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음이 틀렸는데, 아무도 의자를 밀고 일어나지 않았다.
12월 27일 오후, 서린은 강변연습실의 공용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개인 방문 가능 여부와 현재 이용 안내를 운영 창구에서 확인한 뒤였다. 모임이 허락한 끝부분을 들으러 왔지만 합주실 안으로 들어가는 참관은 신청하지 않았다. 현재 허용된 대기 자리에서 문이 열릴 때 들리는 소리를 듣는 정도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좋은 소리가 들릴 줄은 몰랐다. 닫힌 문을 사이에 두면 높은 음과 낮은 음이 따로 뭉쳤다. 서린은 악기를 맞히려다가 그만뒀다. 자기 앞의 문을 열면 더 잘 들릴 수 있겠지만 현재 사용 중인 방의 문을 손님 마음대로 바꾸는 자리는 아니었다.
유정이 안내대에서 그녀를 알아봤다. 오늘은 회사 장비가 없느냐고 물었다. 서린은 개인 가방을 조금 들어 보였다. 수첩 대신 집에서 읽던 책이 있었다. 유정은 웃고 현재 대기 구역을 짧게 설명한 뒤 자기 일로 돌아갔다. 확인표를 들고 와 서명을 부탁하지 않았다.
잠깐 뒤 합주실 문이 열렸다. 도현이 물병을 가지러 나왔다. 그는 서린을 보고 손을 흔들더니 아직 마지막 곡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 기다려도 되느냐고 묻는 말이었다. 서린은 자기가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답했다. 끝날 때까지 무조건 있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가고 문이 닫혔다. 대기실은 다시 작게 울리는 음들로 채워졌다. 서린은 책을 폈다가 같은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음악이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것보다 자기 눈이 자꾸 문 쪽으로 가는 게 우스웠다. 일하지 않는 동안에도 문이 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때 연주가 한 번에 멎었다. 벽을 넘어 누군가 웃는 소리가 났다. 서린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일어나 보려다가 자기 발을 의자 아래로 당겼다. 위험을 알리는 신호도, 도움을 구하는 말도 아니었다. 가려진 방 안의 웃음에 사건 하나를 만들어 붙일 이유는 없었다.
도현의 목소리가 잠깐 들렸다. 처음부터 해 보자는 말이었다. 어떤 악기가 틀렸는지는 밖에서 알 수 없었다. 서린은 은주가 첫 부분을 틀렸을 것이라고 생각한 자기 추측을 알아챘다. 본인이 말한 어려움 하나가 앞으로의 모든 실수를 은주에게 붙이는 이름표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시작은 더 천천히 들렸다. 서린은 박자를 세어 보려다가 어디가 첫 박인지 몰랐다. 초침과 다른 질서였다. 음이 잠깐 끊겨도 곡이 끝난 것은 아닐 수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현장에서 침묵이 생기면 다음 질문을 서둘러 넣었던 자기 목소리를 떠올렸다.
대기실의 다른 이용자가 안내대에 문의했다. 다음 예약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앞 모임이 늦어지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유정은 현재 종료 예정과 실제 상태를 확인해 안내했다. 서린에게 대신 물어보지 않았다. 오늘 이용자의 질문을 받을 사람은 운영 창구에 있었다.
서린은 자기 책 위에 손을 놓았다. 합주가 길어지면 남은 곡을 줄일지 정한 시간에 끝낼지 모임이 판단할 일이었다. 어제의 확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시간을 계산해 문을 두드릴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현재 받은 계획 안에서 고를 여지가 있었다.
몇 분 뒤 연주가 끝났다. 이번에는 웃음이 아니라 의자를 정리하는 작은 소리가 났다. 서린은 그 소리만으로 방이 비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도현이 현재 담당에게 모임 종료를 알리고 실제 퇴실·물품 인수가 이어지는 모습이 열린 문 너머로 보였다. 오늘 추가 개인 사용은 없었다.
은주는 일반 의자에서 일어나 자기 가방을 받으러 왔다. 개인 접이 의자는 보관에 그대로 두겠다는 현재 선택을 운영자에게 알렸다. 유정은 실제 상태와 다음 연락을 맞췄다. 서린은 그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멀리서 들었고, 자신의 확인을 한 번 더 끼워 넣지 않았다.
도현은 마지막 곡을 빼서 아쉽다고 말했다. 은주는 첫 곡을 두 번 했으니 총량은 같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 계산이 연주 시간표에는 맞지 않을지 몰라도 두 사람은 웃었다. 서린은 누가 틀렸는지 묻지 않았다. 들은 것은 다시 시작한 곡이었다.
“처음부터 틀렸어요.”
도현이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은주는 시작 신호를 보고 들어갔는데 도현이 한 박 늦었다고 했다. 서린은 자기 안에서 조금 전 은주에게 붙였던 잘못된 첫 장면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단서를 모른다는 말보다, 알던 단서 하나를 잘못 썼다는 쪽이 더 정확했다.
서린은 자기도 밖에서 누구인지 짐작했다고 말했다. 이름은 꺼내지 않았다. 도현은 벽 너머에서 그렇게 잘 들렸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짐작했다고 답했다. 은주가 그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것은 적당히 들리는 소리보다 오래 남을 수 있었다.
대기실에서 사람들은 자기 물품을 챙겼다. 서린은 악기 가방들이 지나가는 동안 허용된 자리에 머물렀다. 현재 담당이 정리 장비 이동과 다음 이용자의 대기를 나눠 안내했다. 사람과 가방이 실제로 빠져나온 뒤에야 그 길로 다음 작업이 들어갔다.
한 참여자가 자기 목도리를 의자에 두고 나가다가 곧 돌아왔다. 지우는 그 사람이 바로 앞에서 놓은 물건을 확인하고 건넸다. 새 분실 접수부터 만드는 장면은 아니었다. 서린은 그 짧은 반환을 보고도 별도의 교훈을 만들지 않았다. 누군가 목이 덜 추워져 밖으로 나갔다.
은주가 서린 옆의 빈 의자를 가리키며 앉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현재 대기 구역의 허용 자리였고 다른 예약 이용자의 길을 막지 않았다. 그녀는 앉아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서린은 피곤하냐고 묻기 전에 상대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은주는 오늘 처음에는 자기 틀린 부분을 또 연습해야 하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도현이 시작을 놓치는 바람에 다 같이 다시 했다고 했다. 서린은 상대의 실패가 은주에게 선물이 됐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혼자 남지 않았다는 현재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에는 제가 또 틀릴 수도 있겠죠.”
은주가 말했다. 서린은 그럴 수 있겠다고 답했다. 잘할 거라는 보증을 붙이지 않았다. 은주는 그렇다면 연습실을 빌리는 이유가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서린은 처음 그 방을 보러 왔을 때 끝난 방과 빈 방을 같은 말로 읽던 사용표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잠깐 말없이 앉았다. 은주는 악기를 꺼내 설명하지 않았고 서린도 예전 은담생활관 사건을 자기 직업 소개로 꺼내지 않았다. 여기 온 이유는 지금 들은 짧은 연습이었다. 상대가 자신을 더 잘 알려면 큰 사건이나 개인 고백을 하나씩 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정이 다음 이용자 안내를 마치고 다가왔다. 서린에게 잠깐 물을 것이 있다고 했다. 서린은 어떤 범위인지 먼저 물었다. 유정은 새 안내에 쓰인 표현을 다음 달에도 그대로 써도 되는지였다. 서린은 실제 사용 조건이 같다는 확인은 운영 측이 해야 하고 필요한 검토는 회사 창구로 요청해 달라고 안내했다.
유정은 오늘 손님에게 일을 붙잡았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표정이었다. 서린은 그 표정을 마음속 사실로 굳히지 않았다. 운영자는 알겠다며 정해진 문의 경로를 메모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즉석으로 승인받을 필요는 없어졌다. 서린도 죄책감 때문에 자기 방문을 다시 업무로 바꾸지 않았다.
도현은 다음에는 한 곡을 처음부터 들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린은 현재 허용되는 자리와 자기 시간을 맞추면 그렇겠다고 답했다. 그녀가 꼭 오겠다고 하지 않아도 대화는 서운한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도현은 이번에는 시작 신호부터 잘 맞춰 보겠다고 농담했다.
은주가 일어나 가방을 들었다. 그녀는 실제 인수한 물건과 개인 보관에 남긴 의자를 운영 담당과 다시 짧게 맞췄다. 도현은 먼저 나간 동료를 부르려다가 복도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현재 연락으로 답을 보냈다. 서린은 자기 코트를 입고 책을 가방에 넣었다.
현관에서는 지우가 들어오는 이용자를 안내하고 있었다. 서린은 나가는 길을 기다렸다가 현재 안내대로 문을 통과했다. 어제 설비 확인을 받았다는 종이보다 오늘 문 앞의 실제 간격이 몸에 먼저 닿았다. 문이 닫힐 때 등을 돌려 속도를 재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서린은 우산을 폈다. 은주는 정류장이 반대쪽이라며 인사했고 도현은 악기 가방을 보호 덮개 안으로 넣었다. 셋이 같은 곳에서 나왔다고 같은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 서린은 자기 집으로 가는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도운에게 개인 답을 보냈다. 연습을 조금 듣고 나왔고 시작을 두 번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럼 한 곡을 더 들은 셈이냐고 물었다. 서린은 은주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썼다. 상대는 누구인지 자세히 묻지 않고 자기 빨래가 아직 덜 말랐다고 답했다.
서린은 공연 보고처럼 사람 이름과 동선을 정리하지 않았다. 비가 와서 우산을 썼고 버스가 조금 늦는다는 말을 보탰다. 도운은 다음번 밥을 먹을 때 무슨 곡인지 들려 달라고 했다. 서린은 제목을 모른다고 답했다. 제목이 없어도 오늘 들은 짧은 음은 이야기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 코트를 걸자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가 나왔다. 지난 자료실 전시의 초대장이었다. 그녀는 그걸 강변연습실의 안내와 섞어 보관하지 않았다. 두 곳은 다른 건물이었고 다른 일을 마쳤다. 초대장은 집에서 읽던 책 사이에 잠깐 끼워 뒀다.
회사에서 정해진 일반 안내가 와 있었다. 다음 근무의 배정은 현재 담당이 조정 중이었고 새 확인 요청의 자료 보완이 남아 있었다. 서린은 휴일에 받은 메시지를 보고 즉시 현장 사진부터 열지 않았다. 필요한 현재 수신은 회사 창구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실제 근무일에 맡을 범위가 정해질 일이었다.
그녀는 물을 끓이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주방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어디서 나는지 알았고 그 소리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날 이유는 없었다. 끓은 물을 정해진 컵에 따르고 돌아왔다. 자기 저녁의 순서는 스스로 조금 늦춰도 됐다.
서린은 도운에게 오늘 들은 곡을 흉내 내 보낼까 하다가 그만뒀다. 음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대신 다음번에는 제목을 물어보겠다고 썼다. 그가 답을 보내기 전 그녀는 컵을 들었다. 읽었다는 표시가 잠깐 비어 있어도 기다리는 모든 시간이 누락은 아니었다.
창밖의 비는 유리 위에 작은 간격을 만들었다. 서린은 그 사이를 세다가 자기 손가락을 멈췄다. 오늘의 첫 음은 틀렸고 두 번째 시작은 이어졌다. 그녀는 끝난 곡을 다시 확인하려고 연습실에 연락하지 않았다. 다음 박자가 오기 전의 조용한 자리도, 오늘 들은 음악 안에 있었다.