공짜가 되지는 않았다. 문 앞에는 짐도 나무함도 남지 않았다.
사람이 떠난 뒤 조일은 과자 부스러기를 모았다. 수현은 빈 종이에 남은 휘어진 끝을 보았다. 그것은 문탁이 가져간 뒤였다. 탁자에는 그 물건의 설명만 남았다. 물건을 만져야만 알 수 있다는 오래된 버릇이 오늘은 조금 조용했다.
함서린의 답이 왔다. 가게 안내를 받았다는 짧은 소식과 이미 정한 몸 상태 확인 때를 적은 별도 종이가 함께 있었다. 수현은 안내를 보냈다는 사실을 감정 재개의 허락으로 바꾸지 않았다. 서기도 오늘 보지 않은 가게 상태를 괜찮다고 쓰지 않았다.
그는 확인할 때에 전할 증상을 정리했다. 손의 떨림과 큰 소리 뒤 귀에 남는 울림은 여전히 있었다. 어제 상자를 든 사람이 왔을 때 긴장했다는 일도 자기 말로 적었다. 그것이 병의 새 이름이 되는지, 기존 증상의 다른 모습인지는 현재 확인할 사람이 판단해야 했다.
종이를 쓰다가 한 글자를 빼먹었다. 수현은 옆에 짧게 덧붙였다. 줄을 모두 다시 쓰려면 더 오래 손을 써야 했다. 지금 읽을 수 있는 기록을 아름답게 만들다가 정작 말할 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붓을 놓고 안쪽 의자에 기대었다.
잠깐 뒤 조일이 자기 읽기 안내를 가져왔다. 다음 문의가 들어오면 문탁의 공방에 견습 이름으로 갈 수도 있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수현은 가게를 비울 실제 때를 맞추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지 못하는 자리를 견습이 대신 감정하러 가는 일은 아니었다.
조일은 그 말을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수현은 또 앞선 설명을 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알고 있는 줄을 다시 가르치려 했다고 인정했다. 견습은 오늘 안내의 본문이 오면 자기가 먼저 범위를 읽겠다고 말했다. 수현은 그렇게 하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다른 일을 했다. 조일은 자기 서랍을 정리했고 수현은 가게 돈의 현재 잔액을 봤다. 종이를 크게 베끼는 품이 생겨도 아직 들어오지 않은 돈이었다. 그 예상으로 쌀을 더 사지 않았다. 다만 견습의 다음 일이 가게 밖에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조금 새로웠다.
그는 견습이 언젠가 나갈 것을 상상했다. 지금 당장 떠나겠다는 말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그 상상을 근거로 미리 서운해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조일이 종이칼을 찾느라 자기 서랍을 두 번 여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아직 오늘의 견습은 바로 곁에 있었다.
오후에 윤초를 만났다. 어제 답장에 수현이 쓴 새 안내 이야기를 그녀도 읽었다. 둘은 가까운 가게의 의자를 골랐다. 윤초는 오늘 오른손목을 쉬게 하려고 왼손으로 잔을 들었다. 수현은 자기 손과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재지 않았다.
그는 나무함이 종이를 무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 이름은 문탁이 함께 먹은 과자 이야기 뒤에 짧게 나왔다. 공방의 다른 주문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윤초는 짐함 안에 물건을 높이 쌓고 뚜껑 탓을 한 적이 있다며 자기 실수 하나를 들려줬다.
수현은 그럼 오늘도 함을 고쳐 주면 될 것 같았겠다고 말했다. 윤초는 예전 같았으면 그랬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자기 손목이 아픈 뒤에는 물건이 눈에 보이면 다 자기 몫이라는 생각부터 피곤해졌다는 것이었다. 수현은 그 말의 끝을 잠깐 듣고 있었다.
“나는 아직 보고 싶은 마음은 있소.”
그가 말했다. 윤초는 그 마음을 없애야 쉬는 것이냐고 물었다. 수현은 아니겠다고 답했다. 다만 보고 싶다는 말이 내일부터 할 수 있다는 답으로 들리지 않게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오늘 자신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작은 답을 그는 오래 들었다. 모두가 똑같이 듣는다는 보증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자기 옆에 앉은 사람이 실제로 들은 뜻이었다. 수현은 물이 식기 전에 한 모금 마셨다. 오늘은 먹고 싶다고 적어 둔 국의 이름을 둘이 함께 확인했다.
가게에서는 그 국을 저녁에 낸다고 했다. 둘 다 오늘 저녁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윤초에게는 자기 일정이 있었고 수현도 쉬어야 했다. 다음 때를 무리해 정하지 않고 오늘 마신 물값을 나눴다. 국 한 그릇을 못 먹었다고 만남이 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윤초와 헤어진 뒤 그는 가게로 천천히 돌아왔다. 문 안쪽 안내가 제자리에 있었다. 바람 때문에 종이의 아래끝이 조금 들렸지만 읽는 줄은 가리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발견하고도 조일을 즉시 불러 다시 붙이게 하지 않았다. 현재 떨어질 듯한 곳은 없었다.
견습은 문탁에게서 안내 본문을 받았다고 했다. 수현은 읽을 여력이 남지 않아 오늘 함께 보지 않겠다고 답했다. 조일은 자기 문의로 받은 것이니 먼저 살펴보고 모르는 것은 문탁에게 묻겠다고 했다. 주인의 눈이 빠졌다고 모든 일이 어두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저녁에는 문탁의 짧은 답도 왔다. 목공이 함과 실제 종이 높이를 보고 내일 얇은 안쪽 받침을 살펴보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고쳤다는 말은 없었다. 수현은 그 결과가 궁금했지만 수리 방법을 추측해 답장하지 않았다. 손을 대는 사람과 물건이 만날 때가 잡혔다.
그 뒤에 아침 검사표 문의자의 전갈이 붙어 있었다. 표를 발급한 공방에서 ‘완료’라고 적은 칸이 물건 검사가 아니라 검사 품을 받은 칸이라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물건을 실제 본 기록은 따로 대조하기로 했다고 했다. 수현은 남자가 전한 말로만 읽었다.
‘완료’라는 글자는 수현에게도 익숙했다. 받은 돈을 받은 대로 적는 것은 필요했다. 그러나 종이의 어느 칸 위에 놓이느냐에 따라 일의 끝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는 그 표를 직접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오늘 다른 공방의 잘못을 자기가 판정할 자리는 아니었다.
조일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자기 품 표의 제목을 봤다. 받은 품과 마친 일이 서로 다른 줄에 있었다. 견습은 예전부터 그렇게 쓴 곳도 있다고 말했다. 수현은 자기가 오늘 처음 깨달은 구분이 세상의 새 발명은 아니라는 말을 웃으며 받아들였다.
밤에 그는 문탁이 주고 간 빈 과자 봉투를 접었다. 이것도 주인이 허락한 범위의 남은 종이였다. 안쪽에는 기름 자국이 조금 있었다. 중요한 기록으로 쓰기에는 맞지 않아 마른 부스러기를 모으는 데 썼다. 종이를 아낀다고 모든 종이에 이름을 다시 얹을 필요는 없었다.
내일은 자기 상태를 확인할 때가 있었다. 수현은 작업 앞치마를 꺼내지 않고 오늘 적어 둔 증상 종이만 준비했다. 검사를 받는 사람이 되려면 남의 칼을 들고 갈 필요는 없었다. 손은 여전히 떨렸고 귀는 조용한 방에서 조금 편했다.
불을 낮추기 직전 조일이 물었다. 안내를 크게 베끼는데 종이 장수가 두 배가 되면 읽는 시간도 두 배로 받아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수현은 자기가 정해 줄 답은 아니라고 말했다. 견습은 알겠다며 새 종이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내일은 함의 높이보다 글을 읽는 사람의 거리가 먼저 정해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